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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성인)푸른 숲 수필가·20100/청림의 신라 천년의 전설

[스크랩] 신라천년의 전설(51)신라 문명황후

ʊ이야기와 도시(n) - 新羅千年의 傳說

 

51. 신라 문명황후(文明皇后)

푸른 숲

cheonglim03@hanmail.net

 

 신라(新羅) 제29대 태종 무열왕(太宗武烈王)의 이름은 춘추(春秋)요, 성은 김씨(金氏)다. 왕비(王妃)는 문명황후(文明皇后)로 김 유신장군(金庾信將軍)의 여동생이다.

 김 유신장군(金庾信將軍)은 여동생이 둘 있었다. 언니 보희(寶姬)와 동생 문희(文姬)가 있었다. 하루는 보희가 꿈을 꾸었는데 서악동(西岳洞) 선도산(仙桃山)에 올라가 오줌을 누었더니 홍수(洪水)같이 되어 성(城) 안이 온통 바다로 되었다. 이 꿈을 꾸고 난 보희는 아침부터 걱정이 되어 베 짜는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언니의 수심 가득한 안색(顔色)을 살핀 문희(文姬)는 무엇 때문에 그리 상심하느냐고 물었더니 언니 보희가 꿈 이야기를 하였다. 이야기를 들은 문희(文姬)는 그러면 언니 꿈을 내가 살 테니 꿈을 팔아 달라하고 옷감 한 벌을 주어 바꾸기로 약속하고 문희(文姬)는 옷자락을 여미어 자기가 가진다는 표시를 하였다. 이런 일이 있은 후 며칠 안 되어 김 유신장군이 춘추공(春秋公)과 더불어 계림(鷄林)에서 공을 차다가 일부러 춘추공(春秋公)의 옷고름을 밟아 뜯게 되었다.

 김 유신장군(金庾信將軍)은 천연스럽게 사과를 올리고 춘추공(春秋公)을 데리고 자기 집으로 가서 보희〔寶姬, 일명 아해(阿海)〕를 불러 황태자(皇太子)의 옷고름을 달아 드리라 하였더니, 보희는 천(賤)한 몸으로 어찌 황태자의 앞에서 바느질을 함부로 하겠느냐며 나오지 않았다.

 김 유신장군(金庾信將軍)은 하는 수 없이 동생 문희〔文姬, 일명 아지(阿之)〕를 불러 옷고름을 달게 하였더니 문희(文姬)는 서슴지 않고 춘추공(春秋公)의 곁으로 나와 바느질을 마치고 돌아갔다. 그 때 춘추공(春秋公)은 가볍게 바라 본 문희(文姬)의 아름다운 용모(容貌)와 동작에 마음이 끌리어 남 몰래 둘 사이는 깊은 관계를 맺게 되고, 문희(文姬)는 어느 틈에 벌써 몸이 무거워졌다.

 이 일을 안 김 유신장군(金庾信將軍)은 시집도 안 간 처녀아이가 아이를 뱄으니 가문(家門)을 더럽혔다고 해서 불에 태워 죽이겠다고, 성 안에 말을 퍼뜨려 놓은 후 하루는 김 유신장군(金庾信將軍)의 집 마당에 나무를 쌓아 놓고 불을 질렀다.

때마침 선덕여왕(善德女王)이 남산(南山)으로 행차(行次)하였을 즈음 김 유신장군(金庾信將軍)의 집에서 검은 연기가 하늘 높이 솟아오르므로 좌우(左右) 신하(臣下)에게 어떤 까닭인가 하고 물은 즉,

“이는 김 유신장군(金庾信將軍)의 여동생이 불의(不義)한 것으로서 혼례 전에 임신(姙娠)을 하였으므로 방금 불에 태워 죽이는 것입니다!”

고 하였다.

 선덕여왕(善德女王)은,

“그러면 임신(姙娠)을 시킨 자는 누구냐?”

고, 다잡아 물었을 때 춘추의 안색이 갑자기 변하며 낭패의 기색이 보이는 지라 여왕(女王)은 이를 알아차리고 춘추더러,

“오늘 저녁 일어난 일은 공의 책임인즉 지금 곧 달려가 구조(救助)하라!”

고 명(命)하였다.

 춘추공(春秋公)은 말을 달려 김 유신장군(金庾信將軍)의 집으로 가서 왕명을 전하여 문희(文姬)를 살리고, 그 후 길일(吉日)을 택하여 혼례(婚禮)를 거행하였다.

춘추공(春秋公)은 선덕(善德), 진덕(眞德) 두 여왕의 뒤를 이어 무열왕(武烈王)이 되었고, 문희(文姬)는 문명황후(文明皇后)가 되었다.

 신라 제30대 문무왕(文武王)을 비롯하여 당(唐)나라에까지 유명한 김인문(金仁問) 등 5남 5녀를 낳았을 뿐만 아니라, 김 유신장군(金庾信將軍)과 손을 잡아 삼국통일(三國統一)의 대업(大業)을 이룬 무열왕(武烈王)의 이면에 이 문명(文明)왕비(王妃) 내조(內助)의 공(功)이 컸다고 한다.

 두 영웅(英雄)이 협력하여 국사(國事)를 함께 보았다. 그 당시 백성으로 왕실과 혼인(婚姻)한 것도 이것이 처음이라고 한다. 󰃁

(푸른 숲. 2013.01.09.)

출처 : 푸른 숲/20100
글쓴이 : 62seonsang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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