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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성인)푸른 숲 수필가·20100/늚이의 노래 1

(엽서수필) 107. 액자와 살라

107. 액자와 살라

이영백

 

 나의 삶은 액자에서부터 출발한다. 시골에서 태어났으니 저절로 시골이야기부터 시작이다. 아침에 잠을 깨면 바깥이 훤하게 밝아오는 창문을 향하여 고개 들면 방문위 벽에는 가화만사성이라는 길쭉한 액자가 걸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그렇게 액자를 보며 삶을 시작한다.

 액자 속에는 우리들의 많은 이야기가 담아있다. 아침에 일어나 세수하고 쇠죽을 끓인다. 셋째누나는 권식(眷食)들의 밥을 짓는다. 마치 사람 사는 일들이 액자 속에 모두 갇혀 있듯 하다. 사진의 낱장이 올망졸망 사람 사는 이야기를 털어내어 자기 이야기 먼저 하려고 기다리고 있는 듯하다.

 아침밥을 먹으면서 동쪽 벽 위에 가족들 통과의례의 결과물인 낱장의 사진들이 그 속에 집합하여 있다. 하나씩 이야기를 펼친다. 가장 먼저 보이는 사진은 가운데 위에 아버지의 갑연(甲宴)사진이고, 우리 식구들과 함께 기념한 것이다. 그 해 내가 초교 3학년 때이니 1959년 사라호 태풍이 온 해다. 음력 시월 스무사흘 날이다. 액자라는 틀 속에 우리 가족들이 모두 들어 있다. 셋째 형이 625전쟁에 참전하여 압록 강물을 대통령께 떠다 바친 압록 강수헌수 기념사진이 들어 있었다. 그 작은 액자 속에는 그런류의 이야기들이 비집고 꽉 들어차 있어서 이야기가 언제 끝날지 모른다.

 집집마다 벽에 걸려 있는 사각 사진틀에 희로애락의 이야기들이 서로 자기 얘기부터 들어달라고 강조한다. 사각 액자 속을 헤집고 나올 것처럼 이야기들이 쌓인 작은 소품들이다. 어쩜 요정들이 들고 나올 듯하다.

 논문 쓰면서 김동리 소설을 분석·연구하였다. 동리소설에는 액자소설이 많았다. 소설에 왜 액자가 나올까? 그것은 겉에 이야기가 있고, 속에 이야기가 있어 한 편의 소설이 되었다. 겉에 이야기와 속에 이야기가 들어있는 소설이 액자소설인 것이기 때문이다. 많은 액자소설 중에 나는 무녀도 등신불을 분석하여 학위 논문이랍시고 발표하였다.

 시골 집집마다 걸어 둔 액자 속의 이야기를 풀어 헤치면 아마도 장편소설이 되고도 남을 것이다. 마치 끝없는 천일야화 이야기주머니 같다.

 요즘 다이소라는 상점에 들르면 소품액자들이 일천 원에서부터 오천 원 값이면 액자를 살 수 있다. 직접 그림을 그려 담아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고 있다. 화가도 아니며 걸어 둘만한 가치 있는 작품도 아니다. 그러나 스마트 폰으로 찍어 올렸더니 제자들이 서로 달라고 문자를 넣는다.

 액자는 사람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영정사진도 액자에 담길 것이다.

(20200717. 제헌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