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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성인)푸른 숲 수필가·20100/청림수필집·내 고향 뒷동산에는

[스크랩] 푸른 숲/20100 수필2집 "내 고향 뒷동산에는"(47)찔레꽃 줄기 수난

신작수필

47. 찔레꽃 줄기 수난

이영백

cheonglim03@hanmail.net

 

 산 빛이 갈매 빛으로 변하면 농촌에는 배고픔을 달래어야 하는 계절이 온다. 찔레꽃 머리가 시작되면 바로 초여름으로 우리 집에도 보릿고개가 시작하여 먹을 것이 부족하고 만다. 1960년대까지도 시골은 항상 배가 고팠다. 곧 피고개가 오면 더욱 집집마다 먹을거리를 줄여야 할 수밖에 없다.

 계절의 횃대비가 쏟아지며 그래야 농사가 잘 되겠지만, 오늘 아침부터 무덥다. 우리 핫어미들은 제 새끼 굶기는 것이 제 배고픔보다 더 아리다. 어찌 이 어린 것들을 데리고 어려운 고개를 넘어야 하나. 항상 걱정이었다. 어린 것들이 먹을 것이 부족하여 얼굴에 흰 버섯이 핀다.

 여름이 되고 보면 풋 꼭지로 달리는 열매를 찾아야 한다. 시골에서는 열매가 여러 가지로 많이도 열린다. 보릿고개를 용케도 넘길 수 있도록 갖가지 열매를 찾는다. 감이 채 굵지도 않았는데 차마 딸 수는 없었고, 아이들 모이 감으로 떨어진 풋감을 주어다 물그릇에 담가 삭히고 있다. 이것도 아이들에게는 배고픔 달래는 훌륭한 모이가 되기 때문이다.

 우리 조상들은 그렇게 계절이 변화는 시기에 피죽바람까지 불어대니 삶의 난관에 부닥치는 곤궁한 시기를 안 겪을 수가 있단 말인가? 핫어미는 헛 입오금으로 환상을 만들고 만다. 누가 들판에서 슬프고 슬픈 체금을 분다. 풀잎에서 어찌 그리 청아한 소리가 난단 말인가? 그 소리에 자꾸만 배고픔을 더욱 부채질하고 만다.

 소 풀 뜯기러 나와 봐도 푸석 땅에 풀도 없다. 어제 벤 자리에 간밤으로 풀이 어찌 자라나겠는가? 도랑가 둑에는 풀마저 사라진지 오래다. 날이 가물면 금년 농사도 천수답 집들은 걱정이 태산이다. 작은 머슴은 코납작이 가 되어 하릴 없이 지게 작대기만 두드린다.

 오늘 날씨도 차일구름으로 을씨년스러운데 어찌 배고픔을 무엇으로 달래려나? 쓸데없이 소 구녕살만 때리다가 쇠파리만 와글거린다. 사람들은 어느 누구나 배고프면 못 견딘다. 어머니 몰래 창고에서 흰 쌀을 한 움큼 가지고 나와 쌀 톨 하나씩 입에 넣는다. 입속에서 몰래 씹어도 내 귀에는 “따악, 따악!” 하늘 무너지는 소리로 들린다. 아! 어찌도 이렇게 배고프단 말인가? 어제 저녁 먹은 나물죽은 이름이 죽이지, 완전 풀을 우려낸 시퍼런 물죽이었다. 입에 씹히는 보리쌀알은 퍼질 대로 퍼져서 이빨에 씹히는 섬유질을 느끼지 못한다.

 이제 마지막 한 입에 넣을 수 있는 것은 찔레꽃이 핀 줄기가 있을 뿐이다. 붉은 찔레꽃이 소담하게 피어 있다. 이를 발견하자 말자 달려든다. 찔레꽃에 새 줄기가 나고, 새싹이 돋아나 있는 찔레꽃 줄기를 마침내 찾았다. 아무도 꺾지 않았던 찔레꽃 줄기를 보고서 참지 못하여 그만 꺾고 말았다.

 오동통하게 살이 오른 찔레꽃 줄기는 한 마디가 제법 길게 자라 먹을 것이 있다. 애가시를 따 버리고, 껍질을 꺾은 자리에서 보푸라기를 일구어 손톱으로 살살 달래며 껍질을 일 받아 벗긴다. 용케도 물기를 머금어 찔레 꽃 줄기는 껍질이 벗긴 채 나의 입 속으로 쏘옥 들어가고 만다.

 오래간만에 입 속으로 군것질을 넣는다. 그래도 헛입을 오금거리는 것보다야 목구멍으로 통하여 넘어가니 목이 시원해진다. 뱃속으로 내려가면서 허기진 배를 채우게 된다. 나는 이 행위가 즐거워 찔레꽃 줄기를 다시 찾아 꺾는다. 또 껍질을 벗긴다. 입에 넣는다. 연속 동작으로 누가 시키지도 아니하였는데 그저 입 속으로 들어가게 만든다. 그 손놀림이 어찌 그렇게 잽싼지 아무도 모를 지경이다.

 이 때다 작은 머슴이 따라 저도 내 동작을 익혀서 바로 따라 한다. 찔레꽃 핀 줄기도 경쟁하여야 따 먹을 수가 있다. 길가에 소담하게 핀 붉은 찔레꽃 줄기가 수난을 맞아서 그만 대궁이가 모두 사라지고 말았다.

 이를 두고 내 고향 찔레꽃 줄기 수난이라고 명명하였다. 󰃁

(푸른 숲/20100-20130313.)

 

출처 : 푸른 숲/20100
글쓴이 : 62seonsang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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