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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서수필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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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서수필 5) 또천달 형산강 8. 소낙비 엽서수필 5 : 또 천 년의 달빛 흐르는 형산강 8. 소낙비 이영백 하루 일기를 보고 다녀야 낭패를 보지 않는다. 그래서 일찍부터 “남자는 돈, 우산, 선의의 거짓말을 가지고 다녀라.”고 하였다. 양반은 비록 소낙비가 내려도 뛰지를 아니하였다. 후줄근히 비 맞고 양반걸음으로 걷는다. 강변 사람들은 농사지으면서 물 귀한 줄 안다. 비는 어찌 내리는가? 태양의 뜨거운 열기를 모아, 모아서 대류(對流)가 되면 열기는 공중으로 오른다. 하늘에 오르면 수증기가 방울방울 모여서 무게를 더한다. 비다. 여름날 들판열기가 더하고 농부가 일하는데 후줄근히 비라도 내렸으면 기대한다. 매우 후덥지근하다. 농부는 시원하게 한 줄기 비라도 내려 주면 아픈 허리 펴고 좀 쉴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들판의 많은 농부들이 간절히..
(엽서수필 5) 또천달 형산강 7. 섶 다리 엽서수필 5 : 또 천 년의 달빛 흐르는 형산강 7. 섶 다리 이영백 영주에는 무섬다리, 주천에는 섶 다리, 예천 회룡포에는 뿅뿅다리 등이 있다. 일찍부터 내가 살던 고향에서도 남천 상류 시래천을 건너다니는 사람들에게 불편을 주었다. 아버지는 동네사람들을 모아서 섶 다리를 놓았다. 섶 다리 누구나 신발 안 벗고도 건너다니는 다리이다. 누렁이 황소가 중뱅이 논들로 갈 때도 건너다니는 정다운 다리다. 고향의 섶 다리도 처음부터 그렇게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사람들이 늘 물을 건너다녀야 하는 곳이므로 강돌을 모아 징검다리 위로 건너다녔다. 그러나 태풍 때 대홍수가 지나가면 강돌 징검다리는 힘없이 물에 떠내려가고 없다. 강돌은 흔적조차 없고 강물을 신발 벗고 또 건너야만 하였다. 목수인 아버지는 동네사람들과 군..
(엽서수필 5) 또천달 형산강 6. 여름 논매기 엽서수필 5 : 또 천 년의 달빛 흐르는 형산강 6. 여름 논매기 이영백 논농사 짓는 사람들은 논매기에 곤혹스럽다. 논매기는 첫 벌, 두 벌, 세 벌, 네 벌 매기로 나뉜다. 모를 심어 놓고 뿌리가 활착하는 것을 “사람 한다.”고 한다. 이때 첫 벌 매기는 가장 중요하다. 모내기 때 잘 못 심은 것은 삼일 내에 바로 꽂아 주어야 한다. 금방 자란 작은 풀도 제거한다. 두 벌 매기는 제법 풀이 자랄 때다. 풀은 벼가 자라는데 방해가 되기에 논을 매 준다. 벼가 잘 자라도록 시비(施肥)한 것에 뿌리를 북돋아 주워야 한다. 두 벌 매기는 일꾼들이 매우 힘들어 한다. 벼가 제법 자라 올랐기에 논매는 사람들의 맨팔에 벼가 실 킨다. 그 실 킨 살갗이 따갑다. 세 벌 매기는 사람이 허리 굽혀 엎디지 않고 반자동기계..
(엽서수필 5) 또천달 형산강 5. 봄 논갈이 엽서수필 5 : 또 천 년의 달빛 흐르는 형산강 5. 봄 논갈이 이영백 겨우내 살얼음이 얼어 도랑의 물밑으로만 돌돌돌 강물이 흐른다. 형산강 남천 상류 시래천변에도 그러하겠지만 보에서 흐르는 작은 도랑에도 살얼음 밑으로 차가운 도랑물이 흐른다. 그 도랑물이 녹을 시점이 다가온다. 경칩(驚蟄)이면 개구리 입 떨어진다. 살얼음 녹아내린다. 개구리가 봄 맞아 활동하기 시작하는 계절이다. 봄이다. 시래천변 거랑물이 졸졸졸 흐른다. 살얼음이 걷히고, 삼짇날이면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온다. 시골집 처마마다 새로 찾아온 제비들이 무어라 재잘거린다. 소한들 너른 들판에 저마다 주인들이 봄 논갈이를 시작한다. 얼룩소 울음 들린다. 농부의 혀 차는 소리에 그 말을 소가 용케 알아듣는다. 제비가 집집마다 찾아들어 집짓기 시..
