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차성인)푸른 숲 수필가·20100/청림수필집·내 고향 뒷동산에는

[스크랩] 푸른 숲/20100 수필2집 "내 고향 뒷동산에는"(49)술 익는 마을

신작수필

49. 술 익는 마을

이영백

cheonglim03@hanmail.net

 

 나는 아버지와 늦게 만났다. 연치 쉰하나에 나를 낳아주셨기 때문이다. 다른 친구들은 아버지를 할아버지인 줄 안다. 동네 분들도 나를 손자인줄 알고 있는 분이 많았다.

 우리 집에 제일 꼬맹이로 아버지 일 하시는데 새참 배달을 내가 맡았다. 새참이라야 동동주 한 주전자와 김치조각이 전부다. 주전자 주둥이에 젓가락 두 짝을 꽂고 주전자 뚜껑 덮을 곳에 김치 담은 보시기를 얹어서 뚜껑을 덮었다. 또 그 뚜껑 위에 사발 하나 얹어 주었다. 아버지 동동주 한 사발로 새참이 거뜬히 되시는 모양이었다.

 아버지 평소에도 술을 좋아 하지만 일하실 때는 꼭 필요하였다. 우리 집에는 해마다 동동주를 담가 둔다. 농촌에서 일하면서 술이 없으면 기운이 떨어져서 일을 못한다.

동동주는 부의주(浮蟻酒) 혹은 짚가리 술이라고 한다. 부의주란 술 표면에 삭은 밥알이 둥둥 떠 있는 것이 마치 개미가 떠 있는 것 같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짚가리 술은 술 빚는 것을 단속하던 시대에 짚가리를 덮어 위장한데서 유래한다. 그러나 경상도에서는 그냥 동동주라고 많이 불리고 있다.

 오늘은 우리 집에 누룩 만드는 날이다. 술을 담그려면 누룩이 있어야 한다. 누룩은 고운 밀가루가 아니고, 통밀가루를 사용한다. 통밀을 2∼3번 으깬 정도이다. 통밀가루에 생수를 부어 가면서 반죽을 한다. 물의 얀은 밀가루 무게에 20∼30% 정도로 손으로 뭉쳐서 던져 보아 퍼지지 않고 형태를 유지하는 정도로 물을 넣으면 된다. 물을 많이 부으면 반죽은 잘 되지만 수분과다로 썩고 만다.

 반죽되고 나면 누룩 틀과 면 보, 주걱을 준비한다. 누룩 틀에 면 보를 깔고 반죽한 통밀가루를 골고루 꾹꾹 눌러 넣고서 밀가루 반죽을 채운다. 면 보를 덮어씌우고 발로 밟으면 모양이 된다. 누룩 틀이 사각이면 사각형이 되고 둥글면 둥글게 틀에 따라 누룩 모양이 결정된다. 쉬어 보이지만 이 누룩 만드는 것도 계속 만들다 보면 땀이 흐르고 만다. 수북이 만들어 나온 누룩을 이제는 띄어야 한다. 누룩만 놓으면 안 되고 바닥에 쑥, 솔잎, 연잎, 볏짚 중에서 한가지로 깐다. 우리 집에는 구하기 쉬운 볏짚을 깔고 누룩을 쌓고 또 볏짚을 깐다. 그리고 모두 만들어지고 나면 위에도 짚을 덮고 온도를 높여 띄운다.

 3일째부터는 백국균이 피고, 다음에 황국균이 핀다. 이 때 구수한 누룩 뜬내가 향긋하게 난다. 2주 정도 지나 덮은 것을 모두 걷어 내고 건조시킨다. 황국균이 많이 피어야 누룩이 잘 만들어진 것이다. 혹여 흑국균이 조금 피기도 한다. 또는 푸른곰팡이도 피는데 이는 좋지 않다.

이제 동동주를 담근다. 누룩은 술 담그기 전에 깨어보면 백국균이나 황국균이 있어야 좋은 것이다. 나머지는 잘 긁어내어 버린다. 대충 쪼개어 누룩을 가루로 만들어 둔다. 쌀이나 찹쌀로 고실 고실하게 고두밥을 해서 공기 중에 식힌다.

 술을 빚으려면 첫째가 물맛이요, 다음이 좋은 쌀이다. 우리 집은 술을 빚으려면 우물물을 미리 퍼 다가 항아리에 채워 두고서 준비한다. 그리고 좋은 술을 빚으려면 좋은 쌀을 가려서 고두밥을 하게 된다. 정성스레 가루로 만든 누룩도 준비한다.

 넓은 그릇에 물과 가루가 된 누룩을 붓고, 식힌 고두밥을 넣어 버물어서 항아리에 넣는다. 술 빚은 항아리에 천을 덮는다. 고무줄로 둘러 묶어 방 아랫목에다 이불을 덮어 3일간 둔다. 3일 째가 되면 술 익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뽀글뽀글 기포를 형성하면서 포각포각 술 익는 소리, 어떨 때는 또각또각 술 익는 소리가 들린다. 이 때 몰래 숟가락을 가지고 천을 벗기고 퍼 먹으면 덜 익은 술이 아주 달다. 한 숟갈, 두 숟갈 퍼 먹다가 나중에 술에 취하고 만다. 그래도 붙잡히지 않으려고 더 먹고 싶은 유혹을 뿌리치고 다시 덮어 고무줄로 묶는다. 술이 많이 익으면 천을 덮어 두어도 포각포각 하는 술 익는 소리가 크게 들린다.

 고향 집집마다 우리 집처럼 동동주를 빚기 때문에 집집마다 술 익는 소리가 합창을 한다. 이 집에서도 포각포각! 저 집에서도 또각또각! 집집마다 술 익는 소리가 온 동네가 술 익는 소리로 떠들 석해 진다. 우리 마을에는 술 익는 마을이 되고 만다. 집집마다 포각포각하는 의성어가 만발한다. 󰃁

(푸른 숲/20100-20130315.)

출처 : 푸른 숲/20100
글쓴이 : 62seonsang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