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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성인)푸른 숲 수필가·20100/청림수필집·술은 술술 잘 넘어가고

[스크랩] (푸른 숲 제7 수필집)술은 술술 잘 넘어가고-17.추어탕과 술

신작수필

17. 추어탕과 술

이 영백

cafe.daum.net/purnsup

 

 월성군 G초등학교에 근무하면서 해마다 연례행사가 4월이면 과학의 달로 교사들로서는 매우 귀찮아하는 달이기도 하다. 과학의 달로 벌어지는 행사다. 금년에도 어김없이 교육청에서 공문이 왔다. 나는 연구보조 업무에 빠져 있었기 때문에 금년에는 자료전, 과학전에 불참하려고 가만히 있었다. 입소문이 빠른지 과학주임께서 먼저 알고 나의 교실을 찾아 왔다.

“이선생! 듣자하니 영일군교육청 산하에서 자료를 제출하여 상도 많이 받았다는데 우리학교에서는 해마다 아무도 제출하지 않아서 매년 과학주임으로서 매우 곤혹스럽습니다. 올해는 이선생 아이디어로 나를 도와 줄 수 없겠습니까?”

“어찌 저에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저는 올해 교장선생님 특명으로 학력 올리기에 급급합니다.”

“그렇지요. 잘 알고 있습니다. 이를 어쩐다나?”

“얼른 들은 얘기로는 5학년 K·O 두 선생님께서 과학전에 관심을 보이고 주제를 벌써 선정한 것이 있는 줄 알고 있습니다. 저는 계획서나 결과 보고서 쓰는 것은 도와 드릴 수는 있겠습니다.”

“두 분 선생님께서 참가 하신다면 꼭 좀 도와주십시오. 나 좀 살려 주십시오.”

 나는 입막음으로 살짝 정보만 흘렸는데 마치 과학전에 참가 하듯이 인사치례를 하니 송구스러웠다. K과학 주임은 A사범학교 출신으로 중등준교사 영어를 취득하였고, 그동안 초등에 눌러 있었다. 그날 저녁에 과학 주임교사의 쪽지로 인하여 코가 비뚤어지도록 술을 마셨다.

이튿날 휴무시간에 우연히 5학년 O, K 두 선생들이 나를 찾았다.

“이선생, 금년에 과학전에 꼭 참가해 보려고 합니다. 계획서를 어떻게 씁니까?”

“계획서가 아주 중요합니다. 과학전은 데이터처리 등 결과보고서도 격식이 있으니 그것만 알려 드리겠습니다. 계획서 양식부터 봅시다.”

가만히 두면 모두 알아서 할 것을, 또 학력향상에 내 코가 석자인데도 과학전까지 발을 들여 놓고 있는 중이었다.

“O, K 두 선생은 주제를 무엇으로 선택하셨습니까?”

“오래 전부터 생각했는데, 미꾸라지를 이용한 추어탕(鰍魚湯)을 만들려고 합니다. 야외에서 언제나 간편하게 끓여 먹을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싶습니다.”

“아이템은 매우 좋습니다. 조금만 더 얘기를 해 보십시오.”

“일단 미꾸라지를 잘 선택하여, 적당한 수분까지 건조하고, 미리 포장해 둘 것이며, 양념은 라면의 스프처럼 준비하는데 가루도 있을 것이고, 일부는 푸성귀를 말려서 넣어야 합니다.”

“방법은 모두 나와 있네요. 또 다른 말씀이 있습니까?”

“더는 없는데 걱정입니다. 추어탕의 맛 기준으로 가설에 따라 추어탕을 끓이고 양념을 넣었을 때, 맛있는 추어탕이 나올 런지요?”

“그것은 앞으로 해 보아야 알겠습니다. 아이템은 상당히 좋습니다. 과학전만이 아니고, 일반상품으로 만들어도 좋겠습니다.”

“그래∼예.”

“누구의 아이템입니까?”

“예, 제가 먼저 생각하였습니다.”

“아니, O선생님! 그러시면 안 되지요?”

벌써부터 과학전에 국무총리 상(과학전 최고상이 국무총리상이다.)이라도 받을 것처럼 서로 자기가 먼저 생각한 이이템이라고 주장한다.

“알았습니다. 아직 계획서도 안 썼으면서, 벌써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출품하여 결과를 기다려 보아야 합니다. 같이 생각하셨다면 열심히 노력하여야 할 겁니다.”

