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차성인)푸른 숲 수필가·20100/청림의 신라 천년의 전설

[스크랩] 신라천년의 전설(63) 옥산서원

ʊ이야기와 도시(n) - 新羅千年의 傳說

 

63. 옥산서원(玉山書院)

푸른 숲

cheonglim03@hanmail.net

 

 옥산서원(玉山書院)은 경주(慶州)에서 약 20km, 안강역(安康驛)에서 서북(西北)으로 약 5km 지점에 있는데, 근세조선(近世朝鮮) 선조(宣祖) 6년에 창건한 것으로 이 언적(李彦迪)선생을 모신 곳이다.

 울창한 고목과 맑은 시냇가에 회재(晦齋) 이 언적선생(李彦迪先生)이 계시던 독락당(獨樂堂) 양진암(養眞菴)이 어울려 하루의 청유(淸遊)로는 남음이 있다.

선생은 근조(近朝) 중기의 큰 학자로서 자(字)는 복고(復古), 호는 회재(晦齋) 또는 자계옹(紫溪翁)이라 하였다.

 본시 여주인(驪州人)으로 경주에 이거하여 왔으며, 부친의 휘(諱)는 번(蕃)이요, 모친은 손씨(孫氏)였다.

 조선 성종(成宗) 22년 서기 1491년에 태어나서 아홉 살 되는 해부터 학업에 종사하여 특히 성리학(性理學)을 많이 연구(硏究)하였으며, 중종(中宗) 9년 24세에 문과(文科)에 급제(及第)하여 홍문관(弘文館) 관원(官員)이 되어 세자(世子)의 학문을 지도하였으며, 대간(臺諫)의 관원이 되어서는 바른말 잘 하기로 이름이 났으며, 지방 관리(地方官吏)로 나가서는 청렴하기로 이름났으며, 예조참판(禮曹參判), 한성 판윤(漢城判尹)을 거쳐 벼슬이 의정부 좌찬성(議政府左贊成)까지 이르렀으나 명종(明宗) 때 을사사화(乙巳士禍) 당시 간신(奸臣) 윤 원형(尹元衡) 등의 모함(謀陷)으로 강계(江界)로 귀양 갔다가 적소(謫所)에서 돌아가시었다.

후에 선조(宣祖) 때 영의정(領議政)으로 증직(贈職)하고, 문원공(文元公)이란 시호(諡號)를 내리었다.

 회재 선생은 근세조선 5현(五賢)의 한 분으로 특히 해동 부자라는 존칭을 받은 바 있고, 선정(善政)을 위하여 유학(儒學)을 극도로 숭상(崇尙)하여 “백대유종(百代儒宗)”이라 일컬어졌으며, 또 많은 저서(著書)가 있다.

 회재 선생의 모친 손씨(孫氏)는 어진 어머니로서 자제 훈육에 각별하였으며, 회재 선생을 지도하신 외숙(外叔) 우재(愚齋) 손 중돈(孫仲暾)선생의 덕이 또한 적지 않았다고 한다.

이 서원 부근에 국보 제40호 정혜사(淨惠寺) 탑(塔)이 있다.

 이 탑(塔)은 높이 약 6.4m인 신라 변형석탑(新羅變形石塔)의 일례로 특수하고 아주 아름다운 탑이며, 이 부근에는 산수가 좋아 한 번 가 볼만한 곳이다.

신라 13층 석탑은 이 탑 뿐이므로 그 구조가 아주 정교한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

(푸른 숲. 2013.01.21.)

출처 : 푸른 숲/20100
글쓴이 : 62seonsang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