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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서수필 5/또천달 형산강

(엽서수필 5) 또천달 형산강 82. 경주고속버스터미널

엽서수필 5 : 년의 빛 흐르는 형산강

82. 경주고속버스터미널

이영백

 

 경주고속버스터미널은 1972년부터 영업하였다. 경주시외버스터미널 가는 길에 있다. 예전에 바쁠 때는 시외버스 배차시간이 짧아 시외버스정류장을 이용 하고, 시간이 느긋하면 고속버스터미널을 이용하였다. 참 아이러니하다. 바쁘면 시외버스터미널, 느긋하면 고속버스터미널이 맞는가?

 경주고속버스터미널하면 나에게 생각나게 하는 것이 결혼관계로 2층 커피숍이다. 1974년 2월 9일 토요일 불국사 장날이다. 중매쟁이는 경주여상 K교장선생님이다. 영일군에 교사할 때 토요일 오후에 우리 집으로 찾아온다기에 정신이 하나도 없이 부리나케 준비하여도 무척 바빠졌다.

 그때 농촌의 환경은 말이 아니다. 어머니가 계신 큰형님 집으로 예비 장모와 처자가 함께 온다하였다. 마을입구 우물 있는 곳에서 동네아주머니와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고, 정작 큰형님 집에는 모친만 잠깐 인사하고 나오고 말았다. 시골의 환경으로 보면 그럴 수밖에 없다. 그러나 결혼하여 그곳에 살 곳도 아니다. 당황하여 보자기에 중고시절 앨범과 교대 졸업앨범, 대학시절 개인사진집 등 세 권을 황급히 사서 뒤 따랐다.

 불국사기차역 앞은 소한들 논뿐이다. 대학 1학년 때 직접 유치한 경주여상을 구경한다기에 논둑길 걸어가면서 소개하였다. 일곱 살부터 살았던 옛 초가를 지나 못 둑에서 학교만 보고 돌아간다고 하여 역전으로 올라왔다.

 삼십 리 길 시내버스에서도 좌불안석이다. 별 뾰족한 이야기도 없이 경주시내에 닿아 박물관, 동궁과 월지, 반월성, 첨성대, 팔우정로터리, 경주역전을 거쳐 경주고속버스터미널까지 와 하차하였다.

 대구행 고속표 두 장을 사고 보니 시간이 남았다. 2층 커피숍으로 올라갔다. 경주가 아무리 관광지라도 시골이라 어쩔 수 없다. 그래도 이런저런 이야기로 시간이 흘렀다. 고속버스가 출발하려는 시간에 내려갔다. 무겁게 들고 다니던 앨범 세 권을 전하였다. 나의 지난 생활을 봐달라는 뜻이다.

 경주고속버스터미널은 지금도 별반 달라진 것이 없다. 나중에 알았지만 앨범 세 권 때문에 결혼하게 된 사연이 다소라도 있긴 하였다고 생각한다.

 경주고속버스터미널은 인생을 시작하는 계기를 주었다. 결혼하고, 급히 대구를 가려고 하면 표가 없다. 초교 여자동기가 동양고속의 매표원이라 예비좌석으로 끊어줘서 시간을 단축할 수도 있었다. 이것도 애환이다.

(20220814.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