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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성인)푸른 숲 수필가·20100/청림수필집·내 고향이 그리운 것은

[스크랩] 푸른 숲/20100 수필1집 "내 고향이 그리운 것은"-(48)땔나무하기

신작수필

48. 땔나무하기

이영백

cheonglim03@hanmail.net

 

 나는 나무를 하러 다니는 나무꾼이다. 아니 “선녀와 나무꾼”이다. 시골에서 땔나무〔柴薪〕한다는 말은 난방용이거나 취사용이거나 불을 때려면 그 재료인 나무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나무를 베거나, 자르거나, 긁어모아서 집으로 가져오는 것을 ‘땔나무 한다.’라고 한다.

 당시 우리 집에는 나무꾼이 참 많았다. 숙형(叔兄)과 큰 머슴은 먼 산으로 가서 나무를 해 온다. 해 오는 나무는 주로 “물걸이”다. 물걸이는 조금 굵은 나무들이 섞인 통째로 나무를 베어 묶어오는 것이었다. 물론 이도 마르관면 난방용으로는 최고이었다.

 이제 계형(季兄)과 중 머슴은 조금 먼 산에 가서 “아찰이”를 베어 싣고 온다. 아찰이란 가는 마른 나무 가지들을 잘라 모아서 이를 취사용으로는 불길이 세고 난방용으로 적격이다. 사실상 이런 나무를 구하기는 힘이 좀 든다.

 이제 나와 작은 머슴은 우리 집에서 1km 떨어진 우리 산으로 가서 갈비(소나무)도 끌고, 낙엽(활엽수)도 긁어모아 오는 것이다. 갈비는 그야말로 고급땔감이다. 소나무에 솔잎이 떨어져서 바싹 마르면 좋은 것만 갈퀴로 긁어모아 온 것이 갈비가 된다. 좋은 갈비는 색깔이 아주 붉다. 갈비가 소나무에서 떨어진지 얼마 안 되는 것은 색깔이 아직 노랗다. 특히 갈비는 불을 때면 연기조차 나지 않으며 고급땔감 종류에 속하는 것이다. 낙엽(落葉)은 그야말로 반 거름상태이거나 마른 것은 외양간에 거름용으로 넣거나, 허드레 방에 군불로 땔 때 사용되기도 한다.

 정말로 좋은 땔감으로는 소나무 엽지(葉枝)를 가려서 말려 놓은 것이다. 이것은“소깝”이라 한다. 당시는 소나무 엽지라도 영림서에 걸리면 벌금을 하는 것이었다. 당시 해방 되고 또 6·25전쟁이 터지고 사회가 불안 할 때 자유(自由)라고 해서 산에 나무를 마음대로 모두 베어 버렸기에 산이 민둥산으로 온통 벌거숭이가 되고 말았다. 그래서 이후로는 법적으로 소나무 관리가 매우 엄격하였다. 현실적으로 누가 밤낮으로 지킨단 말인가?

아버지는 머리를 쓰셨다. 우리 집은 당시 식구도 많았고, 관리하여야 하는 방 즉, 사람이 기거(起居)하는 방에는 난방을 하여야 하기 때문에 1년간 화목(火木)이 상당히 필요하였다. 큰방, 머리방, 사랑방, 토방, 머슴방, 누이방 등, 방 마다 군불을 때려면 난방용 땔감이 얼마나 필요할 것인가 말이다.

 바로 아버지는 이를 해결하는 방법을 다 알고 계셨다. 겉으로는 숙형과 큰 머슴이 먼 산에서 나무를 해 오고, 계형과 중 머슴이 조금 먼 산에서 나무를 해 오지만 이는 외양간에 쇠죽 끓이는 것만으로도 부족하다. 그러면 일반 방에 땔감으로는 무엇을 준비하여야 하는가?

