ʊ이야기와 도시(話n都) - 新羅千年의 傳說 |
29. 석불사(石佛寺) 석굴암(石窟庵)
푸른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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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굴암(石窟庵)은 불국사에서 약 2km 토함산(吐含山, 745m) 위에 있는데, 산꼭대기까지 자동차가 통하나 보행으로 가면 질러가기 때문에 소요시간이 거의 같다. 돌아서 올라가는 자동찻길(12km)은 보행 길(4km)보다 약 3배나 멀다. 이 절은 신라 시대 제35대 경덕왕(景德王) 10년 김 대성(金大城)전생의 부모를 위하여 창건한 절이다.
창건 당시는 석불사(石佛寺)라 하였는데, 그 뒤에 기림사(祗林寺)의 말사가 되면서 석굴암이라 이르게 되었다. 김 대성이 부모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세운 이 절은 나무는 전혀 쓰지 않고 연석(鍊石)으로서 석감(石龕)으로 지었다. 먼저 굴(窟) 위에 천개(天蓋)를 놓았더니 세 쪽으로 갈라지거늘 김 대성은 정신을 잃고 어렴풋이 잠이 들고 말았다. 꿈에 천신(天神)이 내려와서 모두 갈라진 것을 맞춰 놓고 돌아가거늘 김 대성이 일어나 정신을 가다듬고 남령(南嶺)에 이르러 향(香)을 태워서 산신(山神)께 제사를 올렸다. 지금도 천개에 세 줄의 금이 있으며, 그때의 남령재를 향령(香嶺)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석굴암 석불의 영험(靈驗)은 고래로부터 놀랍다고 하는데, 여기에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경덕왕은 자식이 없으므로 석불사 주지(住持) 표훈대덕(表訓大德)을 불러,
“짐(朕)은 불행히도 오늘날까지 자식이 없으니 부처님께 축원하여 사내자식 하나를 점지하도록 해 주게.”
하였더니 표훈대사(表訓大師)는 곧 호마(護摩)를 피워 부처님께 빌었다.
이 왕의 소원 축원을 하고 나서 왕께 아뢰되,
“부처님 말씀을 들어 자식은 점지해 주겠는데 딸은 되나 아들은 할 수 없다 하옵니다.”
이 말씀을 들으시고 왕은,
“이왕 점지 해 주시는 김에 딸을 아들로 바꾸어 주실 수 없을까?”
표훈은 할 도리 없이 다시금 빌고 나서 아뢰었다.
“그것은 어렵지 아니하나 그렇게 소원이라면 나라를 위함이 안 되어도 좋으냐고 묻습니다.”
이 말에,
“어찌됐든 꼭 아들이 소원이오!”
표훈은 왕의 말을 좇아 다시 빌었더니 얼마 후에 아들을 낳았다. 이 분이 제36대 혜공왕(惠恭王)이시다. 본래 여자로 태어 날 것이 남자로 태어났음인지 혜공왕은 어릴 적부터 그 동작이 여자 같고 남자의 품은 하나도 없었다.
드디어 왕위에 오르매 나라가 어지러워 역신(逆臣)에게 죽고, 국가(國家)는 쇠진(衰盡)하여 질서가 문란해져 표훈대사(表訓大師)와 석불의 그 영험(靈驗)을 되새기게 했다.
참고 자료 |
○ 석굴암(石窟庵)의 전설
신라, 경주의 모량리에 한 가난한 늙은 아낙이 살고 있었다. 그녀에게는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머리가 크고 이마가 평평한 것이 성과 같아 대성(大成)이라 불렀다. 집이 가난했기 때문에 대성은 복안의 집에서 품팔이를 하여, 그 집에서 밭 몇 이랑을 얻어 농사를 짓고 살았다. 하루는 “점개”라는 스님이 복안의 집에 와서 시주하기를 권했는데, 복안은 베 50필을 선뜻 시주했다. 이때 점개 스님의 염불소리를 대성이가 듣게 되었다.“누구든지 보시를 정성껏 하면 천신이 항상 보호하고, 하나를 보시하면 그 만 배의 이익을 얻고 안락장수하게 되리라.”
대성이는 그의 어머니에게 뛰어가서,
“내가 문에서 스님이 축원하는 염불소리를 들으니 하나를 보시하면 만 배를 얻는다고 합니다. 우리는 전생에 닦은 선이 없어 이렇게 가난하게 사니 지금 보시하지 않으면 다음 생에 더욱 가난하게 고통을 받을 것입니다. 우리가 품 팔아서 얻은 밭 몇 이랑을 법회에 시주하여 뒷날의 과보를 얻는 것이 좋겠습니다.”
어린대성은 어머니에게 졸랐다. 그러자 그의 어머니는,
“맞는 말이로다.”
하고 밭을 점개 스님에게 보시했다. 그런데 그 뒤 얼마 안 되어 대성은 갑작스레 죽음을 맞는다.
그날 밤 재상 김문량은 하늘에서 말하는 소리를 듣는다.
“모량리 대성이라는 아이가 이제 너의 집에서 다시 태어나리라.”
깜짝 놀란 김 문량이 모량리를 조사해보니, 과연 대성이라는 아이가 죽었다는 것이다. 하늘에서 말소리가 들리던 그날, 김 문량의 아내는 아기를 잉태하였고, 10달 후 아들을 낳는다. 그런데 아이는 태어날 때부터 왼손을 쥐고 펴지 않았다. 아이는 7일이 지난 후에야 손을 폈는데 “대성”이라고 새긴 금패 쪽이 나왔다. 이를 본 김 문량은 이 아이가 모량리 대성의 환생이라고 확신했다.
그래서 아이의 이름을 대성이라고 짓고 모량리의 대성의 어머니를 맞아들여 함께 살았다. 장성한 후 대성은 토함산에서 사냥을 하여 곰 한 마리를 잡았다.
그런데 그날 밤 피곤한 몸으로 잠든 대성의 꿈에 곰의 혼령이 나타났다. 곰은,
“네가 어째서 나를 죽였느냐? 내가 환생하여 너를 잡아먹으리라.”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대성은 곰에게 후회하고, 용서를 구했다. 그러자,
“네가 나를 위하여 절을 짓고, 기원하여 줄 수 있겠는가?”
라고 하였다. 그는 맹세코 절을 지어주겠다고 말하며 꿈에서 깨어났다.
땀이 온몸과 이불을 흠뻑 적셨다. 그 뒤로 다시는 사냥하지 않았으며, 곰을 잡은 그 자리에 장수사(長壽寺)를 짓고, 염원을 하였다. 그리고 전세와 현세의 부모를 위하여 불국사(佛國寺)와 석굴암(石窟庵)을 세웠다.
(푸른 숲. 2012.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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