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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성인)푸른 숲 수필가·20100/청림수필집·내 고향 뒷동산에는

[스크랩] 푸른 숲/20100 수필2집 "내 고향 뒷동산에는"-(7)가죽나무

신작수필

7. 가죽나무

이영백

cheonglim03@hanmail.net

 

 가죽나무는 우리 집 밭둑에 비스듬히 서 있으면서 잘도 자란다. 아니 밭둑 말고 우리 집 생나무울타리 나무 중에서도 자라고 있지 아니한가.

 우리 집에서 처음부터 자라고 있은 것이 아니고, 사실은 외가 외할머니 댁에 가죽나무가 있어 봄이면 봄마다 외할머니께서‘이(李)서방 잘 먹는 나물’로 가죽을 채취하여 해마다 보내 주셨다. 그러자 아예 아버지 입맛에 맞아서 나무를 구해다 심어 둔 것이 생나무울타리에도 있게 되었고, 또 비스듬한 도랑가 물이 흘러가는 곁에 둑을 보호하기 위해 나무도 필요하니까 가죽나무를 심어 둔 것이 이렇게 반찬하기에 좋은 것으로 변하였다.

 우리 집 봄 반찬에는 봄나물이 제일이다. 특히 이름이 “코따까리”라는 나물이름이 있었다. 어렸을 때 봄에는 그 나물만 해 오라고 하셨다. 봄에 나물 무쳐 먹으면 보들보들하고 정말 맛이 좋았기 때문이었다. 아울러 이와 쌍벽을 이루는 나물이 바로 고급스럽기도 하고 맛으로도 좋은 햇순 가죽나물이었다.

“참죽나무”의 어원은 나무 중에는 모양이 너무 비슷하기 때문에 본 이름과는 달리 불리어지고 있는 것이 있다. “참죽나무”와 “가죽나무”가 그런 경우이다. 남도에서는 참죽나무를 가죽나무라 부른다. 이름으로만 보면 “진짜(참죽나무)”를 “가짜(가죽나무)”로 진짜(정말) 알고 있는 셈이다.

 참죽나무는 멀구슬과 식물이다. 중국이 원산지이며, 높이 20m까지 자라는 큰 나무이다. 대나무처럼 순을 먹는다하여 대나무 죽(竹)자가 붙었다고 한다. 목재는 무늬가 아름다워 가구재로 이용한다. 시골에서 울타리나무로 많이 심는다.

 가죽나무는 참죽나무와 구분하기 힘들만큼 생김새가 비슷하지만 참죽나무와 “과”가 다르다. 소태나무과에 속한다. 이 나무도 중국이 원산지이며 정원수나 가로수로 많이 심는다. 소태나무과라는 것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맛과 냄새가 지독하다. 뿌리껍질을 저근백피(樗根白皮)라 하여 한약재로 쓸 뿐이다.

 “과”가 다른 두 나무에 “-죽나무”라는 같은 이름이 붙은 것은 생김새가 너무나 비슷하기 때문일 것이다. 대나무처럼 순을 먹는다 해서 붙은 이름이라면 그냥 “죽나무”라 해야 하지만 그와 비슷한 나무가 있다 보니, 먹을 수 있는 것은 “참-죽나무”, 먹을 수 없는 것은 “가(假)-죽나무”가 되었다고 한다.

 “진짜”를 “가짜”로 알기는 고금(古今)의 학자들도 별 수 없었던지 요리책에서조차 드물지 않게 가죽나무 잎을 따서 만든 “가죽부각”을 설명하고 있다.

지금도 남도 사람들은 해마다 4월이 되면 (사실은 참죽나무인) “가죽나무”의 빨간 순을 따서 “가죽나물”무침을 해먹기도 하고, 전을 부치기도 하며, “가죽장아찌”를 고추장에 박기도 한다. 잎이 어느 정도 자라면 찹쌀 풀을 먹인 다음 기름에 튀긴, 사실은 “참죽부각”인 “가죽부각”을 만들어 팔기도 한다.

 이런 오해를 다소나마 줄이기 위해서라도 “참죽나무”라는 어원은 아무리 생각해도 달리 해석해야 할 것 같다. 앞서 설명한 대로 가죽나무의 한자 이름은 “가승목(假僧木)”이다.

 그렇다면 참죽나무의 한자 이름은 “진승목(眞僧木)”이 되는 셈이니, 이것을 우리말로 다시 풀이하면 가죽나무는 스님들도 먹지 못하는 “가(假)-중나무”, 참죽나무는 스님들이 즐겨 먹는 “참-중나무”에서 비롯된 말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참죽나무는 웬만한 절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사찰음식에서 참죽나물이나 참죽부각이 차지하는 비중이 큰 까닭이다.

 예나 지금이나 참 “중”보다는 가(假) “중”이 판치는 세상이다. 그래서 한 소식 깨친 참 중마저 도매금으로 한데 취급당하는 이하동문(以下同文)시절이니 더욱 그렇다. 어린 순의 독특한 향기가 봄철의 미각을 돋우는 참죽나무, 나물로도 먹고, 빈대떡도 부치고, 부각도 만들어 먹고, 장아찌도 만들어 먹는, 특히 영호남 등 남쪽 지방에서 인기 있는 봄나물이며, 사찰음식에서도 중요한 요리재료 중 하나가 된다.

 누가 뭐래도 나는 우리 집 가죽나무에서 따낸 가죽이 참 맛있더라. 󰃁

(푸른 숲/20100-20130130.)

출처 : 푸른 숲/20100
글쓴이 : 62seonsang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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