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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성인)푸른 숲 수필가·20100/늚이의 노래 1

(엽서수필) 111. 삶의 표상

111. 삶의 표상

이영백


 나는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은 삶의 목표를 그렸다
. 아버지의 밑그림을 바꾸어서 출사표를 쓰고 가출하였다. 바로 내 인생은 내가 정하고 내가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라고 아집을 부렸던 것이다. 스스로 내 인생의 목표는 내가 만들고, 그렇게 되어 갈 것이라고 실행하였던 것이다.

 사람에게는 저마다 삶의 목적이 분명할 것이다. 그랬다. 내가 살고 내가 살아가는 인생여정(人生旅程)에서 쥐가 독을 뚫듯 하루의 양만큼 쉬지 않고 두들긴 결과가 이 포인터까지 도착하게 만든 것이다. 힘들었다.

 바로 내가 살았던 인생을 말하고 싶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자. 벌거숭이로 태어나서 작은 헝겊 조각으로 감싸 살았던 지난날에서 독립만세를 부르게 된 것은 서당에서 터득한 문리가 있었기에 가능하였던 것일 게다.

 나의 인생목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사는 것이다. 누가 곁에서 무어라고 주장하더라도 나에게 맞는 한 벌의 옷처럼 나의 확고한 생각이 곧추설 때 실행하는 것이 나의 목표를 이룬 것이다.

 우회로를 통하여 삶의 밑바탕이 생기고 나서부터 나로서 존재하고, 나로서 이루어 나갈 것을 고집하였던 것이다. 어린 날 서당에 꿇어앉아서 다리가 저리도록 앉아 터득한 것이 사람 사는 방도였던 것이다.

 늦깎이로 우회로를 걸어오면서 무던히 애달픈 것이 하루아침에 이루진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다는 결론이다. 모든 모탕은 계획하는 것이다. 우선 남자는 배워야 한다. 배웠으면 남을 가르쳐야 한다. 그 사이에 재화가 따라 올 것이다. 먹고 살아야 남을 가르치는 것이다. 나도 벌고, 남도 가르치는 지극히 단순한 진리다. 배웠으니 남을 가르치는 베풂을 베풀 것이다. 이 작은 진리에서 문학에서조차 고집은 바로 나의 생각을 주창한다.

 수필이라는 장르를 통하여 글을 쓴다. 알아지고 그 영역이 넓어지면 배운 것을 알려주고 주창을 완성한다. 바로 지행합일(知行合一)”하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모두를 서당에서부터 배운 것일 게다.

 누구는 어찌하여 그러한 문맥이 나오느냐고 묻는다. 어휘를 확장하고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 1,474면 국어사전을 두 번이나 정독하였다. 수필은 체험이다. 체험을 풀어내는 것이다. 그러려면 당연히 정확한 어휘개념을 알고 있어야 문장으로 풀어 낼 것이다. 고집스러운 나의 아집이다.

 내 삶의 표상이 곧 은근과 끈기. 나의 대기만성(大器晩成)이다.

 이룸의 생각이 그곳으로 집중하고 적극 펼치면 마침내 큰 뜻을 이루리라.

(202007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