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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성인)푸른 숲 수필가·20100/청림수필집·내 고향 뒷동산에는

[스크랩] 푸른 숲/20100 수필2집 "내 고향 뒷동산에는"(52)사월 초파일

신작수필

52. 사월 초파일

이영백

cheonglim03@hanmail.net

 

 초등학교 가정환경 조사에서 종교 조사난이 있다. 통계를 보면 재미가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절에 계속 다니지 아니하면서도 굳이 종교는 “불교”라고 표시한다. 일 년에 단 한번 가도 종교는 불교라고 적고 있다.

 종교 중에 불교는 우리 민족과 관련하여 떼래야 뗄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신라시대는 호국불교라 하여서 더욱 그랬다. 근세조선으로 거쳐 오면서 숭유배불정책으로 다소 멀어지긴 하였으나 여전히 불교는 국민들의 대다수가 믿는 것으로 마음먹는다.

 최근 종교통계를 보면 우리나라 국민 4,704만 명중에 53%가 신자들이다. 이 중에서도 불교가 1,073만 명(42.9%), 개신교가 861만 명(34.5%), 천주교 515만 명(20.6%)이라고 한다.

 불교에서 석가탄신일인 사월초파일이 되면 어찌 사람들이 그렇게도 불국사에 많이 찾아오는지 모르겠다. 어렸을 때의 눈으로 보아도 사람들이 밀리고 밀린다. 초파일 절 입구에 들리면 불사(佛事)를 한다. 적어도 보시(布施)를 얼마라도 하여야 절에 들어가는 발길이 가벼워진다. 초파일 절에 들리는 사람들에게는 입장료도 없다. 초파일 아기부처님 탄생하신 날 오랜만에 찾아주는 신도들은 불국사도량에 한 가지 소원성취 얻고자 성불한다.

 동네 아저씨 한 분은 친구들과 꼭 사월 초파일이면 불국사에 들린다. 그리고 복잡한 사람들 틈을 비집고 들어가서 용케도 불전에 모아 둔 돈을 훔쳐 내어서 술 사먹고 비명사명 간에 술에 취에 돌아오곤 하였다. 이는 축률(縮慄)을 만날 일이다. 정말 몸을 응송거리고 벌벌 떨 일이다.

 어머니는 초파일이 오면 아침을 일찍 마치고 절 나설 준비를 한다. 맑은 물 떠다가 덥힌 후에 깨끗이 머리 감고, 참빗으로 가르마 타고 옥잠비녀로 머리를 묶어 튼다. 비록 좋은 옷감은 아니지만 무명베 깨끗한 옷으로 차려입고 백고무신 챙겨 신는다. 한 손에는 손지갑 들고 다른 손에는 찹쌀떡 몇 오리를 수건에 싼다. 물론 아침에 끓인 숭늉을 식혀 소주병에 넣는 것도 잊지 아니한다.

 이제 나를 재촉하여 길을 이끌라고 한다. 어머니는 이날 불국사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 소담한 작은 절인 분황사(芬皇寺)로 향하게 한다. 그것도 신작로(新作路)로 가는 것이 아니라, 논둑, 밭둑길인 조양지(朝陽池) 곁으로 요리 조리 동네 앞뒤를 지나 삼십 리 길을 재촉한다. 그러면 자연히 이웃 동네 친구 셋이 따라 나선다. 연분홍 치마는 아니지마는 깨끗한 치맛자락을 봄바람에 날린다. 이미 약속이나 한 듯 복잡한 대형 절로 가지 않음을 아무도 탓하지 아니한다. 일일삼사 탐방에 그저 즐거울 뿐이다.

 삼십 리길 일찍 도착하여 분황사에 이르자말자 등 불사를 하고 재빨리 돌아 나오신다. 일일 삼사를 탐방하려면 시간이 바쁘기 때문이다. 바로 금오산(金鰲山, 일명 남산) 옥룡암(玉龍庵)으로 향하신다. 길로 지나면서 들판도 구경하고 금오산 일천바위도 보고 온통 산정기, 물 정기를 모두 모으는 것 같다. 마침내 남천(南川) 도랑에 이르자 할 수없이 버선을 벗고 고무신을 들고 맨발로 도랑물을 건넌다. 새하얀 다리로 남천을 건넌다.

 가지고 왔던 찹쌀 떡 오리를 내어서 나도 주고, 같이 따라 붙었던 친구들에게도 나누어 준다. 점심을 때우는 현명한 방법이다. 소주병에 넣었던 숭늉도 이때 요긴하게 나누어 마신다.

 옥룡암에는 간단히 들리고 암자 곁 노천에 있는 부조부처를 찾는다. 부조부처 아래에 있는 발 앞에 소원성취를 비는 돌이 있다. 주어진 돌을 가지고 마음속으로 소원을 빌면서 밀고 밀다가 더 이상 밀리지 아니하면 소원이 성취된다는 속설(俗說)이 있다. 모두가 간단한 소원이다. 가정에 자책 일어나지 말고 건강하고 자식들 잘 살게 하여 달라는 것이다. 너무나 소박한 여인네의 소원일 뿐이다. 특히 임산부에게는 아들 낳게 비는 방법으로도 활용된다고 한다.

 세 번째 절로 가는 길은 금오산 보리사(菩提寺)다. 옥룡암 바로 곁이지만 대나무 밭이 있고, 솔바람 소리를 들으며 가파른 길을 오른다. 불교에서 보리(菩提)라는 말이 진리를 구하는 행위로 수행하는 보살이 사는 절이다. 특히 노천에 광배(光背)를 한 대자대비(大慈大悲)하신 약사여래상이 부조되어 있어서 건강을 돌보려고 가족의 건강을 빌러 오르는 절이다. 마치 ‘중생(衆生)들아 두려워 마라. 내가 병을 고쳐 주마!’하듯이 경주분지 넓은 들판을 내려다 굽어보고 있다. 약사여래불이 마치 가정마다 자신과 용기를 주는 것 같다.

 초파일 일일 삼사를 다녀오는 것도 일 년에 한 번이지만 불교를 원용하여 가족과 가정에 복이 충만하기를 소박한 욕심으로 행하는 일종의 통과의례인 것이다. 어머니의 작은 소망으로 이러한 행위는 아무도 말릴 수 없는 아녀자로서 지키는 하한선일 뿐이다.

 어릴 때 어머니를 따라 다녔던 일일삼사를 지금 도시에 살면서도 잊지 못하여 내자와 함께 나는 사월 초파일이 오면 파계사(杷溪寺), 거조암(居祖庵), 은해사(銀海寺)를 탐방한다. 거조암은 한자로 조상님이 거주하는 암자 즉 불제자 526존자님이 거주하시는 암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은해사는 신라 809년 혜철이 창건한 해안사로 조선 인종(仁宗)의 태실을 봉하고 은해사로 고쳤다. 은빛 바다라는 뜻의 이름은 극락정토(極樂淨土)에 비유하여 지어진 것으로 일일 삼사 탐방을 마친다. 우리들이 이렇게 일일삼사를 탐방하는 것이 어찌 어머니 생각이 나지 않을 수 있으랴. 󰃁

(푸른 숲/20100-20130318.)

출처 : 푸른 숲/20100
글쓴이 : 62seonsang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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