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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서수필 5/또천달 형산강

(엽서수필 5) 또천달 형산강 88. 신월성의 달빛

 

엽서수필 5 : 년의 빛 흐르는 형산강

88. 신월성의 달빛

이영백

 

 고향이었으면서도 깊이 헤아리지 못함에 부끄럽다. 흔히 고향이라고 “신월성”을 “반월성”으로만 부르고 살았다. 무식하면 용감하다. 신라 사람들은 저네들 살던 곳을 자랑 삼으려고 왕성 있던 곳이 초승달 닮았다고 “신월성(新月城)”이라 하였다. 고려를 지나 조선시대에 이르러 반달모양이라고 해서 “반월성(半月城)”이라 불렀다. 왜 이러한 사단이 났는가? 고유어 “초승달”을 한자어로 신월성이라 한다. 우리는 학교에서 무슨 역사를 배웠던가? 참 부끄럽다. 일상 앵무새 소리만 인식하였다.

 어디 그 뿐이랴! 경주가 고향이라고 자랑하다가 말을 잃었다. 신라시대 신월성에 “석빙고”가 있다고 자랑을 냅다하다가 막상 석빙고 앞에서 말문이 막혔다, 엄연히 신라문화재인 줄 알았는데 근세조선시대에 그것도 본래 있던 곳(서쪽 100m지점)이 아니라 옮겨다 놓았다고 하니 두 번 놀랐다. 경주사람이 경주에 대하여 깊이 알고 안내할 것이다. 아찔해 온다.

 뿐만 아니다. 그렇게 안압지라고 불러 대다가 어느 날 갑자기 왜 “월지(月池)”라 하는가? 왜 안압지로 그렇게 오래 불러야만 하였을까? 참 민낯이 되고 만다. 국사를 전공한 학자들은 옛 기록에 나와 있다는 것을 그리도 몰랐던가? 월지는 한자어다. 우리 고유어로는 “달 못”이다. 너무나 멋진 우리말이다. 월지보다 차라리 “달 못”으로 부르는 것은 어떨까.

 신월성을 무엇이라 소개할 것인가? 요즘 올라가 보니 펜스만 쳐 두고 발굴한다고 퍼런 천막들이 덮이어 있다. 누가 그랬다. 이 신월성을 발굴하려면 앞으로 40여 년이 걸린다고 하니 종심 넘은 이로는 말문이 막힌다.

 신월성 발굴내용을 구해보니 월정교 동쪽으로부터 A지구, B지구, 석빙고 앞이 C지구, 동쪽이 D지구라 한다. 특히 C지구(1~14구역)에서 레이드로 사전 조사한 결과 9구역이 대형 건물지, 7구역은 역삼각형 구조물, 8구역은 문지(門址), 10구역은 건물터와 문지의 실제로 확인하였다고 한다. 성급한 판단이지만 그 규모로 보아 “신월성궁”이었던 자리로 추측해 본다.

 부여에 들러보니 이미 사비궁궐과 능사 오층 목탑을 복원하여 두었다. 고향 경주는 백년하청인가? 밤중에 신월성 올라 교교한 달빛에 소름 돋는다. 그렇게 붓 들고 먼지만 떠실는지요?

 애달프다. 신라의 신월성궁 복원의 달빛이 고프다.

(20220825. 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