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차성인)푸른 숲 수필가·20100/늚이의 노래 1

(염서수필) 8. 눈 내리는 고향기차역, B역

8. 눈 내리는 고향기차역, B역

이영백


 지금은 그렇게 안 하고 산다. 요즘 너무 편리한 시대에 자가용을 타거나 시내버스 타고 고향에 갈 수 있다. 예전에는 즐겨 타던 것으로 기차뿐이었던 시대도 있었다. 물론 더 예전에는 시내버스도 없었다. 그런 세월을 거쳐 오는 동안에 이제는 기차를 잘 타지도 않고 살아간다.

 밤마다 첫새벽이 열린다. 새벽 네 시가 되면 고향에서는 두 군데 교회에서 종소리가 울렸다. 아울러 동해남부선 B기차역의 기적소리를 들으며 잠이 깨어서 부지런히 자기 삶을 챙기며 살았다. 그제 고향에 갔으면서도 그곳 기차역에 못 가봤다. 어린 날 고향 기차역에는 쥐방울처럼 자주 들락날락거렸다. 또 그곳을 통과하며 마음대로 지내고 살았다.

 삶에서 그곳을 잠깐 살펴보았다. 꿈에서나마 찾아볼 줄 알았던 그 곳 고향 기차역, B역에서 보았다. 아직도 국내관광객이나 외국인들은 평생에 한 번의 소원을 이루는 것처럼 “불국사”로 기차타고 찾아오고 있었다. 이 시대에 기차시간표 맞추려고 무던히 애썼으니 그 더욱 고맙게도 느껴졌다.

 나도 언제부터인가 실행하려던 것으로 “대구-불국사”기차여행을 생각만 하고 있었다. 기차 찻간 속으로 이동하면서 홍익회 아저씨들이 외쳐대던 소리가 들린다. “땅콩 사려! 맥주가 왔어요! 계란, 김밥이 있어요!” 그렇게 소리치던 그 소리는 지금도 나의 귓전에 바로 들리듯 쟁쟁하다.

 눈 내린 고향 기차역에서 가만히 그 시절을 들여다본다. 슬픔도, 기쁨도 그곳에서 그렇게 이루어졌다. 오가는 승객들이 모였다. 저만치에서는 낡은 기둥시계처럼 오래도록 시간을 지키려는 듯 그 자리에서 근무하는 검은 테 모자를 쓴 역무원들이 부지런하다. 눈 내린 기차역에서 자꾸 소곤거림이 들려온다. 외지인들이 그래도 오늘까지 찾아오는 고향 기차역이다. 레일 위에 하얀 눈이 소복이 내려 쌓였다. 기차가 지나간 지 오래다는 증거다. 길고 긴 평행선은 고단한 우리네 삶을 말하는 듯하다. 시린 손가락 녹여서라도 고향 기차역을 퍼 담아두려고 연속 휴대폰 사진을 박는다. 이 철로는 2021년이면 폐철된다. 제발 이곳을 잊지 말아 달라고 애원하듯 한다.

 떠날 때 성공을 손가락으로 걸며 헤어졌던 고향 기차역에서 오늘도 내가 주인공처럼 홀로 서서 이별의 푸른 애수를 느낀다. 그것이 차마 샤강의 눈 내린 마을이 아니더라도 괜찮다. 그 앙큼한 경제논리로 기차역을, 추억의 흔적을 철거하다니 아깝다. 흰 눈 내린 고향 기차역, B역에서 애처로움이 눈으로 펑펑 내린다. 아예 쏟아진다.

(202004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