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차성인)푸른 숲 수필가·20100/청림수필집·내 고향 뒷동산에는

[스크랩] 푸른 숲/20100 수필2집 "내 고향 뒷동산에는"(36)유휴인력의 집짓기

신작수필

36. 유휴인력으로 집짓기

이영백

cheonglim03@hanmail.net

 

 사람의 움직임에는 다른 것도 있겠지만 경제적 이윤(利潤)이 오는 데서부터 출발하는 모양이다. 아버지는 반농반목수하면서 곧잘 시골집을 지었다.

 시골에서 남아도는 유휴인력을 그냥 보내지 아니 하였다. 아버지, 셋째 형, 막내 형, 큰 머슴, 중 머슴, 작은 머슴, 나까지 남자꼭지가 많은 집이다. 어찌 비가 온다고 놀고, 눈이 온다고 놀고만 세경을 주고, 밥을 먹게 할 수 있겠는가라는 대단한 경제 철학의 개념이 확립되어 있는 아버지로서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유휴인력 활용이 시골 재산 늘이는 데에 기발한 방법인 것이다.

 물론 형편이 좋으면 아예 돈을 주고 사거나 먼 산에서 나무를 구해 오지만, 그렇지 못한 때에는 또 좋은 아이디어를 내었다. 바로 불난 집을 해체하여 쓸모 있는 자재를 모두 찾아서 이동해 오는 것이었다.

 웬만하면 그냥 성한 재료를 구해서 집을 지으련만 집에서 십리나 떨어진 산골에 불이 난 집을 어찌 알고서는 우리를 모두 동원하였다. 그것도 낮에는 정상 일을 하고, 밤에 동네 분들까지 동원하여 불난 집을 해체하여 두었다. 기둥, 연목, 주춧돌, 구들장, 죽담 돌, 정지 문 등 쓸 수 있는 재료는 모두 정리하여 두었다가 가져 오는 것이다. 물론 시커멓게 타거나 그을리다만 것들까지 이동해 오고 만다.

 흔히 아버지께서는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곧잘 들려주었다.

 옛날 어느 마을 구두쇠할아버지 집에서는 나갔다 들어오는 사람은 나무나 돌이나 무엇이라도 하나씩 들고 들어오라는 것이었다. 그 집 아들이 그냥 들어오지 못하고 바깥에 빛이 나는 돌을 들고 집에 들어왔다고 한다. 이튿날 그것은 밝은 낮에 보니 바로 그 돌이, 돌이 아닌 황금덩이였다고 한다.

 이러한 이야기를 나는 어려서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고 살았다.

 간밤에 우리 식구들과 동네 분들까지 동원하여 불난 집에서 쓸 만한 것 등은 모두 갖다 둔 것이 산더미 같이 쌓여 있었다. 하루아침에 거뜬히 새로 지을 집에 대한 자재로 70%는 구한 셈이었다. 그랬다. 당시 아버지의 머릿속에서는 다른 사람이 생각하지 못하는 일들이 샘솟듯 생각이 정리 되어 있은 모양이었다.

 이제는 시간이 나는 대로 우리들에게 일을 시키신다.

“저기, 저 연목더미에 쓸 만한 것 골라서 낫으로 나무 껍데기의 검댕을 모두 깎아 내어라!”

“저기 방문 틀은 안 되겠다. 모두 뽑아 버려라! 그리고 문틀만 물걸레로 닦아라!”

“구들장은 모두 한 곳에 모아라!”

 일상 이런 식으로 우리들에게 임무를 주는 것이다. 낮에 할 일들은 정상으로 모두 하고, 자투리시간에 쉬려고 하면 명령이 떨어지고 하는 것이었다. 이런 식으로 벌써 집지을 재료를 거개 준비하였다. 기둥으로 쓸 것은 새로 나무를 사거나, 몰래 베어다 숨겨 두었다가 먹통을 준비하고 줄을 치면 작은 도끼로 다듬는다. 재제소도 안 그치고 만든다. 그래도 정말 그럴싸한 기둥이 되고 만다.

 산골 불난 집의 재료로 집 한 채를 지을 각종 자재가 이제 완비된 것이다. 터 닦고, 주춧돌 놓고 이렇게 되고 보면 언젠가 기둥과 대들보로 상량식만 준비하면 바로 집을 세우는 것이다. 지붕에 재랍 얹고 알매 치면 지붕이 되고, 어느 샌가 이엉 엮어 지붕이고, 끝으로 용마루 덮으면 사람이 들어가서 살 수 있는 초가(草家) 한 채가 생기게 된다. 이은 지붕을 새끼줄로 당겨 묶어 두고서는 비나 눈이 와야 일을 또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또 시골집이 한 동(棟) 생겨서 추후 완료 하는 것이다. 불타버린 버린 집을 구하고, 그 재료를 얻어다가 조금씩 집지을 재료를 보태어 새로운 시골집 한 동을 만드는 기술은 아버지가 아니고서는 도저히 생각 못할 일들이다.

 물론 사대부 기와집은 아니지만, 그래도 누가 한 가족이 들어 와서 살 집을 이렇게 이루어 내다니 아버지를 아시는 분은 그저 놀라고 만다. 정말 은근과 끈기와 기발한 아이디어로 당시를 살아가는 지혜가 있지 아니한가?

󰃁

(푸른 숲/20100-20130228.)

출처 : 푸른 숲/20100
글쓴이 : 62seonsang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