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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성인)푸른 숲 수필가·20100/청림수필집·내 고향 뒷동산에는

[스크랩] 푸른 숲/20100 수필2집 "내 고향 뒷동산에는"(58)시제

신작수필

58. 시제時祭

이영백

cheonglim03@hanmail.net

 

 시골에서 흔히 묘제(墓祭)*라는 것은 연례적으로 일정한 날짜를 정하여 산소를 찾아가서 드리는 제사다. 묘제는 원래 3월 상순에 지내는 고조 이하의 친제를 뜻하는 말로, 『사례편람』에는 3월 상순에 택일하여 하루 전에 재계한다고 되어 있다. 묘제는 여러 세월을 거쳐 그 제도가 변화되어 왔는데, 어느 시기에 이르러서는 묘사, 시제, 시향, 절사 등을 통틀어 이르게 되었다.

 시제(時祭)*란 옛 우리의 전통 제례의 한가지로 조상들을 전부 제사로 모시려면 그 많은 조상들을 일일이 다 모시기에 문제가 있으므로 5대조 이상의 조상에게는 시제(혹은 묘사)라 하여 10월 상달에 조상님들의 산소엘 직접 찾아서 묘제를 지낸다. 시제는 낮에 행하고 가을 추수가 끝난 음력 시월상달에 지내는 것이 일반적이다.

 전에는 시제 날짜를 요일에 관계없이 정해진 날에 지냈으나 요즈음은 문중의 젊은 직장인들과 젊은이들의 참여율을 높이기 위하여 가능한 한 일요일에 지내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우리 집안 시제는 입향조(29世 11代祖) 성룡(成龍)공은 구정리 뒷산 子坐와 배는 선산김씨 永坤녀로 건위하에 乾坐로 있고, 10대조 삼록(三錄)공은 구정리 허영곡 乾坐와 배는 월성김씨 英哲녀로 개남산 辛坐에 있으며, 9대조 여창(汝昌)공은 하동리 분접퇴 丑坐와 배는 월성김씨 吉佑녀로 戌座에 있고, 8대조 영원(永遠)공은 壽通政大夫 마동리 묘골 丑坐와 배는 밀양박씨 行建녀로 황용리 시북골 卯坐에 있다.

 7대조, 파조 선기(善基)공은 수절충장군 행용양위부호군 마동리 묘골 甲坐와 배 숙부인 밀양박씨 訓練院判官 枝秀녀로 건위하에 寅坐로 있다. 6대조 계백(桂白)공은 괘릉리 乾坐와 배는 淑夫人 밀양박씨 訓練院判官 時鳴녀로 건위하 酉坐에 있고, 5대조 동보(東普)공은 壽通政大夫로 마동리 묘골에 亥坐와 배1은 단양우씨 건위하 卯坐, 배2 월성김씨 건위하 卯坐, 배3 김해김씨 마동리 가리골 卯坐에 있다. 양 고조부 화호(和浩)공은 마동리 갓등 艮坐와 배는 월성김씨 學允녀로 건위하에 壬坐에 있다. 증조부가 양으로 왔기에 생 고조부는 화범(和範)공으로 양북면 어일리 작현에 艮坐와 배는 밀양박씨 尙文녀로 마동 갓등 寅坐에 있다.

증조부 경연(慶淵)공은 당초 구정리 허영곡에 있었으나 시래 밀개산으로 이장하였다. 배는 오천정씨 雲慶녀는 당초 마동 마안골에서 밀개산으로 이장하여 함께 화장 후 유허비로 있다. 조부 응조(膺祚)공은 曼瑚學行 石碑가 있으며 시래리 밀개산 酉坐와 배는 월성김씨 鳴憲녀로 시래리 밀개산에 酉坐로 있다.

 이를 시제로 지내야 하는 수로 보면 입향조 이래 여덟 분의 묘가 있고, 파조이하 5대조까지는 열세 분으로 매우 복잡하다. 특히 증조가 양으로 왔기에 생 고조부까지 항상 모셔야 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서당에 다닌 죄(?)로 축문을 들고 아버지를 따라 여러 곳을 모두 따라 다니면서 낭독하여야만 했다. 백형은 한문을 꽤 많이 읽었는데도 좀처럼 시제에 참가하지 않았다. 장사를 한다는 핑계로 축문만 써서 내 손에 쥐어 주고 참가를 아니 하니 무슨 수로 조상 섬기기를 할 것인가? 그런데 함께하였던 분들은 모두가 일자무식하여서 한자(漢字)도 모를 뿐만 아니라 한글까지도 깨치지 못하였으니 어쩔 수가 없었다.

 생고조부 산소는 양북면에 있어서 토함산 동대봉산을 가로질러 산 속으로 16km를 걸어야 한다. 양북면 어일리 작현에 도착하여 고직이 집에서 1박을 하고 시제를 지내고 돌아온다. 올 때는 어일 장터에 시외버스를 기다리다 타고서 경주시내로 돌아와야 한다. 당시 어일 버스승강장에 버스를 타면 인산인해라 키 작은 나는 가운데 들어가서 숨도 제대로 못 쉬고 경주시외버스터미널까지 와야 했다. 시제가 뭐 길래 이렇게 산단 말인가?

 끝으로 한 가지 재미있는 일은 시제를 지내려 다니다 보면 당시로서는 모두가 살기가 어려운 시절이라 시제 떡 얻으려고 용케도 아이들이 좋게는 이삼십 여 명씩 찾아오는 것이다. 푸른 콩고물 인절미를 썰고 과일을 나누어 일일이 손에 들려주니 모두들 좋아한다. 조상의 시제로 인하여 이 어려운 어린이들에게 떡 한 조각이라도 나누어 줄 수 있는 기회를 얻었으니 시제 모시러 다닌 것이 이런 기쁨 아니겠는가?

 시제로 우리 조상모심에 그 어린아이들까지 참여해 주니 기쁘단 것을 이렇게밖에 표현할 수 없으니 한편으로는 어려운 시대에 태어난 사람들에게 그저 미안할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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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제墓祭 : 무덤에서 지내는 제사.

*시제時祭 : ① 철마다 지내는 종묘의 제사. ② 시향(時享)

(푸른 숲/20100-20130324.)

출처 : 푸른 숲/20100
글쓴이 : 62seonsang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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