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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서수필 5/또천달 형산강

(엽서수필 5) 또천달 형산강 86. 신라의 달빛, 경주의 달빛

엽서수필 5 : 년의 빛 흐르는 형산강

86. 신라의 달빛, 경주의 달빛

이영백

 

 신라달밤의 달빛은 다르다. 신월성 옛터에 밤 피리소리나면 울컥 향수에 젖고 만다. 하물며 그 소리에 풀벌레도 합창한다. 신라의 달빛을 느끼려면 경주로 오시오! 신라의 달빛이 곧 경주달빛이니까. 함께 소곤거리는 신라 야사(野史) 들으며 하늘의 별 개수를 헤아린다. 월정교 딛고 건너면 죽어 신이 사는 곳인 남산 오르는 “왕의 길”이다. 그곳 경주 달빛도 좋다.

 태어난 곳 동해남부선 불국사기차역에서 부산으로 향하던 신호대 마을, 시래리 동사마을 330번지다. 그곳은 아버지, 어머니의 사랑으로 내가 열 번째로 세상의 빛을 보았다. 전기도 안 들어오고 오로지 하늘의 달빛이 비춰 주던 그런 시절에 살았다. 밤하늘 은하수 별들이 모인다. 마실 나선다.

 저녁 한 술 뜨고 토함산 동녘을 바라보면 개밥별이 반짝인다. 불국사, 석굴암 올라가는 자동차 불빛이 도깨비불처럼 서른세 굽이 토함산 오르는 불빛이다. 마음으로 뒤 따라 간다. 별 찾으러 간다. 경주 달빛이 좋다.

 신라 선인들이 살았던 고장! 네 번째 집으로 이사하였다. 목수인 아버지의 은혜로 같은 마실에서 네 번째 집으로 이사 갔다. 그곳은 울룩배미 새보다. 일곱 살 때부터 억지스럽고, 울고 싶었던 나의 학창기를 보낸 곳이다. 아버지의 교육철학으로 까딱 했으면 “하늘 천, 따지”만 배웠을 뻔하였다. 천자문, 동몽선습, 계몽편, 소학, 명심보감, 통감, 대학 등 한문책 이름을 들어보았는가? 살면서 모두 잊은 그 문장을 달빛에서 다시 찾는다.

 눈 내린 논벌 소한들 논바닥에는 벼의 그루터기만 남은 흔적이다. 전기 없던 시대에 형설지공(螢雪之功)으로 학창기를 보내었다. 그곳이 왠지 지금에 와서야 더욱 좋다. 그곳은 남이 농장한다. 그곳에 들리면 닭 쫓던 개가 된다. 달빛 보고 개가 짖는다. 혹 나그네를 양상군자로 보는가?

 신라의 달빛, 경주의 달빛은 뇌리에서 떠나지 못하고 산다. 산그늘 내린 고향을 다가간다. 산그늘 길게 드리워지고, 불국사 저녁예불 종소리가 귓전을 때린다. 아흔 넘은 둘째 형수님 집에 들려본다. 움직이는데 조금 힘드시지만 막내 대련 왔다고 무언가 덥히어낸다. 그 정성이 달빛에 빛난다.

 밝은 전깃불에 익숙하여 흐릿한 달빛의 고마움을 잘 모르고 사는 현대인들이다. 조금 어둑하면 어떤가? 화려하지 않은 덜 밝은 달빛에 글 읽는다. 아마도 그날은 먼 신라시대달빛을 경주의 달빛으로 가져 오지 않았을까?

(20220821.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