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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서수필 2/4다마 계룡산

(엽서수필 2) 117. 올라가 봤으니 내려와야지

“40년 만에 다시 오른 마을뒷산 계룡산”

117. 올라가 봤으니 내려와야지

이영백

 

 내가 사는 동네에 작은 동산인 계룡산이 있다. 그곳을 요즘 근래에 와서 “야시골공원”이라고 구청에서 명명하고, 편백나무도 심고 가꾸어 놓았다. 아울러 흙길을 조성하여 맨발로 걷기 할 수도 있다. 순환로(A, B)가 각 350m로 두 곳을 돌아오면 700m이다. 왕복하면 딱 1.4km로 젉은이로서 운동하기에 좋다. 매일 이곳을 올라가 봤으니 이제 내려온다.

 도심공원 산 정상에 올라서 생각해보니 이곳으로 오르내린 것이 마치 사람들의 삶이었던 인생 같았다. 내가 오르내리면서 치열한 삶의 현장을 오르내린 것과 진배없다. 그래서 더욱 야시골공원이 좋았던 모양이다.

 인생의 첫걸음은 촌사람으로 살면서 헐벗음 그대로 살았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베잠방이에 헐렁한 무명베 홑바지로 겨우 맨 살갗을 가리고 그렇게 사하촌(寺下村)에서 관광지도 아닌 농촌에 살았다. 그렇게 산 것이 나의 인생 출발기인 동시에 “학동기”이었다. 부모에게 효도하라는 지엄한 사회규범에 따라 아버지 말씀대로 초등학교 졸업하고 학문과 담쌓았다. 그러나 열 번째 막내로 가문을 이어라고 서당공부는 허락 아닌 명령으로 받았다. 서당공부로 문리(文理)가 트이려면 긴 시간을 요할 것이다.

 청년기를 거치면서 논 두 마지기 유산에 초가 한 동이면 규수 맞아 결혼하고 조상 잘 모시고 사는 것으로 아버지의 전근대 깊은 사고의 철학이었다. 그래서 착하게 명령(?)대로 초교 졸업하고 서당 다녔다. 그러나 그것이 시대를 읽는데 서당은 거슬림이요, 신학문하는 동기들이 눈에 밟히었다. 2년 서당공부 끝으로 신학문 하러 출사표를 쓰고 집을 탈출하였다.

고학으로 중고대를 마치고 첫 직업 얻은 것이 초등학교 교사였다. 1년 벌이로 결혼하고 또, 교직 8년하고 버렸다. 공부 더 하려는 핑계로 대학 행정직으로 택하였다. 7급에서 3급(부참여)으로 은퇴하였다. 올라봤으니 내려와야 하였다. 지금 생각하니 마치 마을 산을 올랐다가 내려온 듯하다.

 이제 삶의 정상에 섰다. 황혼의 노을이 나를 기다렸다. 차장의 허락도 없이 하차하였으니 나도 황당하였다. 그래도 제2의 인생을 수필로, 논픽션으로 점철하고 있다. 야시골공원을 내려왔다. 글 117편 쓰고 이제 내려왔다.

 동산에 올랐으니 내려오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오늘도 글 쓰고 있다.

(20210216. 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