본문 바로가기

(차성인)푸른 숲 수필가·20100/청림수필집·내 고향 뒷동산에는

[스크랩] 푸른 숲/20100 수필2집 "내 고향 뒷동산에는"(57)기제사

신작수필

57. 기제사忌祭祀

이영백

cheonglim03@hanmail.net

 

 해마다 사람 죽은 날에 지내는 제사를 기제 혹은 기제사라고 한다. 우리 집에는 아버지께서 맏이가 아니었는데도 내가 어렸을 때 조상의 제사를 모신다.

 할아버지 삼남 일녀를 두었다. 아버지가 가운데로 큰집이 있었지만 백부께서 일찍 돌아가시고 종백씨가 한 명 있었는데, 국가 보훈유공자 2급이었다. 백형보다 나이도 적었다. 사는 형편이 어려워 우리 집에서 제사를 아버지 지휘에 따라 모셨다.

 아버지는 항상‘큰집이 잘 되어야 가문이 된다.’라고 일상 좌우명처럼 말씀하였다. 모든 것을 큰집위주로 사셨다. 종백씨가 6·25전쟁 첫날 포항전투에 참전하여서 갈비 석대를 잃는 전상을 입고 5년 동안 부산 제5육군병원에 있었다. 처음에는 삶 자체가 막막하였다. 자기학대로 어려운 고비를 맞기도 하였다. 유일한 낙이 화투치는 일이었다. 도저히 이대로는 안 된다고 생각한 아버지께서 결단을 내렸다.

 아버지는 우리 집을 새보로 집 지어 내려가면서 종백씨 논 일곱 마지기 언저리 돌무더기를 주워 내고 터를 닦아 집을 지어 주었다. 논 언저리에 지은 집이기 때문에 장가들어 밤낮으로 농사를 돌보며 삶의 재미를 느껴 소도 기르고, 새끼 꼬는 기계를 사서 부업도 할 수 있도록 준비하여 주었다. 삼남삼녀 육남매를 두었다.

 내가 어렸을 때 우리 집에 선조들의 기제사 모시는 것은 즐거웠다. 그러나 어머니는 많은 자식에 어려운 살림살이로 기제사준비에 힘들어 하였다. 어린 우리들로서는 아무것도 모르고 흰 메에 고기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즐거워하였던 것이다.

 기제사는 보면 고조, 고조모, 증조, 증조모, 조부, 조모 등이다.

 이 중에 할아버지 기일은 음 이월 열사흘이고, 할머니는 음 칠월 초여드레다. 특히나 할아버지 기일은 어머니 생일 사흘 전이었고, 할머니는 칠석날 입제이기 때문에 절대 잊지 못하는 날이기도 하다. 할아버지 기일은 설날이 지나고 거의 한 달 반 후에 기제사가 있어서 우리는 메 먹을 수 있다는 재미로 더욱 기다려지고 있었다. 할머니는 여름철에 들어서 기다려지는 기제사 날이기도 하였다.

 시골 제기는 놋그릇이 전부다. 놋그릇을 닦기 위해서는 기왓장을 구해다 잘게 가루로 부순 것으로 닦는다. 기왓장을 부수어 보드랍게 준비하는 일은 내 차지다. 멍석을 펴 놓고, 놋그릇을 끄집어내니 개수도 많다. 큰형수님은 관리하고, 둘째 형수님은 방앗간에 떡 하러 나갔다. 셋째 형수와 셋째 누이가 놋그릇을 닦는다. 지푸라기를 가져다가 기왓장 가루를 묻혀 닦으니 시퍼런 녹이 사라지고 그 특유의 빛깔로 반짝이는 놋그릇으로 변하게 된다.

 제상을 꺼내 닦고, 촛대, 위패, 양초도 찾아 두었다. 이제 모사그릇에 모래 새 모래 담기는 작은 일로 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특히 돗자리는 미리 꺼내 거풍을 시키고, 닳고 닳아도 고풍스러운 병풍은 먼지를 떨어서 깨끗하게 준비하여 둔다.

