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문학을 어찌 할꼬? 이영백 늦깎이에도 늚이는 왜 문학을 시작하려고 하였을까? 아니 나는 왜 수필을 쓸까? 수필은 하루라도 안 쓰면 입안에 가시가 나니까 가시를 없애려고도 일부러 글을 쓴다. 그래서 수필을 쓴다. 무엇이고 안 쓰면 못 배길 것 같으니까 글을 쓴다. 어렸을 때 내가 좋아하던 행동은 연필 한 자루와 종이 한 장 오른 손에 드는 것이다. 그리고 왼손의 검지를 쭉 뻗고 나머지 네 손가락은 거머쥔 모양을 하고서 어느 곳, 어느 때라도 곧잘 그림을 그려댔다. 어려서부터 화가가 꿈이었다. 그러나 언감생심*, 그것은 나에게 사치였을 뿐이었다. 공부도 초등학교 졸업으로 끝이었다. 신학문을 하려고 아등바등 너무 뼈아프게 애를 썼다. 그나마 나의 끈질긴 아집으로 돈 벌어가면서 중ㆍ고ㆍ대를 눈물이 모자라도록 어렵고 힘겹게 마쳤다. 첫 직장 초등학교 교사로 입에 풀칠하고 살았다. 그랬으면 되었지 또 무슨 허물을 벗으려고 무던 애를 썼던가. 다른 교사들은 놀고 있는데 남보다 한 발 더 뛰기 위해 “논문 쓰는 법”을 익혀 먼저 경북도교위에서“푸른 기장증”을 받았고 또 월성군교육청에서 “논문 특상”도 받았다. 비록 날개는 없었지만 날고 싶었다. 8년 교직을 아까웠지만 버리고 도회지 대학행정 7급으로 시험 봐서 자리를 옮겼다. 주근야독(晝勤夜讀)으로 학부에 편입하고, 더 욕심나 교육대학원에 다녔다. 중등교사를 원하였지만 시골이고 사립학교뿐이었다. 얼른 포기하고 그냥 편하게 도회지에서 자식 돌보며 정년 3년 두고 명예퇴직을 신청하고 은퇴하였다. 처음에는 황당하였다. 하루 이틀 지나니 평정심을 찾았고, 나의 나아갈 바를 결정하였다. 바로 글쓰기 작업이었다. 지방 문예지인 “한비문학”에 응모하여 단번에 “등단”하고 말았다. 겨우 글을 쓸 수 있는 면허증을 받은 셈이었다. 또 수필 이론공부를 비싼 등록금 들여가면서 3년간 야간에 배웠다. 이제 수필에 눈뜨면서 새로운 이론 “엽서수필”쓰기 운동을 시작하였다. 21세기 짧은 시간에 틈나는 대로 읽을 수 있는 엽서수필 다른 말로는 문학에서 “장수필(掌隨筆)”이라고도 한다. 손바닥 장(掌)이다. 짧고 재미나고 독자들에게 감동을 불러일으키려는 엽서수필이다. 그럼에 이 종심하고 둘의 이 나이에 새로운 수필운동을 시작하였다. 나는 흔히 사용하는 “대기만성(大器晩成)”을 좋아 하는 모양이다. --------------- *언감생심(焉敢生心) : 감히 바랄 수도 없음.(202004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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