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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성인)푸른 숲 수필가·20100/청림수필집·내 고향 뒷동산에는

[스크랩] 푸른 숲/20100 수필2집 "내 고향 뒷동산에는"(44)시계풀

신작수필

44. 시계 풀

이영백

cheonglim03@hanmail.net

 

 어린 시절 소 풀 먹이러 몰고 나가야 했다. 낫과 지게를 함께 지고 나간다. 소는 도랑에다 몰아 넣어두어 풀 먹으면 되고, 나는 그사이에 도랑둑 풀을 베어 바지게에다 얹어 쌓는다.

 한 지게를 해 두고 나면 나의 시간이다. 도랑 높은 둑에 누워서 흘러가는 저 구름을 바라다본다. 구름이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구름 따라 흘러가고 있다. 하늘에는 구름이 여러 가지 동물 모양으로 바뀐다. 어떤 구름은 희한하게도 마치 토끼 같다. 토끼가 하늘 가득히 모여 들어서 귀여운 토끼들이 풀밭에서 논다. 마침내 토끼풀을 먹는다. 벌써 깊은 꿈속에 빠져서 토끼를 쫓느라 정신이 없다.

 토끼는 아무 풀이나 잘 먹지 않는다. 토끼풀이라고 하는 클로버다. 토끼들이 클로버를 잘 먹는다. 하늘가득 그 많은 토끼들이 어디서 나왔을까? 한창 토끼에 정신이 팔리고 있는데, 금자와 봉금이가 와서 나의 단꿈을 깨우고 만다.

 

“오빠야는 소 먹이러 왔다가 낮잠만 자꾸 자노?”

“응, 누구야! 내 단잠을 누가 깨웠노? 토끼들은?”

금자와 봉금이는 자매다. 두 가나들에게 어릴 때 미스코리아 만들어 줄 것이라고 머리에다 클로버왕관을 씌워 주면, 금자는 내 코앞에 와서,

“오빠야! 누가 더 이쁘노? 솔직히 말 좀 해 바라!”

고 졸라 되면서 한 쪽 눈을 깜빡 거리며,

“이 가나야! 너는 미스 코리아 진이고, 봉금이는 선이다. 우짤래?”

하고 답변해주면 그때서야,

“오빠야! 고맙데이. 우리 집에 가서 뽀빠이 줄께.”

라고 말했다. 사실은,

“금자한테는 비밀인데∼. ㅎㅎㅎ∼. 봉금아! 네가 피부도 뽀얗고 예쁜 것은 사실인데∼ 뭐.”

가나들 머리에 왕관만 씌워 준 것이더냐?

“시계풀 따서 양쪽 팔목에 꽃시계 만들어 채워주고, 진주 목걸이 대신에 꽃목걸이 예쁘게 걸어줬던 기억들이 새삼스럽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나한테 고맙다고 말해 보아라. 새보머리에서 네 잎 달린 클로버를 따다 책갈피에 넣어 두었는데 언젠가 만나면 주려고 했다. 봉금아! 너하고 나하고의 깊은 우정은 죽을 때 까지 잊을 수가 있겠나?”

“봉금아! 지금 몇 시고?”

“으, 아가시(씨) 코티분인데.”

“아니지. 경주시 여러분 담배꽁초지. 하하하”

 하하하∼. 그 옛날 우리 집 곁에 이사 온 금자와 봉금이는 지금 어디에 살고 있을까? 오로지 곁에 나이어린 친구로 그 자매만 있었다.

 

 이제 시계풀, 클로버를 보니 그 옛날이 생각났다. 중국 길림성 환인(桓仁) 광개토대왕릉에 참배하러 간 2006년 7월 27일 입구에 들어서니 광개토대왕릉비(碑)가 있었고, 더 깊숙이 왕릉을 보러 가는 중인데 여름이라 무척 더웠다.

“L선생님! 저기 보세요. 뽕나무가 있네.”

 뽕나무에 오디가 새카맣게 달려 있다. 고등학교 G선생님은 아예 따먹고 있었다. 먼저 들어 온 둘은 오디만 따 먹었다. 갑자기 배가 불러왔다. 이제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발아래 잔디가 아닌 시계풀이다.

 광개토대왕릉 땅 바닥에 보이는 것은 온통 시계풀인 클로버뿐이었다. 처음에 들어오면서 새파란 것은 어련히 우리나라로 치면 고적지에 잔디를 가꾸어 둔 것으로 인식되어 잔디인줄로만 알고 있었는데, 아니 이럴 수가 있나? 가까이 와서 오디 따 먹고 정신 차려 보니 잔디는 없고, 모두가 그저 새파란 시계풀인 클로버뿐이었다.

 

 물론 고향 새보 도랑둑에 시계풀이 그렇게 많은 것은 아니었다. 내 고향 시계풀과 광개토대왕릉에 잔디 없이 시계풀만 고의적(?)으로 심어 둔 것은 잔디가 그만큼 귀하기 때문일 것이라고 퍼뜩 생각이 나고 만다. 우리나라 잔디는 여북하면 ‘금잔디’라 하겠는가? 우리나라 잔디와 시계풀인 클로버가 새삼 생각이 엉킨다. 󰃁

(푸른 숲/20100-20130310.)

 

출처 : 푸른 숲/20100
글쓴이 : 62seonsang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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