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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성인)푸른 숲 수필가·20100/청림수필집·술은 술술 잘 넘어가고

[스크랩] (푸른 숲 제7 수필집)술은 술술 잘 넘어가고-40.옌벤 다방에서

신작수필

40. 옌벤 다방에서

이 영백

cafe.daum.net/purnsup

 

 중국 첫 번째 방문 하고 꼭 7년이 지나고 2003년에 공식 출장(학장, 기획처장)으로 옌벤(延邊)을 갔을 때 일이다. 물론 연변으로 바로 간 것은 아니었다.

 일정이 센양(沈陽)에 가서 두 곳 대학(沈陽工業大學, 沈陽理工大學)과 자매결연을 맺는 일이었고, 옌벤에서는 옌벤대학(延邊大學)을 방문하고, 백두산(白頭山)을 돌아 베이징(北京)을 거쳐 서 귀국하는 일정이었다.

 센양에서 일정은 그런대로 외국에서 하는 행사인지라 잘 치르고 넘어가게 되었다. 이제 일정에 따라 옌벤으로 가야한다. 아차! 일정에 따른 비행기 표를 체크하지 않고 공항으로 나갔다. 겨울방학인지라 백두산으로 가는 단체가 왁자지껄하여 공항내에서 무척 시끄러웠다.

 불안 불안하면서도 심양이공대학 국제교육학원 원장 허지×(許志×, 조선족이었고 여 교수, 청화대 출신)가 공항으로 함께 배웅하러 차까지 동원하여 주었다.

 저녁 8시 20분발 비행기이었다. 아니 이럴 수가 있나? 센양에서 옌벤으로 가는 비행기 표를 전날에 체크를 하지 않아서 포기한 것으로 간주하여 표가 없다는 것이다. 옌벤대학에서는 우리가 8시20분 비행기면 9시 50분에 옌벤공항에서 기다리고 있다. 원장이 한 동안 비행기 표 때문에 사정을 하는 모양이었다. 이는 국제적으로 대학 학장과 교수들을 무시하는 것이 되니 표를 구해 내라고 말이다. 약 30분 동안 통사정을 하여 그것이 먹혀들었는지 9시 40분 비행기 표 3장을 끊어 주었다. 백두산 가는 단체객들이 많아서 웃돈을 받고 표를 파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고맙다는 표시로 커피를 한 잔씩 돌리고 있는데, 시간이 아직 덜 되었는데도 전광판에 문자가 떴다. 9시 40분 연변 비행기는 10분 당겨서 출발한다는 것이었다. 이것 참 어느 나라에서 비행기가 조출(早出)한다는 것을 알린다는 말인가? 하기는 그날 오후부터 흐려져서 현재 바깥에서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10분이라도 빨리 당겨 준다면 참 고마운 일이기도 하였다.

 우여곡절 끝에 일행은 옌벤으로 날아갔다. 찬 공기가 스며들고, 비가 내리는 옌벤공항에 캄캄한 밤에 내리고 말았다. 출구 바깥에서 우리를 기다리는 두 분이 있었다. 옌벤대학 민족문화연구소 소장인 최 박사(崔文×)와 그 비서인 차 교수(車今×)이었다. 짐을 찾고 보니 밤 11시 10분, 비서인 차 교수는 여자 분으로 자기 차를 몰아주셨다. 숙소인 대우호텔까지 가니 벌써 11시 30분이 되었다.

 당시 연변에서 제일 큰 대우호텔에 들어가서 로비에 예약을 확인하니 또 이럴 수가 있나? 예약이 안 되어 있고, 방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 자리에서 한국여행사 김사장에게 여쭤보니 자기들은 상해주재 여행사에서 반드시 예약을 해 두었다고 한다. 참고로 중국에서는 간혹 그런 경우가 있다고 했다. 사실은 예약이 되어 있는데 안 되었다고 하고 돈을 떠 뜯어내려는 수작이라고 한다. 정말 그랬다.

 실망을 하면서 생각을 하고 있는데, 로비 위에 한자로 정확하게 내 이름의 쪽지가 보였다.

“웨이터! 이 양반아! 여기 쪽지가 있잖아! ‘李泳×外 2人!’ 야! 이놈들 봐라!”

 그 메모지를 쥐고서는, 때 마침 저쪽에 야구 방망이가 있었다. 방망이를 들고 죽인다고 큰 소리로 지르니 그때야 혼비백산을 하고 웨이터가 잘못하였다고 한다. 겨우 수습을 하고 방을 안내받고 보니 12시가 되어 가고 있었다. 이런 소동을 다 보고 있었는지라, 옌벤대학 교수들도 미안하다고 하였다. 오랜 시간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다고 학장께서 가까운 술집이라도 가자고 제안하였다.

 호텔 바깥을 나오니 중국 연변에서도 늦게까지 노래방 간판이 보이고, 다방 간판도 보였다.

최소장이 이 시간에는 술집까지 멀고 호텔 가까이는 다방밖에 없다고 하였다.

“다방에서 술을 팝니까?”

“예.”

 하기는 우리나라도 1970년대까지 다방에서 티라고 해서 양주를 판 적이 있었다. 어두컴컴한 다방으로 들어갔다. 마담이 잠을 자다가 깨어나서 부시 시한 얼굴로 우리를 맞이한다.

“이 시간에는 맥주 밖에 없어요. 안주도 없고요.”

“예, 시간이 많이 늦었네요. 형편대로 주십시오.”

 훈춘(琿春)맥주와 사이다 컵이 나오고, 큰 사발을 하나 놓는데 간장이 부어져 있고, 고춧가루를 주었다. 안주로는 통 마리로 명태 세 마리를 놓고 그만 가버렸다. 다방에 12시가 다 되어 가면서 명태 세 마리와 간장이 담긴 큰 사발, 병맥주인 훈춘 술이 와 있었다. 누구라 말하기도 전에 비서인 차 교수가 명태를 뜯고 계신다.

“우리나라에서 여교수에게 안주 뜯으라면 인권위에 고소당합니다.”

“우리는 아직까지 그런 적 없습니다. 괜찮습니다. 사람이 하는 일인데요, 뭐요.”

일행 다섯은 옌벤 다방에서 한 밤에 여교수가 손수 찢은 명태안주로 훈춘맥주 16병을 비워 내었다. 󰃁

(푸른 숲/20100-20130511.)

출처 : 푸른 숲/20100
글쓴이 : 62seonsang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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