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수필 |
14. 숙질간에 고향 술집에서
이 영백
cafe.daum.net/purnsup
교사발령을 받고, 3년을 근무하면서 추석 전일에 고향에 들리게 되었다. 가는 날이 불국사장날이었다. 결혼을 하였기에 혹시나 싶어 중형 집에 갔다. 한 살 아래인 조카가 벌써 왔는가 싶어서 말이다. 그 조카는 울산에 살았기에 일찍 와 있었다. 중형과 형수님께 인사하고 나왔다.
“작은 아버지! 술 한 잔 하러 가입시더.”
“그래. 어디 갈까?”
“오늘 마침 장날이네요. 장에 가지 뭐…….”
“그래. 나도 선생하면서 느는 것은 술 뿐 이제. 술 한 잔 하지.”
오랜만에 숙질간으로 불국사공설시장 입구로 들어갔다. 입구부터 여러 점포가 있는데 제일 오른쪽 첫 집 앞에 의자를 내어 놓고 추석 전일이지만 대목이라고 전을 부치고 술을 팔고 있었다. 우리도 자리에 앉았다.
“삼촌! 무슨 술 먹을래?”
“그래 나는 소주도 좋고, 탁주도 좋고 무슨 술이라도 괜찮다.”
“그러면 마아, 정종(正宗)을 먹지.”
“그래. 정종도 좋지. 그런데 정종은 깰 때 머리가 아플 텐데.”
“마아, 묵아 보입시더.”
“그래.”
숙질간에 정종 한 됫병을 시렁에서 내려놓고, 전을 안주 삼아 마시기 시작하였다.
“그래. 조카는 요즘 어떻게 돈을 버는데?”
“내는 배운 게 건축자재 장사하는 것뿐이지요.”
“시멘트를 주로하고, 철재 등 부속들이겠네.”
“그렇지요. 시멘트가 재미있지요.”
“아무래도 그렇겠지.”
“자! 한 잔!”
“그래. 자! 한 잔! 우리 너무 많이 마시는 것 아닌가?”
“뭐, 이제 호부 정종 두 됫병인데. 이 까짓것.”
“아니 벌써 두 됫병이나 마셨네. 이제 고만 먹지.”
나는 조카와 함께 술을 먹으면서도 은근히 술이 세다고 자랑은 하지만 걱정이 앞섰다. 본래 술에 자신이 있다고 하지만 술에는 항우장사가 없는 법이다. 술이란 놈은 눈이 아주 밝아서 사람에게 잘 취하게 만드는 기술이 있다. 술 백번 주의하여도 나쁠 건 없다. 정말 술로서 망한 사람들이 많다. 실수를 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술을 많이 먹으면 자기 소변도 제대로 가리지 못한 경우도 있단다.
술은 먹을 때는 좋지만 술을 먹고 난 뒤부터는 책임을 지지 못하는 인사들이 너무나 많다. 이제 사회생활 초년생이지만 술에 대하여서는 어느 정도 이해하고, 주사(酒邪)도 부려 보아 온 터이기도 하다. 술은 되도록이면 자만하지 말고, 적당히 줄일 줄도 알아야한다. 아무래도 오늘 조카가 세게 마시고 있다. 정종 한 됫병을 부어 놓으면 그 양이 대단할 것이다. 이 많은 양의 술을 먹고 잘 견디면 술에 대한 대단한 힘이 있을 것이고, 그렇지 못하다면 분명히 술이 센 것이 아니고 약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조카가 벌써부터 자꾸 술을 당기고, 욕심내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내일 아침 차례를 지내야 하는데 이건 아니었다.
“자! 오늘 그만 먹자. 정종 두 됫병이면 됐다. 고만! 이제 고만.”
“아니, 아니, 아직 멀었어 예. 그러면 한 됫병만 더 먹어 봅시다!”
“안 될 텐데. 그 먹는 거야 별 문제냐? 돈 더 주면 되고……. 그러면 먹자! 먹어”
우리 둘은 또 두 됫병을 더 먹었다. 숙질간에 정종 네 됫병을 먹었으니 큰일이었다. 자꾸 더 먹자는 조카를 말려 억지로 집으로 데려왔다. 아마도 사업이 힘든 모양이었다.
나는 백형 집에서 잠을 잤다. 아침이 되어 일찍 일어나서 세수하고, 종백씨 댁으로 갔다. 그런데 중형 집에 큰 조카가 오지를 않는다. 어제 내가 그랬지. 많이 먹으면 안 된다고 말이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데 아니 이놈이 오지를 않네.
“야야! 무슨 술을 그리 많이 먹게 놔 두었노?”
중형이 나에게 나무람을 하고 있다.
“아니, 같이 먹었는데. 젊은 사람이 그것(?) 먹고 못 일어나노?”
“그래. 같이 먹었다며. 가∼는 그리 취해 있더노? 취해도 너무 많이 췠더구마는.”
중형은 평생에 술 한 잔도 못 드셔 보아서 술 먹는 사람을 아주 괴물처럼 보는 것이다.
“그렇습니다. 같이 먹었는데, 나는 멀쩡하게 일찍 일어나 왔는데요.”
하하하. 그 놈, 어제 나에게 그렇게 큰 소리 치고서는 술도 참 약하네. 하기는 정종 네 되를 먹었다면 우리 중형은 까무러쳤을 것이다. 중형은 평생에 술을 입에 대지도 못하고 사셨으니까 말이다. 술 먹는 사람을 어찌 이해하겠는가?
술 마시는 요령이 없지. 나처럼 생수를 두고 수시로 부어 같이 먹었으면 해결 되는데. 그걸 아직 몰랐지. 그런데 어째 질부 보기가 민망하여서 어쩌누. 허, 참 그 술 때문에, 정종 대병 네 되 때문에.
(푸른 숲/20100-2013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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