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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성인)푸른 숲 수필가·20100/청림수필집·내 고향이 그리운 것은

[스크랩] 푸른 숲/20100 수필1집 "내 고향이 그리운 것은"-(46)아까징끼

신작수필

46. 아까징끼

이영백

cheonglim03@hanmail.net

 

 세상의 동물 중에 가축으로 소〔牛〕가 있다. 소는 우리 농촌에서 없어서는 안 될 가축이다. 소는 인간에게 충직(忠直)하다. 나는 소와 관련하여 상당히 위험한 경우를 당했다. 내가 초등학교 4학년 때이었다.

 어느 가을 날 아버지는 집 앞 보리밭에 흙덩이를 부수어서 고랑에 덮어 주는 것이었다. 아버지께서“끙게”에 돌을 얹어서 황소가 끄는 작업을 하고 계셨다.

 집 앞에 놀고 있는 나를 불렀다. 이 끙게에 나를 앉으라는 것이었다. 돌을 얹어 끄니까 밭 끝자락에 오면서 사람의 힘으로 끙게를 돌려야 하므로 힘이 많이 들었다. 돌 대신에 아이가 앉아서 끝자락에 와서, 아이가 내리면 빈 끙게를 답삭 들어 방향 전환만 하면 되기 때문에 힘이 안 들고 참 편리한 것이었다. 그래서 아버지의 요구에 따라 끙게에 돌을 내린 자리에 돌 대신에 내가 앉았다. 그래서 호시를 타는 재미가 솔솔 났다. 밭의 긴 사래를 온통 내가 타고 가니 호사하였다. 긴 사래를 가고 오니 즐거웠다. 그러나 단지 먼지가 일어서 내 코를 막히게 하였다. 그러는 사이에 우물 곁 끝자락 가까이에 와서 내가 빨리 내려야 하는데, 주춤 거리는 바람에 황소가 그만 뒷발로 나의 콧잔등을 차 버렸다.

 나는 순간에 얼굴에 번쩍하는 불기운을 보고서는 기절하여 버렸다. 이제 아버지 차례이었다. 차이면서 넘어지고, 나는 정신을 잃어 버렸다. 그러자 내가 죽은 것으로 알고, 아버지는 곧장 사랑채로 안고 가서 큰방에 계시는 어머니를 불러 약을 가져 오라고 소리쳤다고 한다. 나는 안기어 가는 동안에도 마치 시뻘건 불기둥 속 블랙홀로 지나는 것 같았다. 시골에 무슨 상비약이 있으랴.

 시골에서 벤데 바르는 것쯤으로 알고 있는 머큐로크롬(Mercurochrome)은 일명 빨간 약 또는 아까징끼로 불리었던 소독약뿐이었다. 막내아들이 기절을 해 버렸으니 무슨 생각이 더 날 수가 있을까? 약이라고 가져 온 것은 제법 양이 많은 병째 빨간 약 뿐이었다. 그 약은 소독용인데 급하시니까 내 작은 얼굴에다가 온통 모두 쏟아 부어 버렸다.

 나는 꿈을 꾸고 있듯이 그냥 가사상태(假死狀態)가 되었다가 소독약 빨간약이 얼굴에 쏟아지니까 차가워서 제 풀에 깨어나게 되었단다. 그리고 숨이 막혔다가 아니 충치가 막혔다가 그때야 ‘으악!’하고 숨이 터졌단다.

 아니 이게 무엇인가? 세상에 황소 뒤 발바닥으로 차이고 충치가 막혔다가 빨간 약 한 병을 다 들이붓고 깬 것이 일련의 과정이었다. 그 때에야 으깨어져 버린 콧속이 쑤시고 아파왔다. 그러나 당시 농촌에서 병원은 멀고, 아예 돈 들고 하니 병원을 갈 생각도 없었다. 그냥 두면 낫는다고 나를 방치(放置)하고 말았다. 그래도 육안으로 보아 용케 크게 다치지 않았고, 얼굴만 온통 빨간 얼굴로 만들어 주었다.

