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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성인)푸른 숲 수필가·20100/청림수필집·술은 술술 잘 넘어가고

[스크랩] (푸른 숲 제7 수필집)술은 술술 잘 넘어가고-13.당직과 폭탄주

신작수필

13. 당직과 폭탄주

이 영백

cafe.daum.net/purnsup

 

 계절이 변하면서 낙엽이 모두 떨어지고 스산한 바람이 불어오는 초겨울이 시작 되었다. 산골이면서 바람이 차면서 더욱 쓸쓸하다. 교사 생활을 하면서 살아 왔고, 또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것이다.

 1976년 영일군교육청에서 두 번째 N초등학교로 근무하게 되었다. 바닷가 초임학교는 등 넘어 바로 곁이다. 산속이라서 바다가 안 보이지만 공비들로 불안한 것은 이 산속이나 바닷가나 매 일반이었다. 이승복의“나는 공산당이 싫어요.”처럼 밤이면 암흑천지고, 누가 잡아 죽여도 모를 이런 곳에서 숙직을 한다. 교사는 교사이기 전에 공무원으로 국가 재산을 지켜야 한다. 당직이다. 낮에도 1주일간 주번교사가 되어야 하고, 밤에는 교장, 교감, 여교사를 제외하고 남자 교사면 모두가 윤번제로 숙직을 하여야 한다. 남자교사들은 더욱 힘이 든다.

 앞으로 전쟁은 없어져야 한다. 전쟁, 참 무서운 단어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대비정규전 지역인 바닷가에서는 해병대 사령부로부터 자주 군 헬기가 날아다니고, 정찰비행기가 공중에서 정찰하고 있다. 간첩이 출몰한다는 동해안, 경계가 부쩍 심각하였다. 일상생활에서도 포항 시내를 나가려면 검문소에서 항상 병사가 총을 들고 검문을 한다.

 오늘은 내가 당직이다. 밤에 지키는 숙직이다. 오늘따라 날씨는 점점 싸늘해지다가 기어코 눈이 내린다.

펄펄 눈이 옵니다. /바람타고 눈이 옵니다.

하늘나라 선녀님들이 /송이송이 하얀 솜을

자꾸 자꾸 뿌려줍니다./자꾸 자꾸 뿌려줍니다.

 모두가 떠나가고 학교 전체가 조용한 곳에서 하얀 눈이 나려서 소복이 쌓이고 있다. 오르간에 나도 모르게 동요(“눈”)를 한 곡 치고 나니 속이 후련해진다. 학교 주변에는 집 한 채도 없는 고요 속의 무서움이 있는 적막의 공간이다. 토요일에는 숙직도 혼자 한다. 고용원아저씨도 집으로 가고 없는 날이다. 적막의 공간에서 오르간을 치면서 눈이 오는 것에 나도 모르게 흥분되는 감동을 느끼고 있었다.

 밤이 온다. 어둠사리가 내렸다. 그런대도 별로 어둡지 아니하다. 밖이 훤하면서 자꾸 흰 눈만 내려 쌓인다. 어디선가 구두 발자국, 군화발자국 소리가 들려온다. 이제 더욱 크게 들린다. 한 번 둘러보지 않을 수 없었다. 교문 쪽으로 나가니까 마침 군인 두 명이 오고 있었다.

“충성! 당직 선생님이십니까?”

“그렇습니다. 눈 오는 겨울밤에 왜 학교를 찾으십니까?”

“잠깐 들러 말씀 드려도 되겠습니까?”

 사실상은 두려웠다. 갑자기 군인 두 명이 나타나서 학교에 들어오겠다니 겁도 났다. 그렇지만 엄연한 대한민국 군인으로 정복을 입고 그러니 사정은 알아야겠기에 대문을 열어 주고 허락하였다.

“들어오십시오.”

 교무실로 가서 전깃불을 밝혔다.

“사실 오늘 저녁 군부대 작전이 있습니다. 정확히 20:10에 귀교 복도를 빌려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장교용 교실 하나도 내어 주십시오. 밖에서는 눈이 오는지라 눈을 피할 장소를 마련하여야 합니다. 저녁만 먹고 갑니다. 청소는 병사들이 본래대로 해 놓겠습니다. 교실은 좀 안쪽으로 병사와 떨어진 곳이면 좋겠습니다. 허가하여 주십시오.”

“제가 당직입니다만, 오늘은 고용원도 없어서 학교를 비울 수도 없고 교장선생님께 허가도 받지 않고서는 어렵습니다. 사정이 사정인지라 흔적도 없이 청소를 해 주신다니 (간도 크게)그렇게 하겠습니다. 혹시 소란스러우면 제가 곤란합니다.”

“소란은 걱정하지 말아 주십시오. 작전 중이므로 정숙보행(靜肅步行)에‘고요의 작전’입니다. 시간에 맞춰 꼭 올 것입니다. 병사를 위해 교문만 열어 두시고, 교실 하나만 제공하여 주시면 됩니다.”

“알았습니다.”

 나는 겁도 없이 내 직권으로 덜컥 허가를 해 주고 말았다. 물론 흔적도 없이 정리를 해 준다니 별 탈이야 없겠지 하는 믿음도 작용하였다. 만일에 사고가 발생하면 나는 징계를 각오하여야한다. 허락한 뒤에도 내 마음 속에서는 많은 갈등이 일어나고 있었다.

