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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성인)푸른 숲 수필가·20100/청림수필집·내 고향 뒷동산에는

[스크랩] 푸른 숲/20100 수필2집 "내 고향 뒷동산에는"-(3) 아도

신작수필

3. 아도

이영백

cheonglim03@hanmail.net

 

 나는 지독히 “아도”를 좋아하였다. 아도가 무엇인가? 뽕나무 열매를 말한다. 우리 경주에서는 학교 가기 전까지에는 ‘아도’ 혹은 ‘아두’라는 말 밖에 몰랐다. 학교에서 표준어를 배우지 아니하였다면 나는 그냥 그렇게만 부르고 살아야 했다. 푸른 것은 이제 열매가 맺히기 시작한 것이고, 붉은 것은 덜 익은 것이고, 검게 된 것은 아주 잘 익어 매우 달다.

 처음 달린 열매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뽕잎이 달린 그 잎 새 곁에 비집고 나와 열매를 만든다. 그래서 뽕나무는 햇볕을 많이 봐야 아도가 많이 열린다. 아도가 적게 열리는 것은 뜨거운 태양이 덜 쪼이기 때문이다. 식물마다 달리는 열매 이름이 이렇게 있다는 것도 신기하다. 더욱 신기한 것은 열매마다 그 이름도 지방에 따라 다르다는 것이다.

 뽕잎은 누에가 먹고 살지만, 그 열매 아도는 인간이 주로 따 먹고 새나 다른 짐승에게 아주 일부 먹힌다. 우리 집에서 춘잠(春蠶)을 먹일 때는 아도를 거의 먹지 못한다. 아직 태양이 그렇게 뜨겁게 비추이지 못하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아도를, 새카만 맛있는 아도를 먹으려면 추잠(秋蠶)을 할 때 한 여름의 작열하는 태양에 익은 아도라야 한다.

 내가 중국 광개토대왕릉을 찾아 “환인(桓仁)”으로 가는데 일행보다 먼저 들어갔다. 입구에 들어가도 일행이 빨리 따라 오지 않았다. 그런데 바로 앞에 뽕나무〔桑〕가 있지 아니한가? 일행 중에 고교 체육교사인 G선생님이 아도를 따 먹자고 하였다. 마침 그 광개토대왕릉 들어가는 길에는 아무도 제지하려는 사람이 마침 없었다. 둘이서 뽕나무 가지에 붙은 새카만 아도를 얼마나 따 먹었는지 아니 입술이 새파랗도록 따 먹었다. 나중에는 엔간히 따 먹으니 배가 불렀다. 아니 이런 중국 광개토대왕릉 입구에도 아도가 있다니 말이다.

우리 집 뽕나무는 두 종류가 있었다.

 하나는 신품종으로 뿌리에서 가지런히 잘 자라서 줄기가 나오면서 뽕잎만 무성히 피어오른다. 아예 아도가 잘 달리지를 않는다. 그래서 누에에게 먹이려면 바닥가까이 베어다 뽕을 오지게 먹일 수가 있었다.

 다른 품종 하나는 조금 오래 된 뽕나무는 나무 밑 둥이 크고, 나무줄기가 굵어서 가지가 하늘 위로 높이 치솟아서 어린 우리들은 아도를 따 먹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이 고목 뽕나무에 잎이 덜 나면서 줄기에 잎 새마다 아도 열매가 얼마나 많이 달리는지, 아버지가 보기에는 뽕잎이 부족한 뽕나무라고 베어버릴 것이다. 그러나 고목에도 끝 부분에는 새 가지가 나고 줄기에 뽕잎이 많이 달리고 있었다. 덕택에 베지 않은 고목 뽕나무에 올라가 가지를 흔들면 새카만 자연 설탕이 마구, 마구 쏟아진다.

 초교 때 절친한 친구가 있었다. 아니 늦게 안 친구가 있었다. 친구는 2학년 때 편입하여 들어 와서 오는 첫날 내 옆자리에 앉아 단짝이 되었다. 집이 시내 고분이 있던 “쪽 샘”입구에 살아서 시내에서 다녔다. 그림을 좋아하고 잘 그렸다. 나도 그림을 좋아하고 조금 잘 그렸다. 그림시간에 우리 둘은 빨리 그리고 잘 그렸다고 칠판에다 먼저 붙여 두고 그림의 샘플로 이용하였다. 그리고 나는 중학교에 못가고 친구는 개명(開明)된 집안이라 중학교를 진학하였다. 초교 때 친구였고, 그림을 좋아하는 아이로 친하게 지냈다.

