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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성인)푸른 숲 수필가·20100/청림의 신라 천년의 전설

[스크랩] 신라 천년의 전설(5)손씨 중시조와 석종

ʊ이야기와 도시(n) - 新羅千年의 傳說

 

5. 손씨(慶州孫氏) 중시조(中始祖)와 석종(石鐘)

푸른 숲

cheonglim03@hanmail.net

 

 신라시대 서울(=경주)에서 태어 난 손 순(孫順)은 손씨(孫氏) 중시조이며, 그 후손들은 경주(慶州=月城), 밀양(密陽), 평해(平海) 등 3형제로 분파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국립경주박물관 종각의 현판에 보면 월성 삼기종(月城三奇鐘)이라는 말이 있는데, 즉 박물관에 있는 신종(神鍾)과 황룡사(黃龍寺)에 있었다는 큰 종〔大鐘〕과 돌 종〔石鐘〕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 삼기종의 하나인 돌 종이 나온 유래(由來)는 이러하다.

신라 제42대 흥덕왕(興德王)시대에 서울 한 구석에 구차하나 부부가 뜻 맞고 의좋게 근근이 사라가는 한 농가(農家)가 있었다. 식구(食口)는 위로 늙은 어머니 한 분을 모시고 어린 아이 하나를 데리고 그날그날을 지내고 있었다.

 그 분의 이름이 바로 이 이야기의 주인공(主人公) 손씨의 중시조인 손 순(孫順)이라고 하며, 부모에게 효성(孝誠)이 지극하여 비록 없는 살림살이나마 언제나 장날이면 나무를 지고 장에 가서 팔아서 돌아올 때는 반드시 고기반찬을 사서 늙은 어머니를 봉양(奉養)하였다.

 그러나 구차한 살림이라 자기 내외와 어린 아이에게는 고기반찬이 잘 돌아가지를 않았다. 그리하여 잘 모른 아이는 할머니 밥상을 떠나지 않고, 또 늙은 할머니 역시 손자를 귀엽게 여기어서 늘 밥상 곁에 두고 상을 받을 때마다 고기를 손자에게 주곤 하였다. 그래서 하루는 손 순이 생각하니 늙은 노모를 위한 효도가 어린 아이에게 가고 어머니에게는 효성의 보람이 적고 보니 어느 날 내외가 의논한 나머지 어린아이는 또 얻을 수 있으나 늙은 어머니는 한 번 가시면 다시는 뵈옵지 못하리니 우리의 효성에 방해되는 이 아이를 없애자고 내외가 의논한 뒤 밤이 깊은 어느 날 아내는 사랑하는 아이를 업고 남편은 괭이를 들고 뒷산으로 올라갔다. 그래서 아이를 묻고자 땅을 괭이로 파는 도중에 괭이 끝에 땅하고, 울리는 소리가 나기에 파고 보니 이상하게도 돌 종〔石鐘〕한 개가 나왔다.

 그 어머니는 그렇지 않아도 사랑하는 어린 아이를 차마 묻기 어려워 하던 차이라 쓸쓸하고 가슴이 아픈 그 때 그 종을 보고 놀라면서 하는 말이,

“이것이야 말로 참말로 이상 하외다. 이 어린 아이를 묻지 말라고 하느님이 구원하려는 신조(神助)인가 봅니다. 이곳에서 어찌 돌 종이 나올 리가 있겠습니까?”

하면서 종을 쳐 보니 묘한 종소리가 울렸다.

이리하여 손 순(孫順)은 다시 아이를 아내에게 업히고 자기는 괭이자루에 종을 걸고 집으로 돌아 왔다.

 그래서 그 돌 종을 집 처마에 달았더니 바람결에 울리는 묘한 종소리는 멀리 대궐까지 들리고, 성 안에는 소문이 자자하였으며, 임금님께서도 알게 되매 이는 효성이 지극함이라 하고 나라에서 표창을 하고, 상으로는 집 한 채와 쌀 50석을 받게 되었다. 이것을 고이 전하기 위하여 이곳 동명(洞名)까지 종동(鍾洞)이라고 부르게 되었으며, 후인(後人)들이 손 순(孫順)의 효자비를 이곳(경주시 현곡면 소현리)에 세우고, 또 동명을 고쳐서 효자리(孝子里)라고 하였다.

지금은 그 자리에 그 당시의 유래를 기록한 비석만이 쓸쓸이 길가에 서 있어 오가는 사람의 발걸음을 다시 멈추게 하고 있다.

 그 후에 시호(諡號)로서 문효공(文孝公)이라 봉(奉)하고, 본 집터에는 홍효사(弘孝寺)라는 절을 서게 되었다.

 

참고자료

○ 명심보감(明心寶鑑)   第二十三 : 孝行篇(續)

 

孫順이 家貧하여 與其妻로 傭作人家以養母할새 有兒母

 

奪母食이라. 順이 謂妻曰 兒奪母食하니 兒는 可得이어니

 

와 母難再求라하고 乃負兒往歸醉山北郊하여 欲埋掘池러

 

니 忽有甚奇石鍾이어늘 驚怪試撞之하니 舂容可愛라. 妻

 

曰 得此奇物은 殆兒之福이라. 埋之不可라한대 順이 以爲

 

然하여 將兒與鍾還家하여 懸於樑撞之러니 王이 聞鍾聲

 

淸遠異常而覈聞其實하고 曰 昔에 郭巨埋子엔 天賜金釜

 

러니 今孫順埋兒엔 地出石鍾하니 前後符同이라하고 賜

 

家一區하고 歲給米五十石하니라.

 

○ 順之父는 鶴山이니 新羅牟梁里人也.