 입제 날 재종반과 췌객(贅客)들이 찾아오므로 집안에 두루두루 청소하고 마을 앞길까지 쓸어둔다. 밤이 되면서 큰 채, 사랑채 대문에도 등을 내 걸고 불을 밝힌다. 물론 낮 오후에는 아버지께서 1.5km나 떨어진 앞산 우리 선산에 조부모 산소를 찾아뵙는 것을 잊지 아니한다.

 시간이 되어 가면서 높은 제상이 차려지고 물에 불려 둔 밤(栗)을 셋째 형님은 딱딱한 껍질부터 벗기고, 보늬를 떼어 내고 밤 치기를 한다. 셋째 형님은 못하는 게 없을 정도로 눈썰미가 좋았다. 형님 밤 치는 곁에 앉아서 주판알처럼 깎아 내는 것에 너무나 신비하여 두 다리를 굽혀 바치고 조 앉아서 끝까지 관찰을 하였다. 그 덕택으로 지금껏 제사 모심에 밤 치기는 자신 있게 내가 맡고 있다.

 제상에 먼저 과일이 놓인다. 일반적으로 조율이시(棗栗梨柿)를 놓겠지만 우리 집안에선 꼭 그 순서를 바꾼다. 조율시이로 진설한다. 그 발음이 우리 성씨와 비슷한 관계로 그렇게 한다.

본래 제상에 놓는 순서는 원본 제례도 있겠지만 우리 민가에서는 가가례(家家禮)라 하여 집집마다 자기들이 좋아하는 순서로 진설함이 좋다.

 이제 자정을 넘어서는 시간에 촛불 켜고, 향 피우고 제상 앞에 엎드려서 기제사 모심은 정말 보기 좋은 전통문화를 진행하는 것이다. 아버지, 작은 아버지는 갓을 정제하고 나오신다. 조부 기제사 모심에 제관들이 너무 많이 몰려와서 마당에 멍석 한 줄로는 부족하여 한 줄 더 펴서 제관 삼십여 명이 들어서는 것은 아버지로서는 마음 뿌듯해 하신다.

 참신, 초헌, 재헌, 합문(闔門)으로 부복국궁(俯伏鞠躬)하고 날숨 아홉 번으로 아버지 기침하면 모두 일어선다. 아직 추운 날씨라 오래 국궁 못함은 부끄럽지만 기본으로만 해도 후손으로서 할일을 하는 것이다. 종헌으로 음복하고, 사립문에 배웅하면 기제사가 끝이 난다.

 이제 자손들 함께 밥 먹기 위해 큰 채, 사랑채 방마다 가득가득 앉아서 소담과 함께 제삿밥을 먹는다.

 오늘날 시대가 시대인 만치 종교적으로도 그렇고 제사를 생략하는 집안이 많아지지만, 조상 섬김의 기본으로 지켜가는 전통문화로 여기는 것은 괜찮을 것이다. 요즘은 도시에 살면서 저녁제사로 대치도 되곤 한다. 한밤을 넘어 제사 모시려면 직장근무에도 지장이 있겠고, 그 뒷설거지 등도 어려움이 많기 때문이다.

 기제사는 시대를 따라 요즘에는 일 년 내내 제사 모심도 번거로워 한 날짜로 지정하여 합동제례를 준비하고 ‘친족 모임의 날’로 명칭까지 변하고 있는 경우도 나타난다.

 시대변화를 무시하고 기제사 모심에 맏며느리만 맡아서 하라는 것도 상당한 어려움이 있다. 형제가 많으면 고루 맡아서 하는 일도 아름다운 모습이기도 하다.

 기제사는 자기 형편에 따라 자손들이 의논으로 정하여 행함은 정말 격세지감은 있겠지만, 우리 조상 모심을 잊지 아니한다는 것에 크게 의의가 있는 일라고 생각한다. 󰃁

(푸른 숲/20100-20130323.)

출처 : 푸른 숲/20100
글쓴이 : 62seonsang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