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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성인)푸른 숲 수필가·20100/청림의 신라 천년의 전설

[스크랩] 신라천년의 전설(45)서출지

ʊ이야기와 도시(n) - 新羅千年의 傳說

 

45. 서출지(書出池)

푸른 숲

cheonglim03@hanmail.net

 

 서출지(書出池)는 경주지역에서 동남 약 6km되는 통일전 곁인 경북 경주시 남산동에 있다.

신라 제31대 소지왕(炤知王) 10년 정월 15일 왕이 천천정(天泉亭)에 거동하는 길에 까마귀와 쥐가 길을 가로 막고 울기에 매우 이상하여 한 장사(壯士)로 하여금 까마귀의 뒤를 따르게 하였더니 장사가 까마귀의 뒤를 따라 피촌(避村), 지금의 남산동(南山洞)까지 이르렀을 적에 두 마리의 돼지가 서로 싸우고 있었다. 그래서 그것을 재미있게 바라보다가 그만 까마귀를 잃어버리고 길가에서 헤매고 있을 때 근처의 못〔池〕에서 한 노인이 나와 편지(片紙)를 한 장 주므로 받아 들고 보니 봉피(封皮)에 글이,

“개봉(開封)하면 두 사람이 죽고, 개봉치 않으면 한 사람이 죽느니라.”

고 쓰여 있으므로 이상히 여겨 곧 돌아 와서 왕께 올리며 사실을 아뢰었더니 왕은 개봉하여 ‘두 사람이 죽느니보다 차라리 개봉치 않고 한 사람이 죽는 것이 나리라.’하고 개봉할 생각을 두지 않았다.

 그 때 옆에서 일관(日官)이 점(占)을 치고 나서 여쭈되,

“두 사람은 서민(庶民)을 말함이요, 한 사람은 곧 임금님을 가르침이요, 페하께서 개봉(開封)하소서.”

 하고 간청하였다.

 왕은 그제야 개봉을 하여 본즉 『금갑(琴匣)을 쏘아라!』하였기로, 왕은 더욱 수상히 여겨 곧 궁중으로 들어가서 내전에 있는 금갑을 활로 쏘았더니 붉은 피가 흘러내리므로, 금갑을 열고 보니 임금님을 살해(殺害)할 계획으로 남여(男女) 두 사람이 숨어 있었다.

 그 후 이 못을 부르되 “서출지(書出池)”라 하고, 해마다 정월 15일이면 오기일(烏忌日)이라 하여 까마귀에게 공양(供養)하는 풍속(風俗)이 생겼는데, 이 날은 특히 오곡(五穀)으로 만든 잡식(雜食)을 먹으며 도시(都市), 촌락(村落)을 막론하고 놀게 되었다고 한다.

 

참고 자료

○ 경주 서출지(書出池)의 내력

 신라 소지왕 10년(488) 천천정(天泉亭)에 행차할 때였다. 갑자기 쥐가 나타나서 까마귀를 가리키며 “이 까마귀가 가는 곳을 잘 살피시오!”라고 말했다. 왕은 신하에게 까마귀의 뒤를 쫓게 하였는데 신하는 남쪽 못가에 이르러 돼지 싸움을 구경하느라 까마귀를 놓치고 말았다. 신하가 당황하고 있는 사이 못에서 한 노인이 나타나서 신하에게 편지를 한 통 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 편지를 떼어보면 두 사람이 죽을 것이요, 떼어보지 않으면 한 사람이 죽을 것이다.” 신하는 기이하게 여기며 이를 왕에게 알렸다. 편지를 받아든 왕에게 한 신하가 “두 사람은 백성이고, 한 사람은 임금이 아니겠습니까?” 라고 아뢰었다. 왕은 이를 옳다고 여기고, 편지를 떼어보았다. 편지에는 “거문고 갑을 쏘라”는 말만 적혀있었다. 이상하게 여긴 왕은 궁으로 돌아와 거문고 갑을 향해 활을 쏘았다. 그러자 그곳에서 내전의 불공을 맡고 있는 중이 궁주와 몰래 흉계를 꾸미고 있음이 드러났다. 이때부터 못에서 글이 나와 간계를 막았다는 뜻에서 못의 이름을 “경주 서출지(慶州 書出池)”라고 하였고, 15일을 오기일(烏忌日), 즉 까마귀를 기억하는 날이라 하여 찰밥으로 제사를 지냈다고 전해지고 있다.

 조선 현종 5년(1664)에 임 적이라는 사람이 못가에 건물을 지어 글을 읽고 경치를 즐겼다고 한다. 지금 이 건물은 연못 서북쪽에 소박하면서 우아한 모습으로 남아있다. 󰃁

(푸른 숲. 2013.01.03.)

출처 : 푸른 숲/20100
글쓴이 : 62seonsang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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