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푸른 숲/20100 수필2집 "내 고향 뒷동산에는"(45)잔디 씨

신작수필

45. 잔디 씨

이영백

cheonglim03@hanmail.net

 

 어려도 용케 시골에서 살아서 온갖 것들을 기억하고 있다. 1962년 초등학교 6학년 시절의 이야기이다. 5학년 때 5·16군사혁명이 일어났고, 화폐개혁도 하여 사회적으로 변화가 일어났다. 어려서 잘 몰랐지만, 여하튼 사회적으로 변혁이 일어난 것이다. 만나면 인사도 “재건합시다!”이었다. 초교 담임선생님도 평소 양복을 입다가 갑자기 선생님들 모두 골덴 바지에 윗저고리까지 입고 명찰까지 달고 근무를 하였다.

 우리 학교는 세계적 관광지 불국사(佛國寺)곁이라 그런지 몰라도 교육감님이 방문하였다. 군복을 입고 군용차량을 타고 우리 초등학교를 방문을 하였다. 교무실에 들어 와서는 선생님을 모아 놓고 일장 연설을 하다가 여선생님에게 꾸중 하는 것도 보고 말았다. 방문 후에는 넓은 운동장에 반을 잘라서 배추, 무를 심어 가꾸라고 하였다. 나중에 수확하여 나누어 주기도 하였다.

 5·16군사혁명으로 급격히 달라지기 시작하였다. 아니 환경부터 달라지기 시작하였다. 시골 마을안길이 넓어지고, 초가지붕을 내리고 슬레이트 지붕으로 바꾸기 시작하였다. 심지어 슬레이트 지붕에 형형색색으로 페인트를 칠하기도 하여 알록달록한 지붕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이제는 사는 집부터 정신까지 개조 하려는 모양이었다.

 나는 일요일이 되면 작은 아버지를 따라 벌거숭이가 된 마석산(磨石山)으로 가서 사방공사를 하러 다녔다. 어른은 일당이 밀가루 두 포대(1포대 250원), 아이는 한 포대이었다. 당일 사방공사를 하고나면 밀가루를 바로 주는 것이 아니라, 전표(傳票)라는 것을 끊어 준다. 이를 모아서 약 10일마다 간주를 하는 것이다. 간주하면 밀가루를 받을 수 있다. 비탈진 산골짜기를 올라 산마루에 오르면 비료와 씨앗을 분배 받고, 괭이로 구덩이를 파고 씨 뿌려 비료도 덤으로 주고서 묻는다. 이것이 당시 사방공사의 제일 쉬운 방법이었다. 사방공사에 제일 많이 쓰는 씨앗은 역시 잔디 씨다. 힘이 좋은 장정은 무너진 산을 바위로 막거나, 심지어 시멘트 공사까지 하는 일들을 하였다.

“다음 주 월요일까지 잔디 씨 두 홉씩 채취하여 제출한다.”

“선생님! 잔디 씨가 무에요?”

“잔디 씨는 어디에다 쓰나요?”

 정말 그랬다 처음에는 잔디 씨가 무엇인지도 모르는데 오늘이 금요일, 다음 주 월요일까지 두 홉씩이나 채취하여 제출 하라니 기가 찰 노릇이다. 나는 매일 소 풀 베러 다니면서 잔디 씨를 잘 알고 있었다. 소 풀 먹이다가 심심하면 쓸데없이 잔디 머리에 달린 새카만 씨를 모아서 부비고 입김으로 분다. 새카만 잔디 씨가 한 움큼이 나온다. 많이 채취 해 본 일이라 나는 재빨리 잘 익은 잔디를 골라 씨를 훑기 시작하였다. 잔디는 햇볕이 잘 쪼이는 양지 바른 곳에 자라며, 아울러 그 씨도 많이 받을 수 있다.

 잔디 씨는 농촌에서 마음만 먹고 받으면 두 홉은 금방 채취할 수가 있었다. 아예 나는 채취하는 김에 다섯 홉을 채취하여 두었다.

 당시 우리 반에는 55명이었으니 55명×2홉=110홉, 10홉이 한 되이니, 한 학급에 11되나 되었다. 아니 더 이상이 되었다. 이렇게 채취된 잔디 씨앗이 반, 학교, 지역 시·군·도 등 나라 전체로 모으면 전국의 사방공사를 위한 잔디 씨가 모이게 되는 것이다. 사방공사에 잔디 씨는 제일 필요한 가장 기초적인 재료이었다. 잔디가 싹터서 자라면 뿌리가 땅을 얽어매어서 어지간히 홍수가 나도 산이 허물어지지 않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바로 벌거숭이산을 푸르게 만드는 첫걸음이기도 하였다.

 그때는 몰랐지만, 혁명정부이후 성공한 것이 두 가지라고 한다.

 첫째는 세계적으로 가장 짧은 기간에 치산(治山)으로 사방(砂防)공사에 성공한 푸른 나라가 되었고, 둘째는 가장 짧은 기간에 공업국가로 성장하여 세계 8위의 경제 대국이 된 것이다. 원조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나라는 전 세계적으로 우리나라밖에 없다고 한다.

 중국에서 황제는 치산치수(治山治水)가 제일 큰 명제라고 들었다. 산을 푸르게 하고 범람하는 강을 관리하면 좋은 나라가 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치산치수는 상호 관계가 있다. 산을 잘 관리하면 홍수를 방지하고, 홍수가나지 않으면 강이 범람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작은 잔디씨앗 채취로 부터 시작한 사방공사는 치산의 가장 중요한 일이었기에 가장 수가 많은 초등학교 학생들이 동원된 것이다. 󰃁

(푸른 숲/20100-20130311.)

출처 : 푸른 숲/2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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