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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성인)푸른 숲 수필가·20100/청림수필집·내 고향 뒷동산에는

[스크랩] 푸른 숲/20100 수필2집 "내 고향 뒷동산에는"(48)나무딸기

신작수필

48. 나무딸기

이영백

cheonglim03@hanmail.net

 

 시골 길을 걸어 가다가 풀이 우거진 곳에 눈에 띄는 붉은 색 나무딸기가 발견되곤 한다. 영어로 라즈베리라 하고 나무딸기, 산딸기 또는 복분자라고 불린다. 복분자는 동의보감에 따르면 “남녀의 양기와 음기를 보호하며 이것을 먹으면 오줌줄기가 세어져 요강이 엎어진다.”하여 엎어질 복(覆), 요강분(盆)이라고 이름 지어진 약재이다. 물론 복분자는 6∼7월에 검붉게 익는데, 맛이 새콤하고 달며, 예부터 한방에서 발효주에 주침하여 약재화하거나, 발효주와 혼합 술로 복용해 왔다.

 어릴 때 나의 기억으로는 새보 머리에 가면 묵지가 있어서 그냥 둑으로 방치된 곳이다. 이곳에는 늦봄에 풀이 우거지고 이른 봄부터 밤낮을 사람 들 몰래 키워 온 것이 있다. 나무딸기다. 푸른 잎사귀만 나왔을 때는 화초도 아닌 것이 소 풀로도 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잎의 뒷면이 껄끄러웠고, 줄기에는 사람들이 범접할 수 없도록 작은 가시가 돋아나서 감히 만져보지도 못한다.

 우리들은 그 앞에서 소 풀 베고, 친구들과 모여서 숨바꼭질도 하고 술래잡기도 하여서 놀이터에 친숙하기만 하던 곳이었다. 새보 머리에 가로지르는 동네 입구 길로 인하여 그 밑에 물을 흘러 보내는 굴이 뚫어져 있다. 새보 중머리에 웅덩이보다 큰물이 모여 있는 장소가 있다. 한 여름이 오면 어린 우리들은 용천 보로 멀리가지 못하고 동네 마을에 있는 보(洑) 중머리 웅덩이에 들어가서 목욕도 하고 개구리를 낚시하기도 하였다. 아니면 굴이 뚫어진 곳 위에서 낚시질을 하면 청피리가 낚여 올라오기도 한다.

 매일 새보 중 머리에서 놀다가 소 풀도 베어 풀 따먹기, 비석치기도 하였다. 비석치기는 남·여 아이들이 같이 할 수 있는 쉬운 놀이이었다. 아마도 가지고 노는 돌을 비석처럼 세운다고 비석 놀이라고 하는 모양이었다. 여학생들은 어디서 그런 긴 고무줄을 모아서 이어 왔는지 “금강산 찾아가자. 일 만 이천 봉 볼수록 아름답고 신기하구나. 철 따라 고운 옷 갈아입는 산 이름도 아름다워 금강이라네. 금강이라네.”동요에 맞춰 고무줄을 넘기도 하고 발놀림으로 빠른 음에 맞추어 고무줄놀이를 하기도 한다. 그러면 남학생들은 고무줄 끊어 먹기를 하곤 논다.

 이렇게 놀면서 기다려도 나무딸기가 익지 아니한다. 어서 나무딸기를 따 먹었으면 하고 학수고대하였건만 아직 그 뜨거운 여름이 오지 아니하였다. 오늘도 뜨거운 태양이 떠오르기를 기다면서 새보 중머리로 나갔다. 시골의 아이들은 그냥 나가지 않는다. 항상 바깥으로 나가려면 낫을 들고 다닌다. 낫은 잘못 사용하면 손가락을 베지만, 잘 사용하면 참 편리한 호신용이 되기도 한다.

 낫은 논둑에 잘 자라는 풀을 베어 놓기도 하고, 길가 자라는 풀을 베어 한결 깨끗한 동네가 되기도 한다. 오늘도 어김없이 햇볕이 쨍쨍 내리 쬐어 주고 있다. 그런데 평소 그렇게 북적이던 새보 중머리에 아이들이 없다. 나는 그렇지 않아도 혹시나 나무딸기를 나 몰래 누가 따 먹을까 보아 노심초사하고 있는 터라. 마음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아무도 없을 때 낫으로 나무딸기 잎사귀를 헤집어 보니 나무딸기가 제 법 붉어져 있었다. ‘아니, 이놈들이. 나를 속이려고 그 새빨간 나무딸기 작은 열매가 한 송이 합쳐진 모양으로 알알이 영글어 있다니?’조용히 나 혼자서 낫으로 잎을 헤집어 줄기를 밀쳐가면서 나무딸기를 보이는 대로 땄다. 우선 넣을 거리가 없어서 그냥 호주머니에 넣었다. ‘아니, 이래서는 안 되겠다.’호주머니에 넣으면 붉은 물이 베어 나와서 옷을 버릴 정도다. 바로 집으로 뛰어 가서 뚜껑 없는 양은 도시락을 찾아 들고 나왔다.

“또, 어딜 가나?”

“예. 어디 좀 갈 데가 있어 서요!”

대답이 채 끝나기도 전에 얼른 뛰었다. 그리고 조용히 자연산 나무딸기 사이로 헤집고 다니면서 나무딸기를 모조리 따기 시작하였다. 양은 도시락에 수북이 따 모았다.

 호사다마일까? 그렇게 정신없이 따 모으는데 나무딸기 바닥에는 독사가 웅크리고 있었다. 부리나케 되돌아 나와서 혼비백산하고 집으로 오고 말았다. 붉은 딸기 밭이나 나무딸기 밭에는 이런 독사가 잇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붉은 딸기를 먹고 싶어 하는 것이 인간이다.

집으로 얼른 돌아와서 딸기 도시락을 어머니께 내 드리고 칭찬만 받기로 하였다. 그 붉디붉은 딸기는 아버지 입 속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나무딸기에는 철분과 비타민 C가 들어 있다. 요즘에는 열매를 날것으로 먹거나, 크림이나 아이스크림 등과 함께 후식으로 먹기도 한다. 나무딸기 열매로 만든 잼이나 젤리는 아주 인기가 높다. 또한 과자의 속을 채우거나 술에 넣어 향기를 내는 데 쓰기도 한다. 󰃁

(푸른 숲/20100-20130314.)

출처 : 푸른 숲/20100
글쓴이 : 62seonsang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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