 그래도 학교는 갔다. 친구들이 “아까징끼”라고 막 놀려댔다. 그렇지 않아도 4학년에 올라가서 이 가을에 학예회가 있는데 합창단에 내가 키가 작아서 제일 앞줄에 서서 발표를 하여야 하는데, 담임선생님께서 안 되겠다고 합창단에 나오지 말라고 했다. 집에 돌아와서 아직 덜 나은 얼굴에 찬물로 씻고, 작은 돌멩이를 가지고 빨간약 흔적을 지우기 위해 자꾸 문질러 댔다. 아픈 코는 나를 원망하겠지. 그러나 기회가 어떤 기회인가 내가 이를 놓치고 싶지 아니하였다. 자꾸 문지르니까 콧속이 어떻게 되겠는가? 그래도 오직 일념으로 얼굴에 붉은 색을 지우기 위해 계속 문질러 댔다. 물로 자꾸 씻었다. 3일간이나 씻어 대니까 이제 조금 빨간색이 사라지기 시작하였다. 첫째 줄에 못 서고 키가 작아도 둘째 줄에 서서 조금 묻혀서 겨우 합창단은 그래도 참가하였다.

 4학년 때 담임 이상×선생님은 더욱 못 잊는다. 특히 2학년 때 담임도 하셨고, 나의 그림 그리는 실력을 자주 칭찬하여 주셨다. 선생님도 그림을 잘 그리셨다. 선생님 댁에는 여동생이 우리와 같은 학년이었고, 역전에서 기념품 만드는 부업을 하셨다.

 한참을 지나는 동안 황소 근처도 가기 싫었다. 단지 암소만 몰고 다니면서 풀을 먹이기만 할 뿐이었다. 그런데 그 황소는 모두가 겁을 내는 황소이었다. 우리 집에서 최고로 날뛰는 소가 되고 말았다. 심지어 숙형(叔兄)께서는 아버지께 동생을 찬 황소를 팔아 버리자고 하였다. 그래도 아버지는 그 황소를 제일 좋아하셨다. 왜냐하면 조금 날뛰기는 하지만 무논을 갈 때는 힘이 최고이었으며, 우리 집 구루마를 끌 때는 꼭 그 황소만 부렸다. 그 무거운 짐을 태산같이 싣고도 끄떡없이 잘 끌기 때문이었다. 그런 충직한 황소를 아버지께서 팔 리 만무하였다. 아버지는 다른 소는 아무 외양간에다 매어도 그 황소는 꼭 사랑채 부엌에 딸린 제일 따스한 곳 외양간에 들이었다. 게다가 사랑채 새문을 열고서 항상 황소의 건강을 체크 하면서 잘 먹고, 꼭 건강하라고 이른다.

 나도 시간이 지나면서 비록 내 코를 뒷발로 찼지만 그 황소를 좋아하게 되었다. 그 많은 짐들을 싣고 매일 활동하여도 건강 하나만은 대단한 정말 황소고집으로 건강하였다. 그리고 우리 큰 머슴도 그 황소를 제일 좋아하였다. 나도 저절로 아버지, 큰 머슴을 따라 그 황소를 좋아하게 되고 말았다.

 사실 그 황소가 잘못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단지 내가 빨리 피하지 못한 나의 잘못이 크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동물은 가까이 사람이 있으면 마치 자기를 해(害)하려는 것으로 착각하여 자기방어(自己防禦)를 하려고 한 것뿐이었다. 정말 그날 황소는 내가 뒤에 가까이 있으니까 자기방어를 위해 뒷발을 차게 된 것 뿐이라고 속삭인다. 그 황소는 잘못이 없다. 그것은 내가 대변(代辯)하여 줄 것이다.

 나는 그래서 지금까지도 콧속이 잘 헌다. 지금도 조금 무리하거나 건조하는 겨울이 오면 양쪽 콧속이 모두 잘 헌다. 피곤하거나 하면 더욱 콧속이 건질 거리고 아프다. 그리고 피가 비치 인다. 오십오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초등학교 모임에 가면 그 황소의 덕택으로 별명이 “아까징끼”로 기억되고 있었고, 아직도 콧속이 특히 추워지면 더욱 아파온다. 황소야 고맙다. 나에게 별명을 붙여 주었고, 평생 콧속이 헐어 아프게 해 주어서 너를 잊지 못한다. 고마워, 아까징끼야!

( 푸른 숲/20100-2012.11.16.)

출처 : 푸른 숲/20100
글쓴이 : 62seonsang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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