 ‘교장선생님께 알릴 것을 잘못했나? 소심하신 교장선생님도 나와야 할 것이고, 그러면 매우 번거로워질 것이다. 내가 판단을 잘한 것이다.’이런 번뇌가 나의 머리를 아프게 했다. 벌써 허락을 이미 하였고, 군인 두 명이 교문 밖을 나가 버렸다. 결정은 끝났다. 제발 아무 사고 없이 조용히 지나가 주기만을 마음속으로 바랄 뿐이었다.

 시간이 되어 후동 복도문과 교실 한 칸을 열어 두었다. 어디서 그렇게 많은 군인들이 들어오는지 끝없이 들어 왔다. 당시 춥고 눈이 오고 있는데, 내가 결정한 것이 정말 잘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숙직실 정 위치에서 당직수행을 하고 있었다. 당시 시골학교에는 전화도 없었고, 비상연락망을 통해 전통(傳統)을 가지고 다니던 시대이었다.

“충성! 선생님! 작전본부에서 좀 오시랍니다.”

“예? 저는 당직을 서야 합니다. 못갑니다.”

“예! 알아보고 다시 오겠습니다.”

 조금 있으니까, 다시 병사 두 명을 데리고 연락병이 왔다.

“선생님! 당직실은 병사 두 명이 섭니다. 같이 갑시다. 본부에서 꼭 모시고 오시랍니다.”

 참 난감하였다. 당직실을 병사 두 명이 대신 서 준다기에 어쩔 수 없이 또 따라나섰다. 교실에 불이 환히 켜지고, 교실 전기가 아니고 가지고 온 랜턴으로 불을 밝히고 있었다. 교실에는 정방형으로 책상을 모아서 제일 가운데 연대장인 대령이 앉아 있고 그 옆자리에 내 자리를 비어 두었다. 오른쪽으로 중령, 소령, 대위 등 참모진이, 반대편에는 눈까지 반짝 빛나는 중·소위들의 자리를 만들어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선생님, 오늘 병사들에게 자리를 내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가져온 것으로 함께 식사를 합시다. 술도 한 잔 합시다.”

“아니, 저는 저녁을 이미 하였습니다.”

“그래요. 그러면 여기 과일안주와 통닭으로 한 잔 합시다!”

 모두가 둘러 앉아 건배를 하면서 저녁식사를 잘들 하고 있었다. 나는 얼떨떨한 김에 덩달아 한 잔을 받아 마셨다. 맥주에 양주를 탄 폭탄주(爆彈酒)이었다. 아니 나도 이렇게 4년차 교사를 하면서 술에 엔간히 먹었지만, 폭탄주는 처음이었다. 물론 이유는 있었다. 작전 중이고 밤이라 춥고 그렇다고 여느 직장인처럼 시간이 많아서 오랜 시간을 할애하여 마음 놓고 술을 먹을 수가 없으니 짧은 시간에 빨리 취하여야 하는 폭탄주를 제조 한다고 덧붙여 설명을 하여 주었다.

 나는 생전 처음으로 폭탄주를 먹고 폭탄을 맞았다. 속이 후끈 달아 오르고 울컥하였다. 말은 들었지만 폭탄주를 내가 먹다니? 당시로서는 양주도 비싸서 서민들이야 어디 양주를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비싼 양주를 맥주에 태워서 폭탄주로 먹게 되었다. 나도 놀라고 말았다.

나는 술도 오르고 근무자로서 자리를 비켜 주었다. 혹시나 해서 상황이 상황인지라 자리를 피해 주고 복도로 나가 보았다. 병사들이 푸른 제복을 입고 겨울 밤, 눈 내린 밤에 작전을 한다. 모두가 애국심으로 나라와 국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다. 병사들이 저녁식사를 시작하고 있다. 교실 복도 6개를 연이은 마룻바닥에 앉아서 조용하게 숟가락 소리만 달그락거렸다.

나는 당직실로 가서 경계근무를 하는 병사들을 해제하고 그들도 저녁을 먹게 하였다. 한참이 지나자 연락병이 또 왔다.

“충성! 오늘 잘 사용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연대장님께서 당직 선생님께 드리는 선물입니다. 모쪼록 약소하지만 받아 주십시오.”

“주시지 않아도 됩니다.”

“그래도 받아 주십시오, 연대장님께서 꼭 전달을 당부하셨습니다. 감사해 하였습니다. 복도청소는 병사들이 처음과 같이 해두고 갑니다. 걱정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모두 나가고 나면 교문을 잠가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충성!”

 모두가 바람같이 왔다가 흔적도 없이 그 많은 병사들이 사라졌다. 마치 내가 무엇에 홀린 것처럼 한편으로는 조금 이상하였다. 교실 문을 잠그고, 교문을 닫아걸고서 숙직실로 와 보니 통닭 두 마리만 달랑 숙직실에 모셔져 있었다. 만약에 이 통닭이 없었다면 나는 마치 귀신에 홀린 것이라 하여야 할 것이다.

 토요일! 첫눈 오던 날 당직하면서 우리나라 국군에게서 양주가 섞인 폭탄주와 통닭을 얻어먹다니 대한민국 초등학교 교사로서 당직하다가 이런 횡재도 하다니? 나 원 참! 󰃁

(푸른 숲/20100-20130414.)

출처 : 푸른 숲/2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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