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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성인)푸른 숲 수필가·20100/청림수필집·내 고향 뒷동산에는

[스크랩] 푸른 숲/20100 수필2집 "내 고향 뒷동산에는"-(01)꾀양

신작수필

1. 꾀양

이영백

cheonglim03@hanmail.net

 

 우리 집에는 감나무가 열세 그루가 있었다. 가을이 되면 홍시부터 따 먹기 시작하여 어지간히 붉게 익으면 감 따기를 한다. 가을에 붉은 감은 조금 떫어도 깨물면 시원한 맛이 있다. 그러나 유독 감나무 열세 그루와는 동떨어진 북쪽 밭둑에 오로지 세 그루가 서 있는 것이 있다.

가을이 되고 늦가을이 되면 감나무의 감도 홍시만 달리게 되고, 나머지는 모두 싱싱할 때 따서 삭히거나 생감으로 팔려 나가고 없다. 그러나 밭 북편의 이 세 그루는 아무도 손대지 아니하고 밭둑에 그냥 서 있을 뿐이다. 아니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저 밭둑에 붙어 서 있어서 하늘 모르게 새카맣게 열매만 달리고 있다. 밭에서 일을 하다가 지나가는 사람이 묻는다.

“벌써 감은 다 팔린 모양입니다.”

“예. 올해 감 농사가 좋아서 벌써 다 팔려 나갔습니다.”

“그런데 저 쪽에 새카맣게 달려 있는 것은 뭔교?”

“예. 감 종류지요. 여기 떨어진 것 한 번 맛 좀 보이소.”

“그래도 될랑가요?”

“그러시소오.”

그래서 그 분은 아버지의 속내를 모르고 그저 새카만 것을 주워 한 번 쓱 닦아 입에 넣었다.

“아이 고오? 쬐끄마한 게 와 이리 떫은 교?”

“예? 감 종류는 맞아 예. 꾀양 아잉교.”

“꾀양이 뭔 데에? 처음 들어 보는 말인데?”

“그렇지요. 학교에서 말로는 ‘고욤’이라 카데 에.”

“아! 바로 요놈이 고욤이구나! 그래. 아이 고오. 떫어……. 이래 떫어가 누가 먹겠 노?”

그 떫은 열매를 딱 두 분만 지키고 있다. 첫째는 자기 자신이고, 둘째는 우리 아버지이시다.

초여름 새벽 네 시면 마을을 나선다. 1차적으로 개똥을 주워서 망태에 담고, 그래도 시간이 남으면 서당 훈장님 네 단감나무 밑에 가면 감꽃이 샛노랗게 길을 물들이고 있다. 우리는 하나하나 주워서 홰 밀 목을 뽑아 끼우고, 끼우고 많이 끼워서 목걸이를 하고 온다.

유별나게 감꽃이면서 작은 감꽃이‘꾀양 꽃’이다. 깨알만한 꽃잎들이 새 가지 아래쪽 잎겨드랑이에 조랑조랑 많이도 달린다. 부풀어 오른 꽃송이는 녹두 알갱이만 하다. 감꽃 모양은 했는데 아주 작다. 꾀양 꽃은 마치 작은 꽃 구슬을 줍는 것 같다. 그래도 이 꾀양 꽃은 아무도 줍지 아니한다. 너무 잘아서 별로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꾀양 꽃은 그래서 그대로 그 자리에서 썩어 버리거나 말라 버리고 만다.

우리 아버지는 아무도 꾀양 나무를 못 건드리게 한다. 아버지 나름대로의 필요에 의해서 지켜지고 있을 뿐이다. 드디어 서리, 무서리가 내리고 나면 아버지는 큰 천막 덮개와 장대를 준비하고, 천막을 바닥에 깔고 장대로 후려친다. 그러면 새카만 작은 꾀양 열매가 천막 위에 쏟아진다. 골목에 놀고 있는 우리들을 불러 모아 조심스럽게 밟지 못하도록 하면서 꾀양 열매를 주워 모아라고 한다.

모아진 꾀양 열매는 고이 씻어서 단지에 넣고 종이를 덮어서 노끈으로 꽁꽁 묶어 단지, 단지 보관한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지나가고 우리들은 그 꾀양 열매가 어떻게 되었는지 아무도 모른다. 겨울동안 벽장 안에 놓아두었던 익은 고욤이 발효가 되어 달짝지근해서 겨우내 조금씩 군것질, 간식으로 먹을 수 있다. 아버지는 몰래 그 꾀양 넣어 둔 단지를 꿀단지처럼 벽장에서 들어내려 혼자 숟가락으로 퍼 잡수신다.

“오복아! 이리 오렴!”

아버지 부르시는 소리에 내가 달려가면 사랑채에 몰래 오라고 해서 그 꾀양 꿀단지를 열어 한 숟가락 퍼서 준다. 딱 한 숟갈이다. 많이도 주지 않는다. 그저 단맛을 내게 보여 주시는 것이다.

달기는 단데, 그 꾀양 열매가 본래 작았는데 그 열매 속에 씨가, 아주 작은 씨가 입안 가득히 모인다. 그 꾀양의 씨는 여물고 매우 단단하여 꾀양 단것만 빨아먹고 씨는 뱉어야 한다. 그래도 아무도 안 주고 나를 불러 주시는 아버지의 고마움을 그 때 처음 알았다. 당시는 설탕을 먹지 못하여 그런지 그렇게 달게 느낀 것이다.

꾀양은 이렇게 그냥 먹지 아니하고 재어서 오래오래 두고 먹으면 아주 달고, 저절로 약이 되는 것이라고 믿는다. 아직도 믿고 있다. 꾀양은 표준어 로 고욤이다.󰃁

(푸른 숲/20100-20130124.)

출처 : 푸른 숲/20100
글쓴이 : 62seonsang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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