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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성인)푸른 숲 수필가·20100/청림수필집·내 고향 뒷동산에는

[스크랩] 푸른 숲/20100 수필2집 "내 고향 뒷동산에는"-(5) 단감

신작수필

5. 단감

이영백

cheonglim03@hanmail.net

 

 어릴 때 우리 집에 없는 것이 딱 한 가지가 있었다. 바로 “단감나무”다. 아버지께서 그렇게 여러 나무를 좋아 하셔서 온갖 나무를 다 심어 두셨는데 오직 단감나무가 없었다.

“아버지! 우리 집에는 단감나무가 왜 없어요?”

“그래 나도 알고 있다.”

“우리 집에도 심어요? 서당 훈장님 댁에는 있던데요?”

“그래. 서당에는 있지. 내가 왜 모르겠느냐? 그런데 단감나무는 고약한 놈이지. 아무 땅에서나 잘 살지 못하지. 땅가림을 한단다. 그래서 그 땅이 아니고서는 단감나무가 안 자란단다. 마아 잊어버려라.”

 그랬다. 내가 단감 나는 철에 서당에 가면 서당 훈장님 집에는 딱 단감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훈장님은 한문(漢文)공부를 많이 하셔서 처가로부터 집, 논, 밭, 산 등을 받아서 편히 살고 계신다. 그리고 종종 서당에서 말을 듣지 않거나 공부를 잘 하지 못하면 회초리로 서당(書堂) 동료의 종아리를 치신다.

“그래. 막내야! 보아라! 훈장님은 한문공부를 많이 해서 천석꾼 처가에서 집, 논, 산까지 다 주시잖아, 열심히 서당에 다녀라. 다 네가 사는 데 피가 되고, 살이 될 것이다. 젊어서 열심히 공부 해야지!”

“예.”

 나는 그저 아버지 말씀이 다 옳으시고, 다 맞는 것으로 착각(?)하고 받아 들였다. 그래서 초등학교 졸업하고 중학교에서 하는 신학문(新學問)을 못하고 서당(書堂)에 다녔다. 초교 친한 친구 말처럼 신학문을 해야지, 한문공부해서 무엇하려나? 나도 의심스럽기는 하였다. 사성(四星), 지방(紙榜), 축문(祝文)만 쓸 줄 안다고 현대를 잘 살아 갈 수가 있을 것인가? 나도 의문이 자꾸 생기었다. 아니 서당 훈장님 집에 단감 때문에 또 고민을 하여야 했다.

그래서 서당에 갈라치면 들어가는 대문 왼쪽 곁에 단감나무가 있었다. 서당에 앉아서도 그 굵고 싯누런 단감을 한 번 보고 속으로 침을 한 번 꼬∼옥 삼키고, 다시 한문 한 줄 읽고, 또 침을 삼키고 한문 한줄 해석하였다. 그날 서당 공부를 마치고 나오면 서로서로 누가 단감을 따 먹으려나 지켜보고 있다. 그리고 마당에 훈장님도 할일 없이 나오셔서 오늘 어떤 학동(學童)이 단감을 따 가나 확인하고 있다.

 바로 이 때다. 앞에 나가던 학동 하나가 먹음직스런 단감 하나를 점찍어 두었다가 팔을 쓰윽 올려서 가지의 단감을 낚아챘다. 거기까지는 우리 훈장님이라도 못 알아차리신 것이다. 문제는 그 다음 장면이었다. 잡아서 당기니 단감나무가 휘청 흔들리면서 훈장님도 누군지는 모르지만 단감을 따려는 것을 알아차려 버렸다.

“그 누구지? 이 노∼옴! 남의 단감을 따지 말고 손을 내려놓으렷다!”

정말 아차 하는 순간에 단감을 따지 못하고, 속내만 내어 보이고 손을 놓고 학동은 그저 민망하고 부끄러워서 도망치고 말았다.

“후유! 큰일 날 뻔하였다. 단감 하나 따 먹으려다가 서당 다시는 못 다닐 뻔 했네. 아이고, 이제 살았다.”

 앞서 나가던 선배 학동이 기어이 성공하지 못하고 들킬 뻔 하다가 도망 치고 말았던 것이다. 이제부터는 훈장님께서 단감을 단단히 지키게 만들어 버리는 기회만 제공하게 되어 버렸다. 이제 누가 이 단감을 따 먹을 수 있을까 그 결과가 무척 궁금해지기도 하였다.

