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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성인)푸른 숲 수필가·20100/늚이의 노래 1

(엽서수필) 66. 잉걸불을 쬐며

66. 잉걸불을 쬐며

이영백

 

 농촌에서 나고 자랐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가정연료가 중요하였다. 저녁 먹고 나서 전기도 없던 시절 초저녁잠이 들면 어느새 방이 싸늘해진다. 아버지 슬며시 일어나서 군불때러 나가신다. 밥하는 것도 아니요, 음식을 장만하려고 불 피우는 것도 아니다. 참 솥에 물 들이부어 물만 펄펄 끓인다. 오로지 추운 방바닥을 덥히려고 한 일이었다. 장작이 타 들어가면서 거대한 불꽃이 춤추며 마른 장작에 불이 붙어 뜨거운 잉걸불로 남는다.

 전근대 농사짓고 살던 가정에서는 연료가 거개 짚이었다. 짚은 짚단에 알맹이를 모두 떨어버리고 남은 소산물이다. 그런 짚을 연료로 사용하였다. 빗물이 들어가지 않도록 보관을 잘하여 두어야 했다. 그러나 세상살이에서 그러하듯 비를 맞아 축축한 짚으로 밥을 지으려면 셋째 누나는 눈물을 흘리어야만 하였다. 짚은 불을 피운 후면 곧 재가 되어 사그라진다.

 부잣집에서는 머슴을 고용하여 먼 산에서 아찰이라는 나무를 베어다 말려서 연료로 사용하였다. 뿐만 아니고, 벌목지에서 아름드리나무를 사다가 적당한 크기로 잘라 쌓아 둔다. 머슴들이 모탕에 받쳐 놓고 도끼질을 하여 불 때기 좋게 만든다. 이런 불을 지핀 후는 알불이 좀 남아있다.

 누가 그랬다. 추운 겨울에 밥은 굶어도 장작(長斫) 없이는 못 산다고 하였다. 곁들여 생소나무 엽지를 잘라 둔 소깝은 연료 중에 고급이었고 그래도 밭 둘레 잡목들을 베어다 두면 불기운이 좋아 연료로 사용하였다.

 시대가 지나면서 볏짚도 가공되어 수입이 되고, 법이 강화되어 산에 나무 베기도 어려워지면서 연탄이 보급되었다. 그리고 조금 지나면서 도시에서는 도시가스가 수급되었다. 현재는 전기로 사용하는 인덕션(Induction)레인지까지 나와 사용 중이다. 많은 가정연료 사용방법이 발전하여 갔다.

 21세기가 되면서 가정용 수소연료전지시스템이 도입된다고 한다. 이는 가스를 사용하여 전기를 만들며 다시 열로 변화하는 시스템이다. 19세기까지 짚, 나무, 연탄으로 사용하던 시절은 자꾸 먼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시골 저녁 소묘는 추위가 닥쳐오면 부엌마다 장작개비로 불을 피우고 그 이글거리는 불기운으로 가마솥에 밥이 되고 국이 끓었다. 심지어 설을 쐬기 위한 조청도 끓이며, 집마다 반찬으로 쓰일 두부 만들기에 잉걸불만큼 좋은 것이 없던 시절은 이제 전설처럼 느끼고 살 것이다.

 차마 우리 말 잉걸불이라는 어휘조차 모르고 살 것인가? 이제 텐트 속에 텐트가 있는 글램핑(Glamping)하면서 장작 태워 잉걸불을 만든다.

(20200606. 제65회 현충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