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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서수필 3/미늘

(엽서수필 3) 미늘 87. 소한들 농경지정리

엽서수필3 : 일흔셋 삶의 변명 “미늘”

87. 소한들 농경지정리

이영백

 

 우리나라 최초 농경지정리를 한 곳은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안포리에 큰들〔大野〕인 “대야들”에 기념비를 세워두었기 때문에 안다. 예전에는 자기 논을 찾아가려고 해도 둑길에서 헤매어야 한다. 잘못하면 넘어져 구르기도 한다. 자연으로 생긴 논둑경계가 고불고불하기에 우회하여야 간다.

 불국사기차역 앞 경주분지에 속한 너른 들판을 “소한들”이라 부른다. 예전부터 아무리 날이 가물어도 물이 있어 논농사 짓기에 수월하였다. 그러나 논 값이 너무 비싸 많이 소유하지 못하는 것이 흠이다.

 우리 집 논은 소한들 몇 마지기를 제외하고서는 모두 천수답이다. 날 가물면 모내기를 못한다. 하지(夏至)까지 모 못 내면 조를 재배하여야 한다. 하지 지나 모 심으면 배동바지하지 못하여 낟알이 부실해지기 때문이다.

 한해나 홍수조절이 안 되어 예전에는 농사짓기가 아주 어려웠다. 혁명이 일어나고 논농사 짓기에 정부에서도 관심을 주었다. 그 본보기로 지역마다 저수지를 만들었다. 또 홍수방지를 위하여 흙 쌓고 견칫돌 짜서 방죽이 되었다. 급기야 고향에서도 소한들 농경지정리추진위원회가 만들어지고 눈치 빠른 사람이 위원장업무를 맡아 집행하였다.

 농경지정리를 하는 이유는 논둑과 묵지 등으로 경계에 소비되는 땅을 농지로 확보할 수 있다. 또 농지활용에서 농로개설과 기계화로 인하여 노력과 시간을 덜어 주는 아주 큰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저수지의 물을 관개(灌漑) 하는데 수로가 곧게 나서 물 활용도가 높아진다. 가장 중요한 것은 소규모 농에서 대규모 농으로 바뀔 수 있는 기계화로 현대화 영농이 이루어진다. 가장 중요한 것은 쌀 생산성 향상에 여러모로 도움이 된다는 것을 농민 스스로 깨달았기 때문이다.

 추진위가 구성되고 농경지정리 사업을 하는데 이상한 결과가 나왔다. 논둑이나 묵지들이 평지로 바뀌면서 추진위에서 생각지도 않은 농토면적이 확대된 것이다. 그것을 돈으로 환산하면 엄청났다. 이것을 위원장이 꿀꺽하려다 좋지 않은 밥 먹으러 갔다. 왜 농민들의 재산을 거저먹으려 하였든가? 공동이익으로 배분하여 주었으면 얼마나 좋아들 할 것인가?

 그렇게 사업을 관리한 결과로 얼굴 붉혔던 사람들이 지금도 생각난다.

(20210720. 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