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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성인)푸른 숲 수필가·20100/청림수필집·내 고향 뒷동산에는

[스크랩] 푸른 숲/20100 수필2집 "내 고향 뒷동산에는"(50)밀주근절

신작수필

50. 밀주근절

이영백

cheonglim03@hanmail.net

 

 195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국가에서 통제가 없이 집집마다 마음대로 술 을 빚던 것이 차차 체계가 잡히고 1960년대가 오면서 국가에서 개인이 술 빚는 것을 허용하지 않게 되었다.

몰래 술을 담가 먹는 것을 밀주(密酒)라고 한다. 밀주는 법을 어기면서까지 담가온 것은 그만큼 서민들의 생활이 팍팍했기 때문이다. 물론 생활의 여유가 되고 경제가 돌아갔더라면 편의한 상품을 사먹으면 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다.

 밀주를 만들어서 걸리면 국가에 벌금을 물어야 한다. 벌금만 해도 수월찮게 살 수가 있을 텐데 꼭 밀주를 담글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이나 그 때나 모두가 돈이 귀하고 삶의 여유가 부족하여 밀주라는 것을 저지르게 된 것 뿐이다.

 아버지의 일은 점점 많아지고 힘이 드시니 새참으로 술을 드시게 마련이었다. 특히나 일이 많으면 일하는 사람도 많아서 사다 먹는 막걸리로서는 감당이 안 되었다. 자꾸 옛날 집에서 동동주를 담가 먹던 습관으로 밀주를 담가 먹게 되었다.

 술도가에서 막걸리가 잘 팔리지 아니하면 세무서에 통보를 하고서 직원들이 술 추러 나왔다. 우리 고향에서도 불국사역에서 절로 올라가는 중간에 술도가가 있었다. 물론 나도 아버지 따라 술도가 구경도 다녀왔다. 외가 가는 중간에 술도가에서 들러 걸러 둔 술을 바가지 채로 마시라고 술도가사장은 내 준다. 수두룩한 항아리 속에서 포각포각 술 익는 술도가에서 아버지는 술 드시고 ‘그 술맛 한 번 좋다!’하시고서는 사서 들고 나오신다. 물론 선거철이 되면 술도가에서는 밤낮으로 술을 빚기 바쁘다. 그 많은 술통이 커다란 자전거 뒷자리에 양 옆으로 걸고 뒷자리에 한 통 더 싣고 마을마다 배달을 나간다.

 이러한 장면을 아버지는 보고서 이제는 밀주를 포기하였다. 이미 술도가에서 술을 만들어서 상품으로 팔고 있고, 또 그 술맛도 좋고, 불안하지 않아도 되고 값싸게 술을 사다 먹을 수 있어서 좋다고 느끼신 것이었다.

 집으로 돌아와서 밀주를 못 담그도록 어머니께 당부 하셨다. 만들어 둔 누룩도 모두 버리라고 하셨다. 술 뜨는 용수며 쳇다리, 술 거르는 체하며 모두가 필요 없다고 하셨다.

일상으로 돌아가서 일 하시면서 술 대리점에 들러 사오기 시작하였다. 어머니도 술을 담그지 않아서 한결 일손이 줄었다. 시골 아낙네로서 밀주 담그면 그 밀주 다 먹을 때까지 가슴이 콩닥거려서 자나 깨나 불안 하였던 것도 사실이다.

 지금도 생각이 난다. 세무서에서 술 추러 나온 직원들은 긴 쇠막대기를 가지고 다니면서 거름무더기로, 짚동 사이로 잿간에 쌓아 놓은 잿더미로 심지어 마당에 흙 파헤친 흔적이 있으면 술독을 묻었을 것이라고 의심해서 땅에다 콱콱 찔러 대던 그 소리에 가슴이 찌릿찌릿해 오던 기억이 난다.

 국가가 하지 못하도록 법까지 정해 두었는데 기어이 밀주를 담글 필요가 있겠는가? 차라리 절약해서 모은 돈으로 상품인 막걸리를 사다가 새참 내는 것이 마음 편안하다. 사람들이 그렇게 수월한 길을 택한 것이다.

 1960년대 중반에 막걸리 한 되 30원으로 값 싸고 맛좋고 안전한 막걸리 사서 새참 내는 것이 얼마나 편한가? 그런데 우리 집은 시골이라 막걸리 사러 가려면 2km를 걸어가야 했다. 공휴일인데도 아침에 아버지 일하러 나가시고 나면 어머니 새참 걱정에 나를 심부를 보낸다.

“오복아! 막걸리 두 되 좀 사오렴!”

“예.”

 대답은 하고 두 되짜리 주전자 두 개를 들고 나간다. 오전에 사다 두고 오전 오후 새참 하려고 아예 이렇게 주전자 둘을 들러 보낸다. 나는 걱정이었다. 체구도 작고 힘도 없는데 한꺼번에 술 넉 되를 들고 와야 한다. 그래도 어머니 명령이니 어쩔 수가 없었다.

 가게에 들러 술을 샀다. 양 손에 술을 채운 두 되 주전자를 들었다. 걸음이 걸리지 아니 하였다. 꾀를 내었다. 먼저 주전자 한 개를 들어다 저만치 옮겨 두고 다음 주전자를 들러 갔다. 왔다가갔다가, 왔다가갔다가 왕복 두 번씩 하니 결과적으로 계산하면 오리거리를 이십 리길(2km×4회=8km)을 만들고 말았다.

 술 사러 간 나를 기다리는 어머니가 집 앞에서 나와 기다리고 있다. 나와서 보니 꼬맹이가 왔다가 갔다가 하는 것을 보고 이상히 여겨서 나오시고 말았다.

“오복아! 뭐 하노?”

“엄마! 술이 무거워, 한꺼번에 못 들고 오잖아.”

“하하하. 그래 내가 잘 못했네. 아이고. 고생 했제.”

“아니던데요. 왔다가갔다가 비실비실 했을 뿐이었지요.”

 밀주근절로 나는 그 때부터 비실이가 되고 말았다. 󰃁

(푸른 숲/20100-20130316.)

출처 : 푸른 숲/20100
글쓴이 : 62seonsang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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