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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서수필 3/미늘

(엽서수필 3) 미늘 88. 백열전구를 추억하다

엽서수필3 : 일흔셋 삶의 변명 “미늘”

88. 백열전구를 추억하다

이영백

 

 세상은 늘 자기가 생각한 것보다 더 많이 급변하고 있다. 21세기가 되면서 전자제품은 급격한 변화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다. 또 전기라는 것도 내가 어렸을 때는 참 귀한 것이다. 왜냐하면 동네에 전기가 들어 온 해가 1971년 대학입학하려고 하던 해였다.

 우리 마을에 전기 넣으려고 고교 1학년(1968년) 때 동 대표와 함께 경주 한전회사에 갔다가 돈 내고 사 먹은 최초의 짜장면이 있다. 검은 색 음식을 보고 처음에는 무척 황당해하였다. 나도 어지간히 촌사람 이다.

 인류가 백열전구로 불 밝힌 것은 1879년 발명왕 에디슨과 영국의 조셉 윌슨 스완이 발명하였다. 우리나라는 1887년 경복궁에 최초로 도입된 이후 127년 만이다. 이제 2014년부터 백열전구의 생산과 수입이 전면 금지되었다. 에디슨 발명가에게는 미안하지만 백열전구가 새로운 광원기술(LED 등)로 등장하면서 더 이상 존재가치를 갖지 못하게 된 이유 때문이다. 이제 전기에너지의 95%를 열로 낭비하는 대표적 저효율조명기기이기도 한 백열전구는 국내시장에서 사실상 퇴출되었다.

 대학에 입학하고 우리 마을에 백열전구가 들어와서 외양간에도 불을 밝혔다. 아버지는 소가 잠들기에 너무 밝다는 것이다. 그동안 집에서 남폿불 밝히다가 100V, 100W짜리 백열전구는 눈이 너무 부신 것이 사실이다. 아버지에게 밝은 불은 제사 모실 때 촛불 두 자루 2촉짜리 켠 일 뿐이다.

 고교 다니던 시절 토방에서 공부하였다. 남폿불 밤새 켜 놓았으니 아침 세수할 때마다 시커먼 콧구멍 속 씻어내기도 바빴다. 불은 시력보호도 되겠지만 너무 어둡게 생활하여 시력을 떨어뜨렸는지도 모를 일이다.

 2014년 지방 매일신문에서 “백열전구 사용에 대한 추억의 글 모집”이 있었다. 네 번째 근무하였던 학교에 사과밭 지키는 방법으로 글을 썼다. “백열전구 네 개를 높은 버드나무에 매달아 두었다. 기능직 아저씨로부터 5분마다 스위치를 한 번씩 누르게 하여 사과 훔치러 오던 양상군자들을 혼비백산하게 만들었다”는 내용의 글이 실리기도 하였다.

 에디슨의 고마움도 130년으로 막 내리고 백열전구 사용을 못하게 된 것이다. 전기열효율을 95%줄이기는 너무 획기적으로 경제이윤이 너무 크다.

(20210722. 목. 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