그리고 이튿날 서당에 나온 학동들은 아무도 단감에 대하여 입도 뻥긋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단감얘기를 하기만 하면 범인이 되기 때문이었다. 훈장님이 단감 단속을 위해 한 말씀하셨다.

“요즘 우리 집에 단감이 잘 익어 가는데, 어제도 그렇고 누가 자꾸 단감을 탐내고 있구나!”

“……(단감이 무에요?)”

“그래 우리 집 단감을 탐내는 자가 누구인고?”

“……(아무도 모르는데요.)”

 그랬다. 단감은 모른다. 훈장님 집 단감은 모른다. 정말로 전부 모르쇠가 되고 말았다. 그러자 훈장님도 멋 적어 대답 없는 학동을 더 이상 다그치지 아니하고 말았다. 그리고 그날도 서당 수업이 끝나 버렸다. 어제 그 일 때문에 오늘은 조용히, 학동들이 조용히 집으로 모두 돌아 가 버렸다.

 조용하였다. 아니 천지가 조용하였다. 친구 학동 둘이 작전을 하였다. 그 둘 중에 내가 포함 되어 있었다. 훈장님 집 단감이 정말 맛있기 때문에 꼭 하나를 따 먹어야만 한다고 결심을 하였다. 학동 둘이 어울려서 집으로 가는 척하고 조용히 있다가 드디어 둘이 살금살금 훈장님 집 대문으로 갔다. 그리고 한 학동이 엎드리고, 다른 학동이 드디어 굵고 좋은 단감을 점찍고 등에 올라 가 단감을 서리하고 있었다. 그것도 바람이 지나가도 조용히, 절대 조용히 단감 꼭지를 잡고 살살, 뱅뱅 돌려서 단감이 떨어지자 호주머니에 집어넣고, 또 하나를 골라 돌려 땄다. 그리고 조용히 등에서 내려 정말 조용히 그 자리를 떴다.

 드디어 성공하였다. 새보(新洑) 머리에 가서 조용히 둘은 단감을 끄집어내었다. 코가 묻은 소매 끝으로 쓱쓱 문지르고, 아예 입을 크게 벌려 단감을 한입 베어 물었다. 정말 달콤하다. 아니 몰래 훔쳐 먹는 것이 더욱 맛있게 느껴지는 것이다.

“아나! 여기 있다. 받아먹어 보아라. 이렇게 단 단감은 처음 먹어 본다. 아니 서당에서 보면 그 단감 때문에 공부가 안 된다 카이. 요래 맛있네. 니*는?”

“그래 말이다. 나도 참 맛 있네. 요래 맛있는 단감을 안 먹어 볼 수가 있나? 서당에서 먹고 싶어서 죽을 뿐 했다 아이가? 소원 풀었다. 우리 내일도 따 먹을까?”

“아니 그러면 질 나서 버릇된다. 그러다가 붙들리면 니는 서당 어예** 다닐라고? 언제, 나는 이제 안 한다.”

 그래도 그 다음날도 단감서리를 하여 또 새보머리에 앉아서 단감을 먹어 치웠다.

또 그 다음, 다음 날도 단감 서리를 하였다. 이제 단감을 먹지 않고서는 살 수가 정말 없는가 보다. 단감! 단감을 먹자, 훈장님 댁 단감을 먹자. 확실히 굵고, 맛이 좋아 아니 먹고서는 살 수가 없었다. 이건 아닌데 하면서도 곧잘 단감서리를 매일하였다. 그러자 대문채 바깥쪽에는 단감이 벌써 다 따서 그저 단감나무 잎만 남아 있다. 훈장님은 단감을 지키신다면서 매일 단감서리를 하는 줄 모르시는가 보다. 그냥 그대로 두고 있다니 말이다.

 나도 우리 집에 없는 훈장님 댁의 단감을 먹고 싶었다. 감히 나의 꾀를 써서 훈장님 댁의 단감을 서리하여 먹을 수가 있었다는 말이다.󰃁

(푸른 숲/20100-2013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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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 : “너”의 사투리

**어예 : “어떻게”의 사투리

출처 : 푸른 숲/20100
글쓴이 : 62seonsang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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