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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성인)푸른 숲 수필가·20100/청림수필집·내 고향 뒷동산에는

[스크랩] 푸른 숲/20100 수필2집 "내 고향 뒷동산에는"(33)논보리 밭매기

신작수필

33. 논보리 밭매기

이영백

cheonglim03@hanmail.net

 

 농사짓는 데 밭매기 종류는 참 많다. 콩밭 매기, 담배 밭 매기 등은 수월한 축에 들어간다. 보리밭 매기 중에서 논보리 밭매기는 더욱 어렵다. 당시 보리밥은 주식(主食)이고, 쌀농사는 지어서 수입을 올려야 하는 곡식이다. 제일 힘든 일이 논보리 밭매기다. 논보리 밭에 제일 많이 나는 풀이 “독세”라는 이름의 풀이다. 오늘은 논보리 밭 매는 날이다 하면 모두가 진저리를 낸다.

 밭 매러 가는 풍경이 마치 죽으러 가는 흉내이다. 식구 모두가 호미 한 자루를 준비한다. 아예 머슴이 바지게에다가 호미를 수북이 짊어지고 나간다. 논보리 밭에 나는 독세는 제일 싫어한다. 하루 종일 풀을 매도, 뽑아도, 캐도 독세 풀은 줄어들지를 아니한다. 본래 보리밭에는 풀을 맬 것이 없었다.

 논에 벼를 심고 베고 난 후에 보리를 심어 키우려면 무논이었던 곳에 독세가 보리와 함께 커가기 때문이다. 못된 독세풀이 영양분을 모두 빨아 먹고 보리가 옳게 자라지 못하므로 연일 아버지는 논보리 밭을 매라고 독려하신다.

 문제는 논보리 밭매기가 진전이 아주 부족한 것이다. 하루 종일 논보리 밭을 매도 그 실적이 자주 저조하다는 것이다. 겨우 한 고랑을 매기가 어렵다. 문제의 원인은 보릿대와 독세 풀이 하도 많이 섞여 있어서 캐내기도 어렵고, 독세 풀 숫자가 너무 많은 데 있다.

그래서 아이디어를 내었다. 소에다 쟁기를 매어 아예 고랑을 깊이 파 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호미를 이용해서 보릿대가 있는 쪽의 독세 풀을 골라서 분리한 후에 고랑마다 바구니를 들고 퍼 담아 내는 것이다.

 이제부터 그 속도가 빨라졌다. 진즉에 소를 이용하여야 했다. 고랑을 파듯이 갈고 풀을 추려 내는 것이 논보리 밭 매는데 속도가 꾀 붙게 되었다. 소득을 더 올리려고 무논에다가 보리를 심은 것이다. 진즉에 이런 방법이 있은 줄을 왜 몰랐든가. 세상을 살면서 궁달(窮達)이라 하지 않은가? 모든 사안(事案)에는 생각을 하고 그 방법을 개선하고자 할 때 좋은 방법을 생각해 내는 것이 인간이 아니던가? 세상살이 모두가 이런 과정에서 하나씩 하나씩 발전해 갈 수가 있지 않을까?

 아버지의 넓으신 아량과 속 넓음을 우리가 어찌 다 알 수가 있을까? 진도가 그렇게 느리던 논보리 밭매기가 바로 소에다가 쟁기를 매어서 고랑을 타고 독세 풀을 골라내고 보릿대에 붙은 독세 풀을 제거 하니 그렇게 능률적인 것을 말이다.

 이제 진도가 빨라지면서 논보리 밭 매는 데도 꾀가 난다. 화장실에 안 가도 되는데도 화장실에 간다는 핑계를 대면서 자꾸 논보리 밭을 일탈한다. 큰 머슴과 중 머슴도 인간이기에 하루 종일 두 다리를 모아 조 앉아서 논보리 밭 매는 것이 그렇게 좋은 일만은 결코 아닐 것이다. 자기도 모르게 일어섰다가 앉았다가 다리 운동도 곁들인다.

 어머니의 새참이 나오고, 어른들의 막걸리 사발이 돌면서 그래도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새참에 나온 칼국수는 아침을 먹고 금방 돌아섰다 싶은 데도 배가 고프고 새참이 반가운 것은 노동(勞動)의 대가일 것이다. 그냥 있으면 소화도 덜 되는데, 일하고 나면 먹은 음식도 금방 소화되고 그 음식의 열량으로 힘이 나서 일을 하게 되는 것이다.

 시골 밭 매기, 논보리 밭매기는 남자로서 하루 종일 조잖아 있는 것이 어떻게 보면 고역 중에 고역이다. 정말 논보리 밭을 안 매본 사람은 이 고역을 모를 것이다.

 보리밭 매는 동안 우리를 놀리는 새가 있다. 바로 종달새(雲雀)가 있다. 종달새는 ‘노고지리’라고도 한다. 종달새는 보리밭에 집을 지어 두고 알을 낳고, 제 새끼를 건드릴까 보아 걱정이 되어서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가 쏜살같이 먹이를 잡아다가 먹인다.

 종달새가 제법 사람을 놀린다. 처음에 먹이를 잡아서 제 새끼가 있는 보리밭으로 결코 바로 앉지 앉는다. 사람이 속을 수 있게 집이 아닌 곳에 먼저 내렸다가 사람이 안볼 때 고랑 사이로 새끼가 있는 곳으로 간다. 미물(微物)도 얼마나 자기 새끼를 키우기 위해 이렇게 노력하는가 말이다.

 논보리 밭은 농사를 짓지 말아야 하는데, 부모님은 자식들이 배를 굶주릴까 보아서 보리밥이라도 실컷 먹일 양으로 이런 힘 드는 논보리 밭농사를 짓게 되는 것이다. 어떻게 해서라도 자식들 굶지 않게 하려는 부모의 정(情)이다. 그래서 오늘도 우리들은 논보리 밭을 매고 있는 것이다. 󰃁

(푸른 숲/20100-20130225. 제18대 대통령 취임식 날에)

출처 : 푸른 숲/20100
글쓴이 : 62seonsang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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