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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성인)푸른 숲 수필가·20100/청림수필집·술은 술술 잘 넘어가고

[스크랩] (푸른 숲 제7 수필집)술은 술술 잘 넘어가고-16.둔갑한 맥주마시고 맴맴

신작수필

16. 둔갑한 맥주마시고 맴맴

이 영백

cafe.daum.net/purnsup

 

 당시 월성군 G초교는 집에서 학교까지 1,5km정도다. 걷기도 조금 힘들고, 연구보따리를 들고 다니려니 자전거가 꼭 필요하였다. 자전거점에서 헌 자전거를 3,000원에 주고 사서 기름칠을 하고, 닦고, 조이고, 씻어서 반쯤 새 자전거를 만들어서 도시락을 싣고 끈으로 꽁꽁 묶어서 출근을 한다.

 감포(甘浦)시장 입구 네거리에 오면 꼭 들리는 곳이 있다. 간밤에 과음으로 인하여 거북한 속을 달래려고 J약국에 들린다. J약국장은 고등학교 선배였다. 약국 앞에 자전거를 세우고, 약국으로 들어가면 용케도 알아차린다.

“이 선생! 간밤에 술 퍼 마셨지?”

“아닙니다. 속이 좀 거북해서 예비로 약 좀 사려고 들렸습니다.”

사실은 너무 많이 마셨는데 현실에서는 사실을 부정하고픈 것이 인간이기 때문이다.

“내가 딱 보면 아는데 뭐, 젊다고 함부로 술 퍼마시면 안 되지. 술 이제 버려. 내가 이제껏 살아 온 경험담이지.”

“선배님도? 언제. 제가 술 마신다고 합디까?”

“술? 술 마신게 아니라, 아예 들이 부었지 뭐. 지나고 보이 나도 다 후회스럽더라. 그런데 그러면서도 사실 나도 잘 안 되더라고. 그래, 탈나고 후회하지 말고 미리 준비하라고.”

“그렇습니까? 안 먹으려고 해도 사실 마치고 나오면 기다렸다가 잡아 가는데요?”

“허허허. 그것 봐라.”

“예. 아침부터 술 얘기하다가 약사는 것을 잊었습니다. 약 빨리 주이소.”

 술 이제 그만 먹어야 하는데 이를 어쩌나. 매일 저녁 일곱 시에 일을 마치고 교문을 나서면 교문 바로 옆에 학부형집이 있어서 동학년 주임이 기다렸다가 내가 자전거를 몰고 가는 소릴 듣고서는 그냥 통과를 못하게 한다.

 조금 지나면 교감선생님, 덩달아 5학년 주임선생님, 이렇게 차례로 모이다 보면 학부형도 함께 오게 된다. 처음에는 막걸리로부터 시작하다가 차츰 술기운이 오르면 비싼 술인 맥주로 옮겨 가는 것이었다. 맥주 한 병이면 막걸리 두 되하고도 10원이 남는 시절이었다.

 어쩌다 초임에서부터 술을 배운 것이 이제는 말술이 되어 가고 있다. G초교에서는 술 먹는 저변이 매우 넓었다. 우선 주당(酒黨)들이 많았다. 술꾼에서 주당, 주당에서 주선(酒仙)까지 올라가는 사람들이었다.

 모임도 많아서 여러 모임에 다 속하게 되었다. 나는 홀쭉하다고 홀쭉한 사람끼리 월(月)요일에 만나는 홀쭉이파에 속하였다. 대다수 주임들이 뚱뚱하였다. 뚱뚱이파에는 학력을 올리기 때문에 꼭 함께 화(火)요일에 모임이 있다. 또 처자·총각이 모이는 처총파가 있었다. 나는 처총파 고문으로 수(水)요일에 참가하게 되었다. K교감선생님을 포함하여 고향 K고등학교 선·후배가 목(木)요일에 모임으로 K고등학교파, 금(金)요일에는 동학년 협의회가 열리는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토(土)요일에는 교대 졸업생들의 모임으로 교대파가 있었다. 이제 일요일에는 쉬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였다. 동학년 주임선생님과 K교감선생님께서 아침부터 내가 살고 있는 소바짐으로 찾아 드는 것이었다.

 월요일은 홀쭉이파 7명, 화요일에는 뚱뚱이파 8명, 수요일에는 처총파 9명, 목요일에는 K고등학교파 11명, 금요일에는 동학년협의회에 교장, 교감 선생님을 포함하여 6명, 토요일에는 교대파 12명 일요일에는 자칭 막강파 3명 등 술을 매일 퍼 마신다. 나로서도 살아남을까 의심이 간다. 모임이 중복되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전체 집합 속에서 술 취한 원소(元素)로 존재할 뿐이었다. 스스로 교집합, 차집합, 여집합을 만들고 있을 뿐이다.

 이 월화수목금토일 각 파 속에서 제일 무서운 파가 처총파이다. 처자, 총각 8명하고 고문인 나하고 9명이 수(水)요일을 획 하나 더 긋고, 주(酒)요일로 만들고 만다. 초저녁에는 처자 여선생님도 같이 술을 먹다가 견디지 못하고 모두가 도망을 가 버리면 이제 술 본방꾼이 남아 자취방을 찾아가서 술 뿌리를 뽑고 있다. 병당 70원 붉은색 맥주병을 자꾸 비운다. 남자 총각선생 네 명과 고문 한 명인 나와 함께 붉은 수수밭도 아니고 붉은 맥주병을 자꾸 빈병으로 만든다. 기어이 붉은색을 더 연하게 만든다. 방의 네 귀퉁이에다 바깥부터 세워서 한 돌금, 두 돌금, 세 돌금을 돌려 두면 어지간한 술꾼도 넘어지고 만다. 나도 넘어지고, 가장 술이 세고 나보다 나이가 더 든 제주도 총각 O선생도 넘어진다.

 동해(東海)에 해 뜨는 새벽 다섯 시가 되면 그래도 술에서 깨는 사람이 있다. 바로 가장 술이 센 제주도 총각 O선생이다. 나도 함께 깨어서 내가 누워 있는 동안에 열심히 작업(?)을 한다. 화장실에 가지 않고, 빈병 붉은색 맥주병마다 소변으로 채우고 있다. 한 병, 두 병, 세 병 아니 밤새껏 먹은 맥주로 이제는 새로운 맥주로 둔갑시킨다.

 늦게 잠에서 깬 젊은 선생들이 목이 말라 간밤에 먹다 남은 맥주병을 들고 마신다. 제주도 O선생이 새벽에 만든(?) 오줌맥주를 들고 마신다. 세상에 이런 일이 있나? 당연히 맥주인 줄 알고 둔갑한 맥주병 들고 갈증을 해소한다. 둔갑한 맥주 마시고 맴맴. 󰃁

(푸른 숲/20100-20130417.)

출처 : 푸른 숲/20100
글쓴이 : 62seonsang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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