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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성인)푸른 숲 수필가·20100/청림수필집·내 고향 뒷동산에는

[스크랩] 푸른 숲/20100 수필2집 "내 고향 뒷동산에는"-(02) 감

신작수필

2. 감

이영백

cheonglim03@hanmail.net

 

 내가 우리 집에서 제일 좋아하는 것이 감이다. 감은 생감도 있지만, 삭혀서 먹어도 요기가 된다. 아니면 저절로 두어 홍시가 되면 맛이 금상첨화로 좋다.

 우리 집에는 감나무가 열세 그루가 있었다. 한 나무만 유독 아직 어렸고, 나머지 열두 그루는 고목은 아니지만 내가 여렸을 때 보아 거목(巨木)이었다. 감도 고목(古木)에 여는 감보다 거목이나 성년 목에 감 맛이 더 좋다.

 내가 친구들에게 자랑 할 수 있는 것은 뽕의 오디이었고, 다음으로 감나무의 감이었다. 어머니는 가을에 돈이 궁하다. 그래서 감이 익기도 전에 싱싱한 생감을 딴다. 아니 생감을 하나하나 골라가면서 대나무 끝에 가지를 깎아 만들어 철사를 묶고 그 사이에 따려는 감을 끼워 돌리면 감을 딸 수가 있다.

 이 생감을 그냥 팔면 돈이 안 되었다. 감의 떫은 성분인 타닌을 없애려면 감을 따 두고 이제 부엌에 뜨거운 물을 끓여서 안방에 항아리를 갖다 두고 감을 넣고 적당히 끓인 뜨거운 물을 넣어서 덮어 두고, 방에 낫게 군불을 넣는다. 그리고 3일이 지나서 확인하면 감 맛이 달게 변하여 도매로 팔면 생감을 팔 때보다 훨씬 돈을 많이 받을 수 있었다. 담가놓은 감은 당시 울산에서 접 떼기로 도매하여 갔다. 한 접이 꼭 100개를 말하지만, 어머니는 항상 10개를 더 드린다. 혹시 상품에서 하자가 생길까 보아서 그렇게 해드리고 있다고 하였다. 우리 집에서는 어머니께서 해마다 이렇게 수입을 올렸다.

 나는 학교 갔다가 일찍 오면 그 때쯤 홍시가 생기기 시작할 때면 우리 집 감나무 열세 그루를 차례로 올라 가 다니면서 홍시란 홍시를 다 찝쩍거려 본다. 어떨 땐 친구까지 데리고 와서 이렇게 하면 아버지께서 꾸중을 하신다. 대다수 밭 가운데 아버지께서 당대에 심으신 감나무라서 아직 성년 목이다. 그래서 감의 맛도 더욱 좋다.

 감은 납닥 감과 찬감이 있었다. 특히 납닥 감이 많아서 울산 장사꾼들은 꼭 납닥 감을 삭혀 달라고 하였다. 그러면 자기들도 팔기가 좋다고 한다. 그래서 찬감은 굵기도 못 따라 가고, 단지 생감을 먹었을 때 물이 많다고들 평하였다. 누가 생감을 떫은 감을 사 먹겠는가? 그저 물이 많다고 도시인들이 그런 떫은 생감을 사 먹지는 않을 것이다.

 자연히 우리 집에서는 찬감은 팔지 않는다. 좋은 것은 홍시를 만들었을 때 찬감이 먹기도 좋고, 홍시를 찢어 먹을 때 섬유질이 씹히는 맛이 있고, 매우 달고 맛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집에서는 두고두고 홍시를 만들어 먹는 감은 찬감을 택한다. 특히 내가 겨울에도 늦게까지 공부하다 졸면 어머니께서 몰래 홍시 한 개와 달걀 한 개를 머리맡에 두고 가신다. 새벽 한 시 반에 보통 잠이 깨서 한겨울에 찬감 홍시를 먹으면 차고 달다. 나의 정신이 깨어난다. 게다가 달걀 한 개를 또 깨어 먹으면 기운이 벌떡 난다. 아니, 공부를 하면 생기가 돌아오고, 기억하기에 매우 좋다.

 나는 우리 집 감나무에서 생산된 겨울 홍시를 무척 좋아하였다. 우리 집 감 홍시는 유별났다. 감으로 홍시를 만들려면 항아리에 아무것도 넣지 않고 차곡차곡 감만 넣고 보관한다. 그렇게 만드는 항아리 개수가 많다.

 어머니의 감 농사도 유별하였다. 본래 감이 달리고 얼마 안 있어 제법 큰 감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이 감을 모두 주워 모아 삭혀서 기차역 앞에 갖다 두면 맛을 본 사람들은 감을 찾는다.   어머니는 이 감으로부터 일찍 돈을 만들고, 이제 굵어지고 감 맛이 잡히면 삭혀 접으로 팔고, 홍시를 만들어 비싼 가격으로 시장에서 팔거나, 사러 오는 장사꾼들에게 도매로 판다.

 이렇게 감은 우리 집에서 새로운 소득원이 되었다. 당시 시골로서는 돈을 만들어 논·밭도 사고 아들·딸 시집장가도 보내야 한다. 물론 당시로서는 공부하는데 투자는 잘 하려 들지 않으셨다. 그저 자연스럽게 시골에서 살면서 나이차면 장가가서 아들 딸 많이 낳고, 살다가 가면된다는 지극히 인생관(人生觀)이 낙관적 자연주의이셨다. 감나무 하나로 두고 보아도 바로 이런 인생관이 나오고 만다. 󰃁

(푸른 숲/20100-20130125.)

출처 : 푸른 숲/20100
글쓴이 : 62seonsang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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