 늦가을이나 초겨울에 우리 집 남정네를 모두 동원하고, 마을에 사는 젊은이들을 품삯을 주고서라도 저녁 먹고 밤에 모이도록 한다. 그리고 계획적으로 우리 산이 가까이 있으니까, 밤에 모두 낫과 끄나풀을 가지고 산으로 간다. 적당히 소나무 엽지를 쪄낸다. 그것을 모두 단으로 묶어 두는 것까지 한다. 또 1주일이 지나 밤에 동원하여 그 소깝을 이동하여 집으로 가져 온다.

 이미 가을걷이를 하여 짚이 지천으로 늘려 있다. 그래서 이 짚을 뒤 곁에 먼저 바깥으로 쌓고 안쪽에 소깝을 넣어 모두 짚으로 덮어씌우고 만다. 지나가는 사람 누가 보아도 소깝은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영림서에서 조사를 집집마다 다녀도 먼 산에서 해 온 것이거나 우리 어린 것들이 긁어모은 낙엽만 뒹굴고 있을 뿐이었다.

 1960년대까지만 하여도 시골에서는 아직 화목으로 난방을 하였고, 도시에서는 난방용으로 연탄을 때었지만 시골에서는 당시까지 상상도 못하고 살았던 것이다. 1년 동안 화목을 사용한 것을 모두 모아두면 태산이 되었을 것이다. 얼마나 나무가 중요한 땔감인가 그 시대상으로는 말이다.

 요즘은 시골이라도 연탄에서 이제 전기를 사용하고 있어서 땔감이 필요 없게 되었다. 그래도 웬만한 화목거가 있어도 나무를 가져가려고 하지 않는다.

 지금 머리를 쳐들고 산을 한 번 보라. 어디에도 갈비나 낙엽을 긁어가지 않는다. 그냥 그대로 푹 쌓여 있어서 발목이 푹푹 빠진다. 여기서 산의 나무 긁기에 대한 작은 이야기가 있다. 과거에는 난방용으로 낙엽까지 모두 긁어가서 비가 오면 한편으로 홍수가 난다고 했는데, 이젠 홍수가 문제가 아니고 산 흙에 물이 머금어 있지를 못하여 거꾸로 수원(水原)에 물이 없어서 물의 부족을 부른다고 한다. 이론상 산에 낙엽을 긁지 말라고 할 때는 그것이 맞아 떨어졌는데 역설적으로 이제는 나무 밑에 낙엽이 많아서 웬만한 비가와도 산 흙에 물이 베이지 않는다고 한다. 산 흙에 물을 안 머금는다는 것은 곧 가뭄을 만들고 아니 물의 원천인 산에서 물이 흘러내리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옛날에는 나무는 적었지만 산에 낙엽이 없어서 우선 눈에 띄게 홍수가 난다지만, 이젠 그렇지 않다는 이론이다. 낙엽 때문에 지표수를 만들지 못하니 산골짜기마다 졸졸 산골물이 흘러나오던 것이 낙엽이 너무 많아서, 낙엽이 물을 모두 흡수해 버려서, 산 흙에 물을 안기지 못하니 산골짜기가 마른 산골짜기가 되고 만다. 이러면 안 된다. 사람은 물을 먹고 사는데 빗물을 낙엽이 모두 먹는다니 이것을 누가 해결 할 것인가?

 경북 영양군에서는 낙엽을 주민들이 긁어모아 오면 그것으로 무기질 비료를 만들고 주민들에게 포상금까지 주어서 일거양득으로 물이 흙으로 머금어 수원을 만들게 된다고 한다. 누가 이를 빨리 해결 해 주어야 산골짜기 물이 졸졸 흐르는 계곡이야기를 할 수가 있을 것이다.

 옛날에는 나무를 너무 많이 해가서 홍수가 났지만, 이제는 하도 나뭇잎을 안 긁어 가니까 낙엽이 빗물을 모두 먹어 치워서 산골짜기가 마르고 만다. 그러면 사람도 물을 못 먹고 마르고 말 것이다. 이를 급히 해결하여야 사람이 산다. 아니 우리 후손들이 산다.

( 푸른 숲/20100-2012.11.18.)

출처 : 푸른 숲/20100
글쓴이 : 62seonsang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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