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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성인)푸른 숲 수필가·20100/청림수필집·내 고향 뒷동산에는

[스크랩] 푸른 숲/20100 수필2집 "내 고향 뒷동산에는"(51)이발

신작수필

51. 이발

이영백

cheonglim03@hanmail.net

 

 우리 집 벽장 속에 보관된 기계 하나가 있었다. 아버지가 아끼던 이발 기계다. 그러나 평소에 사용하지 않아서 녹이 쓸어 있다. 이발 기계에다가 끝에 덧 쉬우는 날도 있었다.

 시골 아버지는 반농반목수를 하셨기에 작은 칼을 먼저 금강석에 갈고 숫돌에다가 섬세하게 갈아서 나를 부른다. 빛이 번쩍 나는 칼을 가지고 당신의 머리카락을 백호 쳐 달라 한다. 처음에 겁이 났지만 자꾸 요령을 익혀 백호를 잘 치게 되었다. 아버지는 백호를 친 후 가마솥에 물을 덥혀 깨끗하게 씻으신 후 그렇게 시원해 하는 것을 어려서부터 보며 자랐다.

 문제는 우리들의 조발(調髮)이었다. 우리들 조발은 간혹 자전거에 이발 기구를 상자 째 싸서 다니면서 ‘이발! 이발!’하면서 외치고 다니는 사람을 불러서 돈 주고 깎았다. 이동 이발사는 논이나 밭둑에서도 이발을 해 주고 돈을 버는 것이었다.

 그런데 자전거 이발사 아저씨가 몸이 편찮으신 달포가 지나도 오지를 아니하였다. 기다리다 못해 아버지는 손수 우리들 조발을 해 준다고 사다 둔 중요한 이발 기계를 끄집어내어 날을 숫돌에다가 갈고 있었다.

 그날이 바람 부는 봄날이었다. 아버지의 사랑으로 우리들 머리카락을 깎으려는 것이었다. 제법 이발사 흉내를 내듯이 나무상자를 마당에 내어놓고 우리를 걸터앉게 하였다. 수건을 목에 두르고, 넓은 천인 보자기까지 덮어서 제법 이발소를 잘 차리었다. 이발 기계를 들고 나의 뒤통수 아래덜미에다 갖다 대고 밀어 올린다. 이때다. 이발 기계 날이 나의 머리카락을 꽉 물고 들어지는데도 그냥 밀어 올리니까 일부는 뽑히고, 피가 나고 그저 머리카락만 물고 들어졌다.

세상 천지에 어찌하여 머리카락은 자르지 않고 물고 들어지는 기계인가? 피가 나고 따가워서 조발은커녕 어디까지라도 도망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다시 조발해 주겠다고 앉으라고, 이제 괜찮다고 달랬다. 한 번 더 속는 셈치고 앉았다. 아니나 다를까 이번에도 역시 이발기계가 머리카락은 자르지 않고 머리카락만 물고 들어졌다. 이제는 정말 그 기계가 무서워졌다. 그날 이후로 이발 기계를 다시는 사용하지 아니하게 되었다.

 시간이 밤낮으로 흘러 날짜가 지나가니 머리카락은 길어 질대로 길어진다. 가만히 있어도 자라는 것은 손발톱과 머리카락뿐이다. 이발은 해야 되겠고, 돈은 없고 이제는 어머니께서 가위로 머리카락을 잘라 주겠다고 한다.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자리에 앉았다. 우리 집 바느질함에서 나온 가위로 삭둑삭둑 잘라 주어서 하나도 아프지도 않고, 물고 들지도 아니하였다. 행복한 이발을 하여서 정말 즐거웠다.

 이튿날 학교를 갔다. 친구들이 나를 보고 웃는다. 모두가 깔깔거리고 웃는다. 그것도 비웃음이다. 아니 왜들 그렇게 나를 비웃을까? 나는 이유도 몰랐다. 어머니께서 조발하여 준 작품 때문이었다. 머리 밑동부터 머리카락을 잘라서 위로 올라가며 남겨 두었으니 모양새가 마치 밥그릇 엎어 둔 모양에 사방공사를 한 것처럼 층을 이루었으니 친구들이 웃을 수밖에 없었다.

집으로 돌아 와서 울고 있으니까, 셋째 형님이 나를 불러 달래었다. 다시 자리에 앉으라고 하고서는 층이 난 내 머리카락을 이제는 빗을 대고 가위로 잘라서 그 층을 모두 없애 주었다. 정말 고마웠다. 셋째 형님은 어디서 그런 기술을 배웠는지 모르겠다.

 이동 이발사도 아니 오고 기어이 새 장터로 돈을 가지고 이발관을 찾아야 했다. 이발관에 들리니 이발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줄줄이 앉아 대기하고 있었다. 하염없이 순서를 기다린다.

 당시 이발관 속에는 밀레가 이삭줍기나 만종의 그림이 있고, 혹여 어미돼지가 열 마리도 넘는 새끼에게 젖먹이는 그림도 걸려 있고, 곁에는 조발가격 액자가 걸려 있다. 오래된 비누통에 솔도 들어 있다. 수건은 잘 마르지 않으니 세탁하여 천정에 줄 매고 줄줄이 늘어 두었다.

 이발사는 빠른 손놀림으로 머리카락을 자르고, 면도를 위해 길게 드리워 둔 가죽에다가 면도날을 탁탁 갈아서 세우고 면도를 한다. 난로에 덥힌 물은 수증기가 오르고 덥혀진 물로 머리 감긴다. 이발사는 1인 다중 역할을 혼자서 척척 해낸다. 차례를 기다리고 기다리는 사이에 라디오에서 구수한 흘러간 노래가 나오다가 고춘자 장소팔의 만담도 나온다.

 오후 중참 때에 와서 저녁도 굶고 벌써 밤이 되었다. 조발은 어른들이 시간 걸리지 아이들은 머리만 깎으면 끝이다.

 셋째 형님과 조발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벌써 토함산 산마루에 보름달이 환하게 떴다. 조발을 마친 우리들은 그제야 우리키보다 긴 그림자를 밟으며 집으로 돌아온다. 󰃁

(푸른 숲/20100-20130317.)

 

출처 : 푸른 숲/20100
글쓴이 : 62seonsang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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