 

○ 손 순(孫順) : 신라 때의 사람. 손 순(孫順)은 모량리(牟梁里) 사람으로 그의 아버지는 손 학산(孫鶴山)이라 하였다. 아버지가 죽으매 아내와 더불어 남의 집에 품을 팔아 곡식을 얻어 늙으신 어머니를 봉양하였다. 어머니의 이름은 운오(運烏)라 하였다. 손 순에게 어린아이가 있어 매양 노모의 음식을 빼앗아 먹으므로 손순이 이를 민망히 여기어 그의 아내에게 말하였다. “아이는 다시 얻을 수 있으나 어머니는 다시 얻기 어렵소. 아이가 어머니의 음식을 빼앗아 먹으니 어머니의 굶주림이 심하오. 차라리 이 아이를 묻어 버리고 어머님이 배부르시게 하는 것이 좋겠소.”그리고 아이를 업고 취산(醉山) 북쪽 교외에 가서 땅을 파다가 홀연 기이한 석종〔石鐘〕을 얻었다. 부부가 놀라고 이상히 여겨 잠깐 나무 위에 걸고 두드려 보았더니 그 소리가 은은하여 퍽이나 사랑스러웠다. 이에 부부는 아이의 복이라 생각하고 아이를 업고 종을 가지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부부는 종을 들보에 달고 두드리니 그 소리가 대궐에까지 들리었다. 흥덕왕(興德王)이 그 종소리를 듣고 좌우에 이르기를 서쪽 교외에 이상한 종소리가 나는데 맑고 원대함이 보통 것과는 다르니 속히 알아보라 하였다. 왕의 사자가 그 집에 와서 이를 조사하고 사실을 자세히 아뢰니, 왕이 “옛날 중국의 곽거(郭巨-손순과 같이 하다가 금 솥을 얻은 중국사람)가 아들을 파묻으매 하늘이 황금 솥을 내리었소. 지금 손순이 아이를 묻으매 땅이 석종을 솟아냈으니 곽거와 손순의 일을 천지에 같은 본보기가 되겠구나.”하고는 집 한 채를 주고 해마다 메벼 오십 석을 주어 지극한 효성을 숭상하게 하였다. 순이 옛집을 희사하여 절을 삼아 홍효사(弘孝寺)라 하고 석종을 안치하였다. 진성왕대에 백제의 도적이 그 마을에 쳐들어와 종은 없어지고 절만이 남아 있다. 그 종을 얻은 땅을 완호평이라고 하나 지금은 와전되어 지량평이라고 한다. (출전 : 삼국유사)

○ 손순매아설화(孫順埋兒說話) : 한국 설화 | 브리태니커

가난한 아들이 부모를 봉양하기 위해 자식을 묻으려다가 돌 종을 얻어 자식을 살리고 부모에게 효도했으며 종교적인 구원까지 얻었다는 이야기.

“손순의 돌종 설화”라고도 한다. 전국적으로 분포되어 있으며, 문헌으로도 많이 전한다.『삼국사기』효선편(孝善篇)에 실린 설화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손순은 아버지가 죽자 아내와 함께 품을 팔아 얻은 양곡으로 늙은 어머니를 봉양했다. 어린 아들이 항상 어머니의 음식을 빼앗아 먹으므로 손순은 “아이는 다시 얻을 수 있지만 어머니는 얻을 수 없다.”라며 아이를 땅에 묻자고 했다. 아이를 업고 취산(醉山) 북쪽에 가서 땅을 파는데 돌 종이 나왔다. 놀란 부부가 종을 두드려 보았더니 소리가 대궐까지 들렸다. 종소리를 들은 흥덕왕(興德王)은 거기에 얽힌 이야기를 들은 뒤 손순에게 집 한 채를 주고 해마다 벼 50석을 주어 효도하게 했다. 그러자 손순은 옛 집을 희사하여 절로 삼아 홍효사(弘孝寺)라 하고 돌 종도 거기에 달아두었는데, 뒤에 백제의 도둑이 와서 종을 훔쳐갔다. 종을 얻은 땅을 완호평(完乎坪)이라고 했으나 나중에 잘못 전달되어 지양평(枝良坪)으로 변했다. 이야기는 손 순의 가난한 생활과 효행, 그 보답으로 얻은 보상과 절의 건립이라는 사찰연기설화(寺刹緣起說話)로 귀결된다. 이야기의 처음부터 끝까지 뚜렷하고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것은‘효’이다. 효행은 손 순 일가의 고난과 결핍의 상황을 기쁨과 충족으로 바꾸어놓는 핵심요소이다. 매아 (埋兒)이후의 사건단락에서는 종이 가장 중요한 의미이다. 효의 차원에서 볼 때도 종은 효행을 대변하는 역할을 한다. 모든 사건들이 종과 관련되어 제시되고 손 순 일가의 중요한 문제들도 종과의 관련 아래 해결되고 있기 때문이다. 매아 현장에서 돌 종이 나왔다는 사실과 그것으로 아이가 구출된다는 데는 효행과 생명의 존중이라는 2가지 의미가 들어 있다. 종소리는 매아의 현장에 있던 손 순 부부의 내면변화, 집으로 돌아온 뒤 마을 단위로 이루어졌을 깨달음, 국가적 단위의 변화를 가져온다. 이야기는 윤리적 차원의 이념추구에서부터 사랑과 구원의 의미 쪽으로 향해가면서 이야기가 추구하는 내용이 효행담(孝行談)만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 (푸른 숲. 2012.11.23.)

출처 : 푸른 숲/20100
글쓴이 : 62seonsang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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