 내가 집에서 일하고 있는 그런 날 오후 토요일이면 시내에서 우리 집까지 자주 놀러 왔다. 그리고 일하고 있는 모습이 참 안쓰러웠던 모양이었다.

“너도 중학교 다니지?”

“안 돼! 집에서 일해야 해.”

“집에 일하면 뭣해! 시내에 나오너라. 그러면 밥 먹고 일할 때 알아 봐 줄께. 중학교 다녀야지!”

“그래도 안 돼. 우리 아버지 무섭단다. 소도 먹여야 하고, 나무도 하여야 하고, 또 서당(書堂)도 다니고 있잖니?”

“서당? 서당은 아니야. 신식공부를 해야지. 그래서 같이 그림 그리자.”

“우리 아버지는 신식학문하면 안 된데, 사람이 약삭빨라지고 권모술수를 잘 부리게 된데.”

“허허……. 그런 게 어디 있어?”

“아니, 마아! 됐어. 야! 우리 아도 따 먹으러 가자.”

 그래서 우리는 새카만 아도 따먹으러 뽕나무에 올라갔다. 배가 고프고 단 것이 먹고 싶을 때는 뽕나무에 올라가서 그 새카만 열매를 연속으로 입속으로 넣으면 그렇게 맛이 나고 달았다. 그 이후로 친구는 오지 않았다. 아도는 나 혼자 따 먹어야 했다.

곰곰이 나는 생각하였다. 내가 진짜 아버지 말씀대로 신학문을 하지 않고 그냥 서당에만 다니다가 사성(四姓), 지방(紙榜), 축문(祝文)만 쓰면 된다는 정말 서당공부만 해야 하나? 나는 적극적으로 고민에 빠졌다.

 그동안 모아 둔 용돈을 들고 시내서점에 가서 “연합(聯合)강의록”을 사고 말았다. ‘옳다! 이것이 신학문이구나, 영어(英語), 수학(數學), 과학(科學) 등 신기한 공부거리가 있는 것을 새로 알았다. 그리고 신이나 신학문을 밤새 아버지 몰래 문에다 담요를 걸쳐 두고, 공부하고 낮에는 서당에도 다니고 소도 먹이고 나무도 하러 다녔다.

 아도는 소쿠리 째 따다가 아버지께 갖다 드렸다. 아버지의 칭찬이 대단하셨다. 나는 자꾸 아도를, 새카만 아도를 소쿠리 째 따다가 열심히 갖다 드렸다. 내가 속으로 딴 짓을 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채지 못하도록 아도를 자꾸 따다 아버지께 갖다 드렸다.

나를 공부하게 만든 그 친구는 서울에 대형 인쇄소 실장까지 하였고 퇴직하였단다. 요즘은 책 장정이나 그림책의 내용 삽화 등 프리랜서로 뛴다고 한다. 나중에 알고 보니, 우리 집안에 췌객(贅客)이었다. 이 친구가 내가 2년 쉬다가 고등학교 가려니까 간추린 오과(五課) 등 영어, 수학 참고서를 한 보따리 사 주어서 내가 고등학교 가는 데 일조하게 해 주었다. 당시 주던 책은 정말 고마웠다. 나는 그래서 지금도 빵보다 책을 좋아 한다.

 아도는 정말 내가 신학문(新學問)을 할 수 있도록 중학교 다니는 친구가 교복(校服)을 입고 와서 나를 깨우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밤에 강의록으로 신학문을 공부하게 하는 계기를 만드는 뽕나무 열매인 “아도”가 바로 그 촉매작용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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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도(=오디) : 경주 사투리로 오디가 표준말이다.

 오디는 성질이 차고(寒) 맛은 달고(甘) 독이 없다. 오디에는 노화억제 항산화 색소인 “C3G(cyanidin-3-glucoside)”는 물론 고혈압 억제 물질인 “루틴(RUTIN)”등 건강 기능성분이 다량 함유되어 있다. 그리고 오디의 C3G 최고함량은 1.27%로 포도의 23배, 유색미의 2.3배에 달한다.󰃁

(푸른 숲/20100-20130126.)

출처 : 푸른 숲/20100
글쓴이 : 62seonsang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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