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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성인)푸른 숲 수필가·20100/청림의 신라 천년의 전설

[스크랩] 신라천년의 전설(49)성부산

ʊ이야기와 도시(n) - 新羅千年의 傳說

 

49. 성부산(星桴山)

푸른 숲

cheonglim03@hanmail.net

 

 성부산(星桴山)은 일명 “솥두방산”이라고 한다. 그 이유는 세 발 달린 솥 모양이라는 뜻이다.

 성부산(星桴山)은 경주시에서 서남(西南)으로 약 8km되는 경주시 내남면 화곡리(內南面 花谷里)와 동면 망성리(東面 望星里)의 사이에 솟아있는 산인데, 이 산에 얽힌 전설이 두 가지나 있다.

 하나는 성(城) 안에 사는 한 사람이 벼슬을 얻으려고 애쓰던 끝에 어느 날 한 계교(計巧)를 내어 자기 자식을 시켜 성부산에 올라 가 횃불을 올리게 하여 성 안 백성을 놀라게 한 후 자기는 보는 사람마다 이는 괴상한 별이 나타난 것이라고 선전(宣傳)을 하였다. 그리하여 성 안 민심은 소동이 되고 임금님도 이 말을 듣고 걱정되어 이 괴상한 불을 없이 할 사람을 구하게 되었다.

 이 때 아들은 매일같이 밤이면 횃불을 올리게 하고, 자기는 자진(自進)하여 불을 없이 하겠다고 나섰다.

 물론 불을 없이 하면 벼슬을 주기로 약속되었다.

그러나 한편 일관(日官)을 시켜서 점(占)을 쳤더니, 일관이,

“별일 없겠습니다. 다만 한 집안에 있는 자식(子息)이 아침에 죽고, 저녁에는 아비가 통곡할 전조(前兆)입니다.”

라고 아뢰었다.

 과연 어느 날 밤을 산에서 새우고 새벽에 내려오던 아들은 범〔虎〕에게 물려죽고, 아비는 자식이 저녁때가 되어도 돌아오지 않으매 산으로 가 본즉 아들이 시체(屍體)로 되어 있었으므로 아버지는 슬피 울었을 뿐만 아니라 이 사실(事實)이 관가(官家)에까지 알려져서 중벌(重罰)을 받게 되었다.

 

 또, 하나는 『삼국유사(三國遺事)』에 기록된 이야기로, 무열왕(武烈王) 7년 5월 11일부터 6월 22일까지 신라(新羅)는 북방의 큰 나라 고구려(高句麗), 말갈(靺鞨)과 한산성(漢山城)에서 죽을힘을 다하여 싸웠으나 적병(敵兵)에게 포위되어 성 중의 군사들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다만 죽음을 각오하였을 뿐이었다.

 이 급보(急報)를 받은 무열왕(武烈王)은 긴급회의(緊急會議)를 열고 좋은 방책을 의논하였으나 시각을 다툴 뿐 아니라 머나먼 길이라 의논만 구구하였지 아무런 결정을 보지 못하였다. 그 때 마침 김 유신(金庾信)장군이 돌아와 전세(戰勢)의 위급함을 고하며,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막을 길이 없은즉 신(神)의 힘을 빌어서 하는 수밖에 별 도리가 없다하고 성부산(星桴山)에다 신단(神壇)을 만들고 정성껏 기도(祈禱)를 올렸더니 별안간 무서운 화주(火珠)가 신단에서 일어나 높이 공중으로 올라가더니 적진(敵陣)을 향하여 벼락 치는 소리를 내면서 떨어졌다.

 한산성(漢山城)에 있는 군사들은 식량(食糧)도 떨어지고, 원군(援軍)도 오지 않으매 서로 붙잡고 통곡하며 서로 *자인(自刃)하려고 마지막으로 고향을 향해 합장(合掌)할 즈음 문득 적진에 화주(火珠)가 떨어져 수 천 명 군사를 무찌르니 나머지 군사도 겁을 내어 흩어지거늘 이 모양을 바라본 신라군(新羅軍)은 최후의 용기를 내어 적군을 멸망(滅亡)시키고 말았다.

 그리하여 화주(火珠)가 공중으로 날아가 신라를 도왔다고 해서 이 산을 성부산(星桴山)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푸른 숲. 2013.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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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인(自刃) : 칼로 제 생명을 끊음.

출처 : 푸른 숲/20100
글쓴이 : 62seonsang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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