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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성인)푸른 숲 수필가·20100/청림수필집·내 고향 뒷동산에는

[스크랩] 푸른 숲/20100 수필2집 "내 고향 뒷동산에는"(38)집지을 황토 이기기

신작수필

38. 집 지을 황토 이기기

이영백

cheonglim03@hanmail.net

 

 시골 사는 보람은 도시에서는 느끼지 못할 것이다. 소도시 곁 전형적인 농촌에서 나는 자랐다. 아버지 또한 전형적인 전근대적 사고와 생활 그 자체이었다. 모두가 자급자족이요, 1950년대 생활에서 철저한 돈을 쓰지 아니하는 농촌생활인이었다.

 우리 집에 현대화가 된 것으로는 가정보감 한 권이 구입되어 있을 뿐이었다. 책 속에 목차를 들여다보면 재미가 난다. 가정 의학이 있고, 가정예절에는 관혼상제가 들어 있고, 신수 보는 법, 꿈 해몽법, 숫자 점보기, 관상보기, 축문쓰기, 궁합보기, 부적 등 인간 생활에 필요한 것이 모두 나온다.

 아버지는 일자 무식하셨기에 책을 사다 두고서는 내가 초교 입학 전부터 서당 다녔다고 이 책을 통하여 나에게 물으면 내가 답을 해 드려야 했다. 부록에 있는 것으로 지붕 이는 날, 장 담그는 날, 이사 가는 날 등이 들어 있어 생활에 요긴하게 활용 하였다.

 이런 생활 속에서 아버지는 반농반목수를 하였다. 우리 집에는 큰 머슴, 중 머슴, 작은 머슴 등 모두 제 할일들을 배분하여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게 하였다. 큰 머슴은 큰 머슴대로 할일이 많았다. 우선 조금 먼 산에 땔감 나무를 하러 가야하고, 집에 돌아오면 큰일들이 무수히 기다리고 있다. 중 머슴은 그래도 먼 산에 나무를 해 오고, 소 먹이는 것에 힘을 기울려야 하였다. 작두에 여물을 썰어야 하고, 외양간 거름을 치우고 깨끗한 외양간 관리도 하여야 한다. 작은 머슴은 나와 같이 가까운 산에 나무도 하고, 소 풀베기며, 산에 소 먹이는 일을 감당하고 집에 소소한 일들을 거들어야 한다.

 아버지는 재산증식에 욕심이 나서 집짓기를 도맡아 오신다. 집을 한 동(棟) 지으면 돈이 크게 들어오기 때문이었다. 머슴 셋에 아버지, 셋째 형, 막내 형, 나까지 남자들만 일곱 명이 모두 일할 사람들이다. 낮에 평일 일만 하고 세경을 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집짓기를 도맡아 두고서는 비오는 날이나 자투리 시간이 나면 일 하려고 기둥과 지붕만 우선 만들어 두고서는 수시로 집 짓는 것에 우리 인력을 동원하는 것이다.

 이미 터를 닦고, 주춧돌을 준비하고 기둥을 깎아 세우고, 연목을 걸쳐 두고서는 오늘 지붕을 이었다. 벌써 초겨울이 시작 되는 날이다.

 집짓는 터에는 산에서 이미 황토(黃土)를 퍼 다가 집지을 마당에 쌓아 두었다. 곧 명령이 떨어지지 싶었는데 마침내 나에게 떨어지고 만 것이다. 새집 지을 마당에 황토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황토는 집짓는 데 여러 모로 쓰이었다. 집 천장에 왕토로 바르는 흙이며, 벽에도 안팎으로 바르고, 부엌도 죽담도 만들며 심지어 마당에 깔아서 튼튼한 마당도 만들어야 하는 재료이었다.

 작은 머슴이 부지런히 도랑에서 물을 길어서 동이, 동이 갖다 두었다. 중간 머슴은 삽을 들고 황토 이기기를 준비하고 있다. 아버지는 황토 이기는 것을 꼭 나에게 시켰다. 나는 팬티 바람에 황토를 이기려고 준비하였다. 이미 초겨울이라 오늘도 춥다. 도랑물은 벌써 차다. 중 머슴이 삽을 들고 황토를 파헤치고, 작은 머슴이 차디찬 물을 들이 부었다. 그리고 이기기 시작한다. 나는 춥다고 찬물을 부은 황토 속에 들어가지 않고 있으려니 아버지께서 ‘빨리 들어가서 밟아라!’고 재촉하신다. 물론 이때 헌 가마니를 찢어서도 넣고, 짚으로 여물을 썰어 두었다가 같이 이긴다.

 눈치도 없이 작은 머슴이 또 찬물을 들이 붓는다. 아니 푹푹 빠지는 황토 속으로 들어가서 내 작은 여린 발바닥으로 황토를 이기고 있다. 긴 대나무 막대를 지주를 삼아 넘어지지 않으려고 붙들고 이기도 있다. 차디찬 물은 내 알싸한 다리의 살갗을 파고든다. 처음에는 물기가 많은 데는 많고 없는 데는 없고 하다가, 고루 이기기 시작하면 물기가 잘 배분되어 됨직한 반죽이 되고 만다. 밟고 또 밟고 이기고 또 이기기를 반복하여 붉은 색의 황토를 이겨 둔다.

 내 의지로 얼굴에 손을 대지 않는다고 기억해 놓고서는 저절로 언제 손을 갖다 댔는지 모른다. 아니면 길 대 황토가 튀어서 얼굴에 묻히고 만다. 황토를 다 이기고 나면 내 눈만 빠끔히 보이고 온통 얼굴에 황토다. 오늘날로 말하면 황토 자연 팩을 한 것이다.

 황토가 바로 집짓는 최고의 재료이었다. 황토가 없으면 초가 짓기에 마무리가 될 수가 없다. 오늘날에 와서 황토로 집짓고 살았던 사람들은 최고로 건강한 집 속에서 살았다. 바로 아토피가 없이 살았던 것이다. 우리 조상들의 현명함이 초가에 살았던 사람들로서는 고맙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

 황토를 다 이기고 나서 사용하기 전까지 거적을 덮어 둔다. 이기 황토는 초가 짓기에서 곧 사용하게 될 것이다. 󰃁

(푸른 숲/20100-20130302.)

출처 : 푸른 숲/20100
글쓴이 : 62seonsang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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