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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성인)푸른 숲 수필가·20100/청림수필집·술은 술술 잘 넘어가고

[스크랩] (푸른 숲 제7 수필집)술은 술술 잘 넘어가고-35. 중국 센양 서탑거리

신작수필

35. 중국 센양沈陽 서탑거리

이 영백

cafe.daum.net/purnsup

 

 나는 중국을 1997년 처음으로 공식, 비공식 반반으로 랴오닝성遼寧省 센양沈陽을 방문하게 되었다. 1995년에 싱가폴, 말레이지아와 홍콩, 대만으로 다녀오고 두 번째 출국하는 일이었다.

 센양 소카툰구苏家屯区 경제주임(우리로 보면 국장급)의 비공식초청으로 요녕대학을 방문하여 자매대학 기초조사 명목으로 겨울방학이 시작하면서 가게 되었다. 일행은 통역도 없이 직원 1명 대동과 외부인 사장 2명이 동행하였다. 사장 한 분은 센양 등을 30여 차례나 뻔질나게 다닌 분이지만 겨우 숫자나 택시 탈 정도의 어학수준이었다. 나머지 분은 건축회사 사장으로 함께 갔다. 일행 4명이 소카툰구를 비공식으로 방문하였다.

 일행은 김포공항으로 갔다. 김포공항국제선에서 비행기에 올라 센양시로 날아갔다. 센양 공항을 하늘에서 내려다보니 장관이었다. 공항이 평지에 시설되어 있는데 네모반듯하게 설치되었고, 주변에는 산이라고는 없다. 광대무변의 대평원 가운데 오로지 동그마니 비행장〔飛機場〕만 있었다.

 공항 수하물에서 짐을 찾아 나왔다. 소카툰구 경제국에서 기사와 직원이 나와서 영접해 주었다. 도심으로 들어 오자말자 점심시간이었다. 중국은 우리나라보다 1시간 늦다. 중국에서 첫 식사시간이었다. 중국에서는 공산주의라는 명목으로 기사와 같은 자리에서 똑같이 식사를 하였다. 기사는 동석은 하되 술은 마실 수가 없다고 하였다.

 소카툰구 직원과 낮 시간부터 당시 59도 술을 사이다 컵에 부어라 마셔라하였다. 중국술은 곡주穀酒라서 이튿날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고 한다. 물론 내일이 되어 보아야 증명이 될 터고, 당장 오늘 많이 취하고 말았다.

 술이 취한 상태에서 센양시 서탑西塔거리에 있는 정창正昌(조선족이 운영 하는 곳)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요녕일보 김기자는 여행기간 내내 동행하기로 하였고, 기자를 하면서 술집을 하고 있었다. 한일韓一식당이었다. 우리가 대학에서 왔다고 하니까, 1997년 수교된 지 얼마 안 되었다. 우리 화폐가치가 대단하였다. 100위안이 우리 돈 1만원이었다.

 그날 센양 서탑거리 한일식당에서 59도 술을 또 계속 마셔댔다. 낮부터 계속 사이다 컵에 마시다가 저녁에 또 마셨다. 밤 11시가 되어서 나는 드디어 뻗어 버렸다. 중국 술집은 24시간 영업을 한다고 한다. 그 식당에 아가씨만 16명이 있었다. 술을 먹다가 뻗어 버리니까, 아가씨 대기방의 바닥에 뉘여 두었다. 좁은 방에 아가씨들 11명이 내가 술이 깨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모두 새카만 눈동자 22개가 나를 들여다보고 있었다니 기가 찼다. 겨우 새벽 1시에 잠도 깨고, 술도 깨서 눈을 뜨니 이런 상황이었다. 이런 창피가 어디 있단 말인가?

 그래도 다시 새벽 1시가 넘어서 정신을 차리고 나니 정말 감쪽같이 술이 다 깨버렸다. 곡주는 정말 희한하였다. 속도 깨끗하였다. 다시 방에 들어 새벽 5시까지 마시고 호텔로 갔다. 중국에 온 첫날부터 상당히 신고식을 치르고 있었다.

 2일차에는 공식행사가 있어 8시에 일어나 세수를 하고 호텔에서 조식을 마치니 9시이었다. 오후에는 우리를 초청한 주임을 만나야 한다. 간밤의 술로 인하여 오전은 그대로 쉬었고, 오후가 조금 지나서 약속된 소카툰구 경제주임을 만났다. 구의 일반 현황과 설명을 듣고 하니 시간이 꽤 흘렀다. 이른 저녁시간이 되면서 식사 겸 술자리를 만들겠다고 하였다.

조선족(사장 金蔚×)이 경영하는 88산장으로 갔다. 주인이 순부들이하게 생겼다. 조선족이니 통역도 필요 없었고, 내가 여쭤 보았다.

“성함에 우리나라 지명인 울자(蔚字)가 들어 있나요?”

“선생님! 제 부친의 고향이 경남 울산이라서 비록 외국에 살지라도 아버지께서 고향을 잊지 말라는 뜻으로 울 자를 넣었답니다.”

 그날 저녁 일행은 우리 넷과 요녕일보 기자와 경제국에서 주임, 과장 둘 등 7명이 저녁 8시부터 먹고 마시고 노래방을 사용하였다. 새벽 1시가 되어서야 마쳤다. 밥값, 술값, 노래방값 모두 금액이 800위안이었다. 그러자 경제주임이 비싸다고 50% 디스카운터해서 400위안으로 계산을 끝내버렸다. 주인 김사장은 울상이 되어 버렸다. 경제주임이 물가를 몰라도 한참 모르는 사람이었는지 모르겠다.

 어찌하여야 하나? 우리 일행 넷과 조선족 과장과 요녕일보 김기자, 한족漢族주임 등을 포함해서 7명과 아가씨 7명 등 14명이 함께 밥 먹고 마시고 잘 놀았는데 파트너 아가씨들에게 팁은 우리가 주어야겠다고 생각하고 네 사람이 추렴하였다.

 7명의 아가씨 팁은 현금 일만 원짜리 일곱 장을 주었다. 당시 중국에서 일반 직장인 월급이 200위안인데 개인당 팁이 100위안씩이니 하루 밤 일(먹고 마시고 노래하고 놀고 하면서)에 반 달치 봉급이었다. 아가씨들은 무척 좋아하였다. 조선족 사장만 손해를 보게 되었다. 모두가 외국에서 술 마신 원죄로다. 󰃁

(푸른 숲/20100-20130506.)

출처 : 푸른 숲/20100
글쓴이 : 62seonsang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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