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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서수필 2/4다마 계룡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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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서수필 2) 110. 나를 따르라 “40년 만에 다시 오른 마을뒷산 계룡산” 110. 나를 따르라 이영백 나란 사람은 참 평범한 사람이다. 평범한 사람이 무슨 글 쓸 일이 있겠나? 그렇다. 평범한 사람은 글 쓰면 안 될까? 사람은 태어나면서 저절로 저 나름의 삶을 지향하고, 그 삶에서 자잘 못을 뉘우치며, 살았던 것을 정리할 수도 있어야 하겠기에 글을 쓴다. 설령 그것이 논픽션이든, 수필이든 간에 남겨야 하겠기에 글을 쓴다. 조금의 글을 쓰면서 수필을 짓는다. 작가가 되었다. 좌충우돌 스스로 자학도 하며 글에 대한 분풀이처럼 밤낮 글을 써댔다. 공모전에도 제출하고 수상도 하여 보았다. 게다가 피나는 노력으로 국어를 전공한 모탕에서 수필 이론에 눈 떴다. 문학에서도 장르가 있지만 수필 한 분야에서도 작은 장르가 있다. 정격수필은 길다. 스..
(엽서수필 2) 109. 내가 누군가 “40년 만에 다시 오른 마을뒷산 계룡산” 109. 내가 누군가 이영백 뒤로 힐끗 돌아보았다. 나의 삶이 쪼르르 달려와 보인다. 시골에서 자라면서 어려움이라는 것을 극복하고 첫 직업이 교사자리 이었다. 남을 가르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물론 가르치는 공부를 줄곧 하여 왔기에 학동들 앞에 설 수밖에 없었다. 만 8년을 가르치고 내 공부 더 한다는 핑계로 남기고 그 자리를 떠났다. 차라리 난 배우는 것이 더 쉽다. 다시 한 번 더 뒤로 돌아보았다. 나의 삶이 도회지에서 살 것이라고는 애초에 생각도 못해 봤는데 어쩌다 대학 행정직으로 봉사하였다. 그렇게 젊음을 고스란히 37년 6개월로 몸 바치고 또 미련 없이 버리고 떠나지 않았든가? 조직을 떠난 자유인이 되었다. 글 쓰는 내가 되고 말았다. 글..
(엽서수필 2) 제9부 내가 나를 따르다 108. 낙엽 하나 줍다 “40년 만에 다시 오른 마을뒷산 계룡산” 제9부 내가 나를 따르다 108. 낙엽 하나 줍다 이영백 서늘한 바람이 불어주면 아홉 달 동안 탄소동화작용으로 푸른 잎을 만들어 두었는데 기온이 내려가면서 활동이 줄어진다. 가지와 잎에서 수분이 준다. 마침내 가지에 떨켜 층이 생기고 가지와 잎은 분리된다. 낙엽이 된다. 낙엽은 어찌 보면 우리네 인생과 같다. 자식을 위해 고도의 노력으로 벌어먹여 살렸는데 나이 들면서 나락으로 떨어지는 게 인생이다. 야시골공원으로 오르면 길섶에 쌓인 낙엽을 본다. 한편으로 씁쓸하다. 그러나 허리 굽혀 낙엽 하나를 줍는다. 빨갛고 노랗고 또 형형색색이 모여 자연색을 보여준다. 낙엽 하나에 그 나무의 일생이 색으로 들어있다. 낙엽은 왜 생겼는가? 부모와 자식 간에 먼저 부모가 북망산..
(엽서수필 2) 107. 바람 그리다 “40년 만에 다시 오른 마을뒷산 계룡산” 107. 바람 그리다 이영백 나는 바람을 그린다. 바람이 어떻게 생겼기에 그림으로 그린단 말인가? 바람을 글로 그린다. 바람은 기압의 변화에서 비롯하는 공기의 흐름인데 우리들 눈에는 잘 보이지 않는다. 다만 그것을 아는 방법은 주변사물의 흔들림을 보고 알 수 있을 뿐이다. 그러한 느낌을 바로 글로 그린다. 문이나 문틈으로 들어오는 바람을 “문바람”이라고 한다. 단독주택은 겨울에 이 문바람으로 위풍을 만들고 방안 공기를 차갑게 만든다. 바로 그 바람이 몰래 들어와 우리들 몸을 차갑게 만들어 문바람을 오지게 느끼게 하곤 한다. 시골에서는 그 문바람을 줄이려고 늦가을 방문마다 문 전체의 모든 종이를 발겨낸다. 새 창호지를 사다가 풀 쒀서 비로 발라 문바람을 예방한다...
