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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성인)푸른 숲 수필가·20100/청림수필집·술은 술술 잘 넘어가고

[스크랩] (푸른 숲 제7 수필집)술은 술술 잘 넘어가고-36.소카툰중심소학교

신작수필

36. 소카툰중심소학교

이 영백

cafe.daum.net/purnsup

 

 공식 방문행사보다 비공식방문에서 교육시설에 대한 제일 중요한 것을 보고 싶었다. 조선족 교감까지 하다가 소카툰구 경제과장(조선족)이 되어서 우리가 보고 싶어 하는 교육 시설을 확인하려는데 일조하여 주었다.

 1997년 겨울 마침 그날도 경제국에서 차와 기사를 내어 주어서 소카툰중심소학교(苏家屯中心小學校)방문의 길에 오르게 되었다. 학교 입구에서 왼편에 마침 소카툰중심보통중학교 교문도 보았다. 그곳에 내려서 공중 화장실에 들렀다.

중국과 화장실은 보면 정말 속살을 보게 되는 것이라 좀처럼 글쓰기가 민망하였다. 조금 뒤떨어진 이야기지만 중국이 개방 전에는 대도시의 공중화장실이 공개하기 어려운 일이었다고 한다. 남자가 사용하는 시설은 조금 나은 것이지만, 여성이 사용하는 시설은 너무나 굴욕적인 것이다.

시설을 들여다본다. 남자 측소(測所)에 들면, 대소변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시멘트로 둑을 만들고 소변 시는 밑에서 조준하여 볼일을 보게 되어 있었다. 문제는 큰 볼일이다. 마침 들어간 공중 측소는 칸막이도 없었으며, 그냥 둑으로만 만들어져 있어서 그 소변의 요독(尿毒)이 시뻘겋게 눌어붙어 있었다. 가림도 없는 측소에 도저히 그곳에서 큰 볼일을 치를 수가 없다하겠다. 하물며 남자 측소도 이러 할진 데 여자 측소는 어떤가 여쭤보니 똑같은 시설이었다. 바깥에서 볼일 보기 정말 힘들겠다. 더욱 큰 볼일은 큰일이었다.

 곳에 따라 다르겠지만 앞에 문이 없어도 칸막이라도 시설된 곳은 그나마 나은 곳이다. 문이 없는 곳에서 큰일을 보면서 상대편 머리가 보일 정도고 대화까지 한다니 이는 또 무슨 일인지 모를 일이었다.

 차에서 내려 조금 걸어가니까, 우리가 방문 예정지인 소카툰중심소학교가 보였다. 들어가는 교문부터 협소한 시설로 되어 있다. 마치 학교가 아닌 다른 곳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착각하게 만들었다. 시설규모면에는 크긴 큰데, 문제는 교실 안의 소프트웨어를 보아야 한다.

 교장선생님을 만났다. 초면으로 봐도 도저히 선생님의 모양새를 찾기가 어렵다. 우선 머리카락도 단정하지 못하고, 제 마음대로 흩날리면서 잠방이 하나 걸치고 있다. 마치 시골 나무꾼 같아 보였다. 교장선생님은 조선족이었다. 그 학교 학생들도 모두가 조선족이 다니고 있었다. 물론 일부 한족(漢族)도 있다고 한다.

 교실로 안내되어 들어갔다. 건물은 짓다만 건물처럼 느껴졌다. 이렇게 마감처리도 안되었는데 어찌 학생들이 마음 놓고 공부할 수 있을까? 중국의 소학교 수가 얼마나 많겠는가? 그 시설을 다 하려면 시설비가 막대할 것이다.

 교실 안에 칠판은 시멘트를 벽에서 튀어 나오게 하고 검은 칠을 하여 두었는데 오래 사용하다 보니까 칠판바닥이 검은색도 흰색도 아닌 어중간한 색으로 변해서 글씨를 써도 판단이 잘 안 되는 시설이었다.

 책걸상은 개별 책걸상이 아닌 벤치 식으로 단체로 앉게 되어있었다. 누가 한 사람이라도 중간에 일어서면 비틀거리고 삐걱거리는 소리가 나고 말 것만 같았다.

 본관 2층으로 올라가서 교장실, 교무실로 들어갔다. 시설이 매우 열악하였다. 건축만 하여 두었지, 관리실에도 마감처리를 하지 않아서 꼭 허물어지는 것처럼 보였다. 우리가 1980년대 이전에 사용하던 등사판이 있었다. 교사용 책상도 그냥 아무렇게나 나무를 조합해서 손수 만든 책걸상이었다. 아니 정말 이렇게 두고서 소학교 교육을 하다니 정말 우리와는 시대가 많이 뒤떨어진 곳이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경제과장(조선족)도 얼마 전까지 이곳의 책걸상에서 사무도 보고 경영해 왔을 것이다. 참 딱해 보였다. 이미 김 과장은 우리나라를 많이 방문하여 초등학교 시설도 많이 보았을 것이다.

 초교 시설을 보고 뒤돌아 나오는데 교장선생님이 같은 조선족으로서 그냥 못 보내겠다고 꼭 자기 집으로 초청한다는 것이었다. 교장선생님의 급료로는 살기가 어려워 사모님도 식당을 하고 있었다. 1층에 조그만 간판을 걸고 식탁 하나 두고 식당을 하는데 외국인이라고 지하 큰 룸에다 데리고 갔다. 지하에는 꽤 넓은 곳이지만 너무 썰렁하였다. 다만 중국의 전형적인 원형식탁이 있어 그 쓰임새가 훌륭했다. 식탁에 반찬을 차려두면 멀리 있는 사람은 가져다 먹기 어려우므로 가운데 원판을 돌려서 자기 앞으로 가져 와 먹게 만든 식탁이었다.

 둥근 식탁에 기본 상차림을 하여 두었고, 대기하고 있는 동안에 사모님께서 음식을 아주 많이 준비하여 가져 왔다. 일행 여섯 명과 교장선생님, 사모님 등 8명인데 자그마치 반찬으로 열두 접시나 만들어 나왔다. 사실상 접시가 아니고 국그릇이나 큰 쟁반에 가득 담아 온 것이었다. 차를 가지고 온 기사는 퇴근하였다. 밥 반주를 한다면서 아예 그만 술판을 벌이고 있었다. 역시 59도 술이었다.

 겨우 이틀 만에 중국술을 조금 알게 되었다. 술을 연속으로 부어 “간뻬이(乾杯)!”를 외치면서 잔을 부딪친다. 이 때 잔을 부딪치면 모두 마셔야 하고, 아니면 마시고 남겨 두어도 예의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하였다. 중국 땅에 닿고서야 그것을 처음 터득하였다. 되도록이면 이제는 안 부딪치고 조금만 마시고 아껴 두었다.

 우리를 외국에서 환대하여 주어서 고맙다는 인사를 남기고 중국 택시를 탔다. 택시가 일제차로서 매우 좁다. 정창호텔로 돌아와야 했다.

 택시를 타고 와서 내렸다. 일행 중 I사장님이 술에 많이 취하여 그만 좋은 카메라를 택시에 두고 내린 것이다. 처음에는 잊은 줄도 모르고 있다가 촬영한 사진을 확인하려다 없다는 것을 알았다. 아이고! 아까워. 고놈의 59도 술이 죄이던가? 󰃁

(푸른 숲/20100-20130507.)

출처 : 푸른 숲/20100
글쓴이 : 62seonsang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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