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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성인)푸른 숲 수필가·20100/청림수필집·내 고향 뒷동산에는

[스크랩] 푸른 숲/20100 수필2집 "내 고향 뒷동산에는"(41)창호 만들기

신작수필

41. 창호 만들기

이영백

cheonglim03@hanmail.net

 

 나는 어려서 우리 집 창호(窓戶)를 통하여 한글을 배웠다. 창호에는 창호 틀과 함께 사이, 사이에 가로 질러 문을 유지하도록 하기 위한 빗살이 들어 있다. 우리 조상들은 창호를 그냥 만든 것이 아니라, 나에게 글자를 가르쳐 주려고 그렇게 잘 만들어 주신 것일까? 정말 고마운 일이다.

 창호라는 말은 창과 외짝으로 된 지게 호〔室口〕를 이르는 말이라 한다. 본래 한옥에서 창호를 빼 버리면 기둥만 남는다고 한다. 그만큼 창호를 우리 조상들은 효과 있게 사용한 것이다. 바로 호(戶)는 방을 드나들 때 사용하는 문이고, 문(門)은 집을 드나들 때 사용하는 대문을 말한다. 그러나 한국의 전통가옥에서는 창과 문의 구별이 뚜렷하지 않으므로 일반적으로 소목(小木)으로 짠 것은 창을, 대목(大木)으로 짠 것은 문이라 한다. 그리고 이것도 역으로 만들고, 역으로 사용하니 헷갈린다.

 창 종류로는 살창, 용자(用字)창, 아자(亞字)창, 완자〔卍字〕창, 정자(井字)창, 빗살창, 소빗살창, 숫대살창, 귀갑(龜甲)창, 꽃살창 등이 있다고 한다.

아버지는 목수이시면서 이렇게 많은 창이 필요하지 않았다. 자연적으로 바람을 들고 나게 할 문을 만들면 되는 것이었다.

 우선 기둥과 기둥 사이에 지주를 박아 두었기에 문을 짜 맞추어 달면 되는 것이다. 그래도 제일 많이 사용하는 큰방 문은 문틀이 준비되어야 한다. 빗살 대를 설치하려면 계획적으로 정한 것을 가지고 창틀에 끼울 홈을 파는 것을 일일이 자로 재서 그 간격을 일정하게 하여야 했다. 먹줄 통을 준비하여 줄 끝을 박아 둔 곳 반대편에서 힘껏 먹줄을 먹인다. 이제 작은 나무 자를 대고 줄을 그어서 하나하나 끌로 구멍을 파는 것이다. 이 구멍 파는 끌은 가늘어야 한다. 나무망치로 끌 머리를 치면 끌이 문틀에 하나씩 홈이 파이게 되는 것이다.

 아버지는 한나절 내내 파내어 놓은 끌 머리에 나온 나무 부스러기가 소복이 쌓여 있다. 이 부스러기를 그냥 버리는 것이 아니라 모아 둔다. 불을 피울 때 불씨를 효과 있게 사용하려고 말이다. 시골에서는 어느 하나 버릴 것이 없었다. 축축한 것은 거름이요, 마른 것은 불쏘시개로 사용 되어질 수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어려서 부터 아버지 따라 절약하는 것을 알았다. 무엇이든 함부로 버리지 않는 습성(習性)이 묻어나기도 하였다.

 아버지는 창호를 만들 때 홈파기에 시간을 다 보낸다. 빗살을 만들어 넣을 때도 빗살과 빗살이 크로스 되는 곳에서는 서로 맞물리도록 하여 하나의 작품으로 태어나는 것이다. 그래야 나중에 내가 한글을 배울 때 그 빗살로 글자를 만들 수가 있다.

 “ㄱ”자는 정말 쉽다. 빗살 따라 오른 쪽으로 긋고, 왼쪽으로 내리면 기역자가 아닌가! 우리 한글이 이래 쉬운 것이다. “ㄴ”자는 “ㄱ”자의 반대다. “ㄷ”자는 작대기 따라 하나 덧붙이면 되고, “ㄹ”자는 빗살 따라 고불고불 따라 가면 된다. “ㅁ”자는 순서대로 막으면 된다. “ㅂ”자는 “ㅁ”자에다가 양쪽으로 끌어 올리면 된다. “ㅅ”자는 아무데나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반달창이나 특수한 문에서 나타난다. “ㅇ”자도 그렇다. “ㅈ”자는 “ㅅ”자를 빌어 위에다 빗살 작대기를 더하면 된다. “ㅊ”자는 “ㅈ”자 하나 추가 하면 되고, “ㅍ”자는 “ㅁ”자를 오른 쪽, 왼쪽으로 늘이면 되고, “ㅎ”자는 반달창에서 찾으면 된다. 우리 한글이 모두 창에서 나타난다.

쉽게 만드는 창은 대나무를 쪼개어 속을 고르고 45도로 끼우면 문살이 된다. 머릿방 문이나 뒷문은 이렇게 만들어 달아 놓는다.

 아무렇거나 한옥에는 창호를 모두 빼버리면 기둥만 남는 게 그 특징이다.

 이제 한옥의 창호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글자가 보이고, 우리 조상들의 지혜로움을 느낄 것이다. 사찰이나 향교 등 창호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것은 창호이기 전에 예술 작품이다.

어느 사찰에는 그렇게 좋은 보물이 잘 없는 반면에, 안내판을 읽어 보면 바로 창호의 문살이 최고 걸작으로 나와 있기도 하다. 내소사(來蘇寺)에 꽃살창은 못이 들어가지 않고 오직 나무로만 깎아 만든 것으로 명품이다.

 아버지는 그렇게 대목수도 도편수도 아니건만 그저 초가에 달아 놀 창호를 만든 것은 이 또한 나에게는 경이로운 일이기도 할 뿐이다. 󰃁

(푸른 숲/20100-20130305.)

출처 : 푸른 숲/20100
글쓴이 : 62seonsang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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