(엽서수필 2) 106. 작가의 방 “40년 만에 다시 오른 마을뒷산 계룡산” 106. 작가의 방 이영백 나는 작가인가? 적어도 문학에서 한두 가지 장르를 섭렵하고 자타가 공인하는 작품을 생산하여야 우리는 그들을 “작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스스로 돌아보아도 너무 부끄러울 뿐이다. 세상에서 가장 씨앗이 작은 것으로는 “겨자”가 있는데 겨자씨보다 작은 노력으로 이제 싹을 틔우려는지 모를 일이기 때문에 함부로 작가라고 자부하기가 너무도 민낯이다. 작가의 방에는 무엇이 있을까? 현대에 와서는 원고지 대신에 컴퓨터가 설치되고 프린터기기가 있을 뿐이다. 물론 인터넷에 쓰일 인터넷의 익스플로러(Internet Explore)는 설치하였다. 컴퓨터 자판기에 손가락과 손목이 아프도록 밤낮 쳐댈 뿐이다. 무슨 원수가 든 것처럼 머리를 써가며 말이다. ..
(엽서수필 2) 105. 밝은 생각을 낙엽처럼 퍼날려라 “40년 만에 다시 오른 마을뒷산 계룡산” 105. 밝은 생각을 낙엽처럼 퍼날려라 이영백 늦었다고 생각하고 늦은 나이로 늦게 깨달아 도심공원에 대한 글을 쓰게 되었다. 내가 살고 있는 곁에 대한 모든 것에서 밝은 생각으로 출발하여 이 글을 쓰게 되었다. 내가 사는 마을에 위치한 야시골공원을 사랑하게 되었다. 이 밝은 생각에서 밝은 행동을 만들게 된 징후를 제공한 것이다. 밝은 생각은 밝은 마음에서부터 시작한다. 나의 불만을 토로만 하고 있을 것인가? 차곡차곡 불만을 해소한다면 저절로 남는 것은 밝은 생각으로 이어지며, 이것이 밝은 마음으로 바뀌어 나에게 찾아오게 될 것이다. 밝은 생각을 하면 이웃하는 사람들에게도 많은 기쁨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밝은 생각에서 이웃사람들의 눈에 보이도록 하고, 스스로..
(엽서수필 2) 104. 혼자서는 외롭다 “40년 만에 다시 오른 마을뒷산 계룡산” 104. 혼자서는 외롭다 이영백 그렇게 늘 복작거리는 사람들 속에서 한편으로 너무 많이 지겨울 정도로 느끼고 살았다. 그러나 갑자기 내 곁에 아무도 없는 때를 스스로 놀랐다. 복작거리는 것이 싫어서, 처남 없는 처가에 내자와 결혼하였다. 이제 너무 곁에 없다. 혼자이기에 더욱 외롭다. 혼자서 세상이 외로운 것이다. 여러 사람들과 일을 하거나 놀거나 늘 함께 하였다. 갑자기 아무도 없이 혼자다. 아들 둘 장가가서 나가 살고, 내자와 둘이 사는데 간혹 내자가 마트가거나 친구 만나러 가고 없으면 갑자기 나는 혼자가 된다. 혼자가 되어서 하는 일은 무엇인가? 단지 몇 줄의 글만을 쓸 수 있는 것뿐이다. 겨우 하는 일이 글 쓰는 일이다. 그래도 묵묵히 혼자가 되어서 기다..
(엽서수필 2) 103. 지름길 “40년 만에 다시 오른 마을뒷산 계룡산” 103. 지름길 이영백 같이 차에서 내려 길을 걸었다. 그러나 집에 도착하여 보니 내가 늦었다. 왜 그랬을까? 세상에나? 세상 살면서 지름길이 있다는 것을 난 여태껏 모르고 살았다. 그랬다. 세상에는 지름길이 곳곳마다에 모두 있었다. 지름길은 한자어로 첩경(捷徑)이라고 한다. 첫째, 어떤 일에 이르기 쉬운 방편이라고 한다. 둘째, 지름길은 본래의 길보다 더 짧은 거리를 이동해서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는 길이라고 한다. 그러면 지름길이 정녕 좋은가? 어떤 이는 평생 어렵게 공부하고, 어렵게 취직하는데 금수저들은 공부도 쉽게 하고 들어가는 문도 쉬웠다. 뿐만 아니고 아주 쉽게 취직도 하였다. 이게 무슨 변고인가? 이렇게 쉽고도 쉬운 방법이 있었다니? 그것은 사회적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