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엽서수필 5/또천달 형산강

(엽서수필 5) 또천달 형산강 83. 대학입학예비고사

 

엽서수필 5 : 년의 빛 흐르는 형산강

83. 대학입학예비고사

이영백

 

 “아버지 하지 말라”는 공부이지만 의지를 꺾지 못하였다. 1970년 12월에 1971학년도 제3회 대학입학예비고사 치르려 경주역에서 대구까지 기차를 탔다. 그때는 예비고사를 치러야 대학(교)에 본고사칠 자격을 얻었다.

 예비고사제도란 1969년부터 초급 대학ㆍ4년제 대학교과 2ㆍ5년제 전문학교가 있던 시절이다. 대학(교)을 가려면 예비고사에 합격하여야 한다. 물론 전문학교는 예비고사를 치를 필요가 없다. 예비고사제도는 대학 모집정원의 150%만 합격증을 발부해 준다. 저절로 대학진학예정자 수를 추려버리는 제도이다. 예비고사에 떨어지면 전문학교는 갈 수 있다.

 인문계고등학교 졸업반에 오르면 예비고사 준비를 부지런히 하여야 한다. 시험 치는 장소는 경북 대구시다. 기차타고 모량천을 지나 건천천을 따라 영천 넘어 대구역에 내렸다. 대구역에 내려 99원짜리 정식은 삼환식당에서 사 먹고 중앙통을 걸어서 삼덕로터리 대구상고 운동장에 갔다. 곁에 있던 사대 부고는 내일 시험 칠 교실로 확인하고, 삼덕동 소재 여관에 들었다.

 여관방에 여남 명씩 들었다. 누가 피곤하다고 박카스를 나눠주었다. 주는데 너무 고마워서 마셨다. 큰일 났다. 말똥말똥 밤새 잠이 오지 않았다. 박카스의 카페인 효과다. 덕택에 요약 수학공식, 물리공식을 잘 보았다. 그것은 참 이로웠다. 이튿날 그 공식들이 오롯이 나왔다.

 아침에 늦잠자고 2층 창문을 열고 보니 그곳이 “대구교도소(삼덕동)”앞이다. 면회하려는 분들이 우산 쓰고 기다리는 것이 창 너머로 보였다.

 우리 집에서는 예비고사를 치는지, 소 말둑을 박는지도 몰랐다. 도시는 확실히 도시다. 후배들이 모여들어 시험장 교문 앞에 도열하여 선배들이 시험 잘 치도록 응원하여 주고 있었다. 우리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아무튼 고마웠다. 수험표를 확인하고 2층 목조교실 시험장에 들어갔다.

 공부하고 관문을 통과하려면 그 시절 그때는 “대학입학예비고사”를 반드시 치러야 한다. 한 달이 지나 예비고사합격증을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교부받았다. 희비쌍곡선이 터졌다. 인문고 인문계열로 반만 통과하였다.

 그러나 또 대학(교) 본고사를 준비하여야 한다. 교육대학진학이라 전 과목(국어, 수학, 영어, 사회, 과학, 음악, 미술, 체육, 선택=농업 등)을 치렀다. 산 넘고, 강물도 건너야 사람이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20220816. 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