“알았습니다. 아이템이 괜찮다면 더욱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그날도 O, K 두 선생의 쪽지를 받고 코가 붉어지도록 술을 마셨다. O선생은 고향이 제주도로 뭍으로 나온 선생님이었고, 연배는 나보다 많았는데 아직 총각선생이다. K선생님은 의성 사람이었고 준교사자격으로 초교교사를 하면서 연배도 나보다 많고 결혼을 하였다.

 토요일 오후가 되면 두 O, K선생을 따라 대구까지 가서 추어탕전문점에 들러 맛을 보고 양념을 조사하였다. 들어간 양념이 무엇인가를 알아서 다시 돌아 와 그 맛에 맞는 양념을 기록하여 두었다. 이후 포항에도, 경주에도, 울산에도 추어탕 맛 조사를 계속 다녀야 했다. 나는 덩달아 따라 다니면서 추어탕 맛을 보아 기준을 만드는데 보탰다. 덩달아 술도 마셔댔다.

 또 미꾸라지 양어장을 직접 들러 조사하였다. 크기별로 사다가 말려서 건조하여 두고, 일부는 양념과 섞어서 추어탕 끓이는 실험이 매일 활발하였다. 양어장을 들리고서는 어울려 또 술을 먹었다.

 계획서도 제출하여 통과하였고, 예선으로 경주시교육청 과학전부터 출품을 하였다. 과학전에 출품하려면 결과보고서를 전지 두 장에다가 차트를 작성·제출하여야 했다.

차트글씨는 내가 맡았다. 아이스크림을 먹고 나면, 그 속에 예쁜 손잡이 나무가 남는다. 그 나무 끝을 칼로 얇게 빚어서 마치 펜처럼 글씨 크기에 따라 폭을 결정하여 큰 글씨, 중간 글씨, 작은 글씨를 고딕체로 쓸 수 있다.

 결과보고서를 전지 두 장에 배치하여 밤을 새어 완성하였다. 보고서는 인쇄소에 가서 100부를 인쇄하였다. 물론 내 이름은 없었지만, 불모지 G초등학교에 드디어 과학전 출품이라니 그 당시로는 대단한 일이었다.

 결과는 지역에서 우수상을 받았고, 또 경상북도과학전에서도 우수상을 받았다.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서울 중앙과학전에 출품이 되지 못하였다. 이유는 미꾸라지 건조에 있었다. 습기를 과학적으로 처리하지 못한데 대해 일반상품이 어렵고, 아이템은 정말 좋다고 과학전심사위원들로부터 전원 극찬을 받았다는 것이다. 일반상품으로는 연구를 더 하여야 한다는 것에 일치하였다.

 두 O, K선생님께는 대단히 미안하였다. 총각인 O선생에게는 정말로 혼신을 다 하였다. 좋은 결과 나왔으면 ‘이것으로 사업을 하고, 선생도 그만 둔다.’는 말씀까지 하였다.

 G초교에서 과학전 참가는 두 O, K선생께 두 장의 우수상장을 손에 쥐게 하였을 뿐이었다. 교장, 교감선생님, 과학주임은 매우 고마워 해 주셨기에 내가 더욱 황감할 뿐이었다.

 이런 결과라도 O, K 두 선생의 생각이 바뀌었는지 내가 그동안 따라 다니고 함께해 주어서 고맙다는 쪽지를 받고 또 그날 밤에 술을 왕창 먹어서 붉은 코가 더욱 붉게 되어 버렸다.

 이것을 거울삼는 것은 불모지 과학전 출품에 읍소재지 학교이면서 한 번도 제출하지 않았다는 것은 교사의 직무유기다. 아니,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내지 못해서 항상 회의 때마다 과학주임께서 얼굴을 들지 못하였다는데 1978년에 G초등학교에서는 상당한 학교 점수와 개인 두 선생님의 노력 덕택으로 교육청 장학사로부터도 칭찬을 받았다.

 K과학 주임은 당시 모 고등학교 영어교사로 가시게 되었다. 당시 교사들 중에는 중등에 발령을 받지 못해서 초등에 머문 선생님들이 참 많았던 것이다.

 농촌에서 술안주가 없으면 추어탕으로 최고의 안주이었다. 무엇보다 추어탕은 소화가 잘 되어 술과 추어탕은 안성맞춤이었다. 추어탕과 술은 뗄 수가 없는 함수관계다. 추어탕과 술로서 그 해 과학전의 가치를 추구했는지는 지금도 의문이다. 󰃁

(푸른 숲/20100-20130418.)

출처 : 푸른 숲/20100
글쓴이 : 62seonsang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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