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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서수필 2/4다마 계룡산

(엽서수필 2) 110. 나를 따르라

 

40년 만에 시 오른 을뒷산 계룡산

110. 나를 따르라

이영백

 

 나란 사람은 참 평범한 사람이다. 평범한 사람이 무슨 글 쓸 일이 있겠나? 그렇다. 평범한 사람은 글 쓰면 안 될까? 사람은 태어나면서 저절로 저 나름의 삶을 지향하고, 그 삶에서 자잘 못을 뉘우치며, 살았던 것을 정리할 수도 있어야 하겠기에 글을 쓴다. 설령 그것이 논픽션이든, 수필이든 간에 남겨야 하겠기에 글을 쓴다.

 조금의 글을 쓰면서 수필을 짓는다. 작가가 되었다. 좌충우돌 스스로 자학도 하며 글에 대한 분풀이처럼 밤낮 글을 써댔다. 공모전에도 제출하고 수상도 하여 보았다. 게다가 피나는 노력으로 국어를 전공한 모탕에서 수필 이론에 눈 떴다. 문학에서도 장르가 있지만 수필 한 분야에서도 작은 장르가 있다. 정격수필은 길다. 스스로 “엽서수필”운동을 제창하였다.

 정격수필은 200자 원고지 25~30장 정도로 길다(A4용지로도 13포인트 160 간격에 2장 반 전후). 그래서 처음 수필을 대하고 쓰려면 힘들어한다. 이를 조금 시대적 일탈도 하면서 정격수필을 변형하는 것을 고려한 것이다.

 수필의 이론상으로는 짧게 쓰는 수필을 장수필(掌隨筆)이라 분류하여 두었다. 그러나 아직 이것도 한정적 이론으로 인정 못 받고 사람들마다 분분하다. 서울에서는 단(短)수필. 부산에서는 짧은 수필, 나는 대구에서 “엽서(葉書)수필”이라 명명하고, 실제 그 실행으로 두 권을 집필하였다. 곧 세 번째 책 집필로 착수한다.

 엽서수필을 주창하는 것은 첫째, 시간을 절약하고, 둘째, 지면을 절약하고, 셋째, 긴 수필의 생각도 절약하려는 의도에서 주창하는 것이다. 짧은 수필이라고 해서 결코 그 내용이 호락호락하지 않다. 물론 수필 쓰기 구성에서 지켜야 할 것인 “서두-본론(화소)-반전-결론”을 거의 지켜가며 엽서수필을 쓰고 있다. 재주가 둔재지만 두 권의 엽서수필을 쓰면서 많은 것을 느꼈다. 책의 주제성을 강조하고 편마다 편 제목을 배치하고 한편의 제목을 미리 정하여 두어 시간 나는 대로 글을 완성하였다.

 엽서수필을 쓰기 위해 나를 따라 오면 저절로 닮아갈 수 있을 것이다. 비록 작은 생각에서 주창하는 운동이지만 나름대로 글을 발표하여 두면 짧은 시간에 읽어 주고, 공감하고 댓글까지 달아 줄 때는 기분이 참 좋아진다.

(20210204. 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