(엽서수필 5) 또천달 형산강 4. 중보 천수답 엽서수필 5 : 또 천 년의 달빛 흐르는 형산강 4. 중보 천수답 이영백 그때는 농사를 지으려면 보를 막아서 필요할 때 물을 이용한다. 보만들 때 분담금을 내었어도 한해(旱害)에는 보원(洑員)이 물 사용할 수 있어서 아주 큰 힘이 된다. 그러나 하늘에서 내린 비를 가두는데 돈 쓸 수 없다하여 보원이 안 되면 날 가물 때는 울음보를 터뜨릴 수밖에 없다. 다른 논에는 날이 가물어도 물을 잘 대는데 우리 집 천수답은 물구하기가 어려웠다. 날이 가물면 식구마다 밤새워 물대기에 동원되어야 한다. 아니면 이튿날 뜨거운 태양아래 메말라가는 벼 포기 보기가 민망하다. 형산강 남천 상류 지류 시래천에 물 모아 놓은 보가 많다. 상보, 중보, 하보, 용마래보, 소한보, 보칠보, 새보 등이 그것이다. 내가 어렸을 때 살았던..
(엽서수필 5) 또천달 형산강 3. 동해남부선 기적소리 엽서수필 5 : 또 천 년의 달빛 흐르는 형산강 3. 동해남부선의 기적소리 이영백 기적소리는 새벽 네 시 첫 기차가 부산을 향해 가면서 왼〔原〕고개를 올라가는 소리다. 동해남부선은 2021년 12월 28일로 폐역이 될 줄은 그때까지는 아무도 몰랐다. 봄ㆍ가을에는 정기기차뿐만 아니고, 임시열차가 전국 국민수학여행단으로 오는 곳이라 많이 시끌벅적도 하였다. 동해남부선 불국사기차역(최초 역명 “소정”역)은 1918년 11월 1일부터 영업을 시작하였으니 폐역 되기까지 103년간 그 영화를 누리었다. 정기 기차는 불국사기차역에서 관광객을 실어 날랐다. 또 한복입고 나들이 하는 사람 외에도 일상 옷 걸치고 장사하려는 부산, 울산, 경주, 포항 등지에서 오가는 장사치들도 무척이나 많았다. 덩달아 전국에서 관광이나 수..
(엽서수필 5) 또천달 형산강 2. 형산강 지류 시래천 엽서수필 5 : 또 천 년의 달빛 흐르는 형산강 2. 형산강 지류 시래천 이영백 강은 본류만 있는 것이 아니다. 많은 지류(支流)가 모여야 강이 된다. 형산강에도 지류가 무수히 많다. 그 중에 내가 태어난 지류는 남천의 상류인 시래천(時來川)이다. 흔히 시골에서는 “시래 거랑”이라 한다. 우리 고유어 거랑이라는 말이 왠지 좋다. 그 시래 거랑에서 물로 마시고, 목욕하고, 그 물에 첨벙이며 건너고, 어린 날을 보내고 자랐다. 거랑의 양편 둑에는 물 넘치는 것을 막으려고 튼튼하게 제방이 쌓아있다. 방천 둑에는 둑 밑으로 수양(垂楊)나무가 도랑 쪽으로 길게 머리카락처럼 드리우고, 아래로 자라고 있다. 금모래, 은모래가 그 수양나무 밑 그늘에 뽀얗게 모여 있어서 어른들이 일하다 한낮 시간에 쉰다. 수양나무는 멀..
(엽서수필 5) 또천달 형산강 제1부 인생, 강으로 시작이다 1. 형산강발원지 엽서수필 5 : 또 천 년의 달빛 흐르는 형산강 제1부 인생, 강으로 시작이다 1. 형산강발원지 이영백 강에는 저마다 발원지가 있다. 발원지는 시작에서 끝이 바다에 닿는 거리가 가장 긴 곳을 “발원지(發源地)”라 한다. 그러면 형산강의 발원지는 어디인가? 서로 자기 동네 사는 곳이 발원지라고 주장하고 있다. 형산강발원지는 울산광역시 울주군 두서면 내와리 백운산 탑골샘(62.2km)이라고 한다. 그러나 강의 길이가 긴 것으로 치면 요즘 경주에서 가을이면 은행나무군락지인 경북 경주시 서면 도리의 인내산(忍耐山)이라(63.95km)고 한다. 결론은 길이로 봐서 도리 인내산이 발원지라 부르는 것이 맞다. 형산강은 경주에서 시작하여 포항으로 흘러 바다로 간다. 신라 말에 홍수가 너무 자주 나서 물길 내려고 형제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