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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성인)푸른 숲 수필가·20100/청림수필집·내 고향 뒷동산에는

[스크랩] 푸른 숲/20100 수필2집 "내 고향 뒷동산에는"-(4) 뽕

신작수필

4. 뽕

이영백

cheonglim03@hanmail.net

 

 여기서 말하려는 뽕은 영화 제목이 아니다. 우리 집에 농사짓는 농가소득원이 되는 춘·추잠의 누에치기다. 특히 중국 황후들이 이 뽕을 키워 누에를 먹이고 명주(明紬)를 짠 바로 그 실크가 아니더냐?

 내가 어렸을 때 당시는 뽕으로 집집마다 누에치기를 한 장, 두 장씩이나 먹였다. 누에 한 장을 먹인다는 말은 대단한 누에 생산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누에의 단위에 한 장이란 나방이 종이 직경 4cm 크기의 원에 알을 낳은 것을 한 돌뱅이라 한다. 이를 쉰 돌뱅이를 한 장이라 한다.

 우리 집에 뽕나무는 아버지의 몫만이 아니다. 뽕을 기르는 것까지는 아버지께서 하시지만, 이를 베어 와서 누에치기는 어머니 몫이었다. 그래서 뽕 잎 관리는 어머니가 관장 하시는 것이었다. 내가 공부를 하는 토방은 춘·추잠 시기에는 각 50일간 뺏기고 만다. 바로 누에치기의 방인 “잠실(蠶室)”이 되고 만다. 추잠일 때는 사랑채인 아버지 방까지 잠실로 변한다.

 새카만 아기누에가 생명을 얻으면 알에서 깨어나 작은 미물(微物)이 고물고물 거린다. 이제 이를 고운 붓으로 살살 달래면서 쓸어 내 모아서 예쁘고 깨끗한 뽕 잎만 모아서, 깨끗한 칼로 뽕잎을 채 썰듯이 썰어 새카만 누에 위에 살살 뿌려 주면 썰어놓은 연한 녹색 뽕잎을 하나같이 갉아 먹는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참 신기하다. 그 작은 아기 누에가 말이다. 누에가 먹는 양식은 뽕잎으로 뽕나무에서 얻는다.

 

 우리가 흔히 아는 영화 “뽕”의 줄거리는 1920년 일제치하 용담골, 안협 (安峽)의 남편 삼보는 역마살이 들었는지 노름판을 돌아다니느라 가사 일을 돌보지 않고 몇 달씩 집에 돌아오지 않는다. 벌이가 없는 안협은 동네 남자들에게 몸을 팔고, 그 대가로 곡식을 받아 생활을 이어간다. 뽕을 치는 할매집 머슴 삼돌이도 안협 집을 노리고 있지만, 안협은 힘만 세고 가진 것이 없는 삼돌이를 무시한다. 남편 삼보가 돌아오자 앙심을 품고 있던 삼돌이는 안협의 행각을 삼보에게 일러바친다. 그러나 삼보는 삼돌이를 패준 다음 안협이 준비한 새 옷을 입고 길을 떠난다. 그가 떠나는 마을 고갯마루에 그를 지켜보는 일본 순경이 서 있다. 삼보는 노름꾼을 가장하여 전국을 돌아다니는 독립투사(獨立鬪士)였던 것이다. 그를 바라보는 안협의 눈에는 눈물이 흐른다.

 그러나 원작 “소설 뽕”은 나도향이 1925년 잡지 “개벽(開闢)”에 발표한 소설이다. 주인공 김 삼보(金三甫)는 강원도 철원군(鐵原) 용담(龍潭)에 거주하며 키가 작고 동네 주민에게 놀림을 당한다. 나중에 안협집의 행실에 대해 알게 된다. 안협집은 김 삼보의 아내로 옛 행정구역인 안협(安峽)출신으로 15∼16세에 참외 한 개를 받고 사내들에게 정조를 빌려준 적이 있다. 여러 서방과 잠자리를 같이 하나 한번 맘에 들지 않는 사람과는 관계하지 않는다. 그리고 삼돌이는 동네 머슴으로 안협집과 관계를 맺으려 하나 실패한다. 이게 영화 “뽕”의 줄거리다.

 

 우리 집에도 처음부터 그렇게 뽕나무가 많았던 것은 아니었다. 식구는 많고 소득원을 늘리는 것이 필요하였다. 어머니는 뒷집 기장댁 할머니께서 누에치기를 권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한 돌뱅이를 먹여서 누에치기 경험을 쌓았다고 한다. 그런데 처음에는 우리 집에서도 뽕이 없어서 산 뽕을 뜯어다가 먹이고, 기장댁 할머니 집에 약간의 뽕을 얻어서 먹였다. 그래도 부족하니까 낮에 숙형(叔兄)과 함께 뽕을 사러 갔었다고 한다. 왜냐하면 아기누에 때는 뽕잎을 적게 먹지만, 이령(二齡), 삼령, 사령이 지나고 나면 뽕잎을 대량으로 먹어 치우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돈을 주고 뽕을 키우는 집에 나무 째 사서 뽕잎을 뜯어 오는 것이었다.

 그런데 뽕잎을 먹어도, 먹어도 끝이 없을 정도로 먹어 대니 이제는 급기야 밤에 숙형과 함께 어머니께서 뽕잎을 훔치러 나가게 되었다고 한다. 정말 생 마음으로는 그 뽕잎을 따오기가 어렵지만, 그 새하얀 누에가 뽕잎이 없이 가지런히 누워 있는 것을 생각하니 남의 뽕이지만 훔치지 아니하고서는 못 견디시는 것이었다고 한다. 마치 영화에서처럼 남의 집 뽕을 훔치러 가는 것 말이다.

 이듬해 봄에는 아버지를 졸라서 기어이 뽕나무를 사다가 일찍 밭둑에 심어서 춘잠부터 시작하였다고 한다. 해가 자꾸 지나면서 그 뽕나무가 자라서 고목(古木)이 되었고, 이제는 또 신품종을 해마다 사 와서 고목과 교체작업까지 하였다고 전한다.

 사람이 살면서 농사만 짓지 못하고, 이렇게 춘·추잠으로 돈을 벌게 되니까 재미가 나서 뽕나무를 그저 밭둑마다 자꾸 심게 되어 뽕나무가 우리 집 밭 둘레를 에워싸게 되었다고 한다. 바로 뽕나무집이 되었다. 우리 동네 제일가는 뽕나무집이 되었다. 네 번째 살던 집으로 이사 와서 처음에 우물가에 해당화(海棠花)를 심어 해당화집으로 불리던 것처럼 말이다.

 나중에는 급기야 우리가 치는 누에에게 먹이고도 뽕이 남으니까 뽕 사러 오는 사람들에게까지 뽕잎을 나무 째 팔기도 하였다.

 뽕은 누에칠 때 그 뽕잎이 마치 우리 사람들이 연회(宴會)하며 모여서 밥을 해 먹는 것과 같이 바로 누에의 밥이 뽕이었다.󰃁

(푸른 숲/20100-20130127.)

출처 : 푸른 숲/20100
글쓴이 